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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Sep 27. 2022

'상빵이'를 예뻐한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맘속에

1982년 봄이었어. 그때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어. 남자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칠판에

'신주서'이라고 크게 쓰더니 "나는 신발을 늘 주워서 신기 때문에 이름이 '신주서'입니다'라고 하셨어.  

'하하하하!" 교실이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지.


선생님은 늘 '움빠이'라는 큰 자전거에 넓적한 노란 양은 도시락 하나와 검은색 우산을 싣고 학교에 오셨어.  나는 한 시간 남짓의 학교를 걸어 다니는 매일이 즐거웠지만 학교 어귀를 지날 때면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했지.

왜냐하면, 짓궂은 남학생 몇 명이서 항상 키 큰 코흘리개 '상빵이'를 때리며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야.

선생님도 그 모습을 보셨는지 그 남자아이들에게 주의를 몇 번이고 주셨어.


남자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상빵이'는 늘 히죽히죽 웃으면서 코를 흘렸는데 항상 같은 하늘색 추리닝만 입고 다녔어. '상빵이'는 배가 고픈지 쉬는 시간마다 수돗가에 나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곤 했어.

그리고는 바보 같은 웃음을 보이며 여학생들의 고무줄놀이를 방해하곤 했었지. 여학생들은 '상빵이'를 무서워하며 도망갔어.

왜냐하면 절대로 갈아입지 않아 코딱지와 때가 말라붙은 꼬질꼬질한 하늘색 추리닝은 땀냄새가 진동했으며

하도 오래 입어서 허리 고무줄이 늘어날 때로 늘어진 허리춤을 한 손으로 잡고 늘 누런 콧물을 흘리고 다녔기 때문이었지.

'상빵이'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여자 아이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아이였지.

게다가 '상빵이'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산다는 마을에 살았어. 그러니 그때는 의료 지식이 부족한 시절이라 그 마을에 산다고 하면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다들 두려워했었어.


어느 날, 국어시간이 한창일 때 손을 미라처럼 누런 붕대로 친친 감고 누더기를 입은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실문을 드르륵 열었어. 황토색 조롱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여기저기 기운 흔적의 지저분한 바지에 낡은 털고무신을 신고 계셨지.

"아이고오! 슨상님요오! 우리 상빵이 요오 있십니까요오?"

"우헤헤헤! 상빵이 아빠, 엄마다! 거지다, 거지!" 그 남학생들이 킥킥대며 버릇없이 놀렸어.

상빵이는 부끄러워서 얼른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지.

선생님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렇지 않아도 요즘이 마침 가정방문 기간인데 오는 토요일 오후에 방문하겠노라 한참을 이야기하고 배웅을 하셨어.

우리는 '선생님이 진짜 상빵이네 집도 가정방문하실까?' 하고 생각했지.


5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어. 선생님은 교탁 옆에 있는 선생님 책상에 앉아서 "상빵이 이리 좀 나와봐라" 하셨어.

평소 여학생들에게 말썽이나 부리며 학급 꼴찌에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놀림감이 되는 녀석은 혼이 날까 쭈뼛쭈뼛 거리며 선생님 앞으로 나갔지.

선생님은 넓적한 양은 도시락 하나와 두꺼운 네모 양은 도시락 하나를 책상 위에 꺼내놓으며 말씀하셨어.

"선생님은 집이 멀어서 아침 도시락을 싸와서 먹어야 되는데 혼자 먹기가 심심해. 그래서 앞으로 선생님은 '상빵이'하고 같이 밥을 묵을끼다. 알겠제? 그런데 너희들도 배고프면 같이 와서 먹어도 된다. 알겠제?"

선생님은 '상빵이'가 굶고 학교를 다니는 것을 아신 것 같아. 그래서 '상빵이'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던 거야.


그날부터 선생님과 '상빵이'는 항상 1교시 수업 전에 도시락을 함께 먹었어. 선생님의 큰 '움빠이' 자전거에는 검은색 우산하고 노란 양은 도시락 두 개가 늘 같이 따라다녔어.

"선생님은 말썽만 부리고 그 마을에 사는 '상빵이'가 예쁘나? 그카다가 병 옮는 것 아이가? 대단하다 맞제?"

우리는 선생님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기에 놀면서 뒤에서 수군거리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어.

우리는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지.


가을이 된 2학기에도 선생님은 항상 ‘상빵이’와 도시락을 함께 드셨지.

그리고, 해가 바뀌어 3학년 개학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어.

'상빵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누런 콧물이 말라 붙은 소맷부리로 닦으며 크게 울었어.

우리도 좋아하는 선생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함께 울었지.

 

그리고, 20년이 지났어. 거리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뵈었는데 한눈에 알아보겠는 거야!

선생님은 그 시절 우리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어. 꿀벌 먹이는 누구네, 감나무 과수원집 누구, 그리고 나와 교류가 없던 동창의 소식까지 알려 주셨어.

차 한잔이라도 대접해 드렸어야 했는데 그냥 헤어졌어.


그 후, 15년이 흐른 길가에서 우연히 또 선생님을 뵈었는데 지난번보다 훨씬 수척하고 여윈 모습으로 어딘가 편찮아 보이셨어. 그렇지만 두 눈은 제자를 만난 반가움으로 반짝이셨지.

나는 언제가 기약도 없는 '밥 한 끼'의 약속을 드렸고 선생님은 구부정한 뒷모습으로 길을 가셨어.

생활하면서 선생님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안부가 궁금했지만 먼저 연락드린 적이 없었어.


그리고 몇 년 전 우연히 부모님께 들었어. 그 선생님 편찮으셔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우리 집 근처에 사셨는데 여태 모르고 있었냐고 하셨어.

순간 나의 입에서는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듯 아픔과 후회와 탄식이 터져 나왔어.

'아! 선생님!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할 것을! 커피라도 한 잔 함께 할 것을! 아이고... 선생님... 이 못난 제자가 가슴을 치며 뒤늦게 이리 후회합니다...' 한없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슬픔에 탄식해도 소용이 없었지.


동창회에서 '상빵이'를 보았어. 점잖은 중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어. 그를 괴롭히던 남자 녀석들도 모두 한 가정의 믿음직한 가장이 되어 나타났지.

그 남자 녀석들은 어렸을 적 철없이 놀리고 괴롭힌 일을 '상빵이'에게 진심을 담아 정식으로 사과를 했어.

'상빵이'는 모두 지나간 옛일이라며 받아 주었지.


그리고, 그날,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신발을 줏어서 신는다’는 선생님이 빙긋 웃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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