5화_사원증을 차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그녀

30대 직장인의 자전적 소설

by 문득

많은 회사들이 모여있는 명동의 한복판, 저멀리 사원증을 차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는 여성들의 무리가 보인다. 타이트하고 약간은 짧은 크롭탑 위에 루즈핏 자켓을 걸친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다.


나도 회사원이 되면 저렇게 예쁘게 꾸미고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한번 패션 바보는 영원한 패션 바보인가 보다. 아직도 옷가게에 가면 마네킹이 입고 있는 그대로 옷을 산다. 옷장에 그런 옷들밖에 없어서, 사도 사도 옷이 없는 느낌이다.


대기업 입사 5년 차, 갓 대리를 단 나는 한참 위 과장님, 차장님들을 모시고 5분 만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 나도 사원증을 차고, 커피를 들고 있는 건 똑같은데, 왜 저들처럼 행복하지 않은 걸까?


커피를 다 마시면 후미진 뒷골목에서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들은 그 옆에 뻘쭘히 서서 얘기를 듣는다. 특별한 대화를 하는 건 아니고, 갑자기 차장님이 뭔가에 꽂혀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가끔 제일 나이가 어린 나의 생각을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때 빼고는, 난 조용히 듣고 있는 게 좋다.


점심시간이 지나 다시 책상에 앉았다. 모두들 저마다의 말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전화하는 사람의 영혼 없는 목소리, 신경질적인 마우스 클릭 소리, 간헐적인 한숨소리까지... 밝은 LED 형광등 아래 사람들의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사실 지금까지 몇 번의 퇴사 위기가 있었지만, 술로 스트레스를 풀며 잊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회사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곳에 경력직으로 들어가기엔 경력이 미미하고,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기엔 말도 안 되는 '자소설'(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난 열심히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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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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