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빛
키워드: 빛
설날 당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집에 가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화기애애했고, 큰어머니의 잡채 솜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보증수표와 같은 것이, 바로 이곳 큰집에서의 아침식사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매서운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날카롭게 내리 꽂히는 눈발이었다. 충남에서 올라온 큰아버지는 조용하게 열차 지연의 원인을 그 눈발에서 찾고 있었다. 또, 처음부터 꾸준히 켜져 있었던 TV 뉴스에서는 전국 각지에 내리는 눈에 관한 이야기와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사건사고 소식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었고 나는 외할머니를 모셔 놓은 비봉 추모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흐린 하늘과 매서운 바람이 우리의 앞길을 방해했고, 많은 차들이 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서행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추모관. 그런데 이게 웬걸, 그렇게 어둡던 하늘에서 구름이 걷히더니 그 맑은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경계가 되는 곳은 어둡기 마련이지만,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도리어 자신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기회다
얼마 전 드라마 '조명가게'를 보면서 한 줄로 정리해 봤던 나의 소감문이다. 작품 속에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미련과 한으로 인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조명가게'에서 회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어두운 터널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끝에 있는 자신만의 빛을 발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빛'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매개로 역할하거나, 최소한 그 상징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도착했을 때 어둠이 걷히고 아스라하게나마 햇빛이 들이찬 것은, 할머니가 나의 방문에 반가움을 표시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탱탱볼을 참 잘하던 사람'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비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언제나 엄마 몰래 나랑 놀아줄 때면 탱탱볼 던지기를 그야말로 야구 선수처럼 잘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빛'을 통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조그마한 악수를 해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상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기초한 거짓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믿음은 나에게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가장 빛나는 희망을 심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때로, 우아한 거짓말은 믿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 할머니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