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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08. 2024

프롤로그. 그렇게 소란했던 시절에 서로가 있었다

서로를 빼 버리면 각자의 20대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동갑내기 장기 연애 커플이다. 같은 대학에 심지어 같은 과 동기로 만났던 터라 혹시 중간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남은 학교생활은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사이였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의 걱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커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사귀기 시작하던 CC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나고 결국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다. 20살, 정말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만나 불완전한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긴 시간을 함께했다. 청춘이란 그렇지 않은가. 어디론가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데 방향은 모르겠고,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있는데 그 뜨거움에 스스로 데어버리는 것.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때로는 지난한 시간들을 지나, 서로를 빼 버리면 각자의 20대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남들에게 10년 연애했다고 하면, 눈이 동그레 져서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만날 수 있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았냐, 중간에 헤어지지는 않았냐 등등 질문 폭격을 받고는 한다. 하지만 사실 나도 우리가 이렇게 오래 만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사귈 때만 해도 한없이 가벼운 마음이었다. 유독 나에게만 티 나게 잘해주는 귀여운 남자애가 있어서 지켜보다 보니 나도 덜컥 그 남자애가 좋아져 버린 것이다. 큰 고민 없이 사귀기 시작했는데 6개월도 안되어서 그 남자애는 군대를 가게 되고 그때부터 절절한 연애가 시작되었다. 한창 좋아지기 시작할 때 강제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게 되니 서로가 너무 애틋해져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연애사에서 그때가 제일 열정적이게 서로를 갈망하던 시절이었다. 


군대라는 고비를 한 번 넘기고 나니 그때부터는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복학하자마자 복수전공에 동아리 회장까지 도맡으며 바쁘게 학교 생활을 했고 나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취업난이라는 뉴스가 도배를 했고, 나는 뉴스에 나오는 백수가 되고 싶지 않아 소위 열정페이를 받으면서도 첫 직장에서 애써 버티고 있었다. 지금 떠올려도 고맙고 애틋한 기억 중 하나는, 회사에 연차를 내고 참석했던 나의 대학교 졸업식 풍경이다. 그 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남편이 사진도 찍어주고 꽃다발도 건네주며 하루종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내가 첫 직장을 2년 남짓 다니다가 돌연 사표를 던졌을 때는 남편이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남편이 첫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소란했던 시절에 서로가 있었다. 


어느덧 결혼 3년 차가 되니 가끔은 치열했던 연애 시절이 전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제는 남편과 아내라는 새로운 롤에 완벽하게 적응한 듯 보인다. 합을 맞춰온 시간이 워낙 길었던 덕분일까? 이미 서로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결혼하고 나서는 싸울 일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연애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들을 보내고 있다.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NO"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느슨한 나날들에 행복을 느낀다. 날렵한 몸에 소년 같았던 그가 지금은 영락없이 배 나온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해 살 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저씨가 된 그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그 긴긴 시간 동안 서로를 놓지 않고 함께한 마음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지 잘 알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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