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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17. 2024

결혼하고 명절이 싫어진 이유(2)

남편이 나로 인해 불편하거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남편이 짐을 싸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혼 후 첫 명절인데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 며느리가 좋게 보일리 없었다. 아무리 불편해도 내가 다 알고 선택한 결혼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는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자처해서 남편과 함께 시골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남편은 나에게 엄청 미안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남편이 나에게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할 일은 아니었다. 그가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니며, 제사가 없는 집안을 골라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모든 걸 뻔히 알면서 결혼을 선택한 나의 책임이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시골에 도착했다.


다행히 나의 시댁에서는 여자들만 전을 부치고 남자들은 화투를 친다던가, 남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들로 여자들이 비빔밥을 해 먹는다 던가, 하는 그런 비상식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가장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차례 준비는 남녀구분 없이 모두 다 함께 나눠서 하는 분위기였고, 특히나 남편은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려고 했다. 손재주가 좋은 시아버지는 나를 위해 별채를 개조해서 깔끔한 방을 만들어 놓았다. 침대까지 들여놓고 새 이불을 정갈하게 깔아놓은 모습들에서 나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너무 명절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편견에 사로 잡혀있었다는 걸.  만약 그 때 내 상식 선에서 절대 받아드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3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명절이 달갑지가 않다. 아니, 명절이 싫어졌다는 표현이 더 솔직하다. 여전히 시골에서 1박을 보내는 건 불편하고 늘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집에 돌아온다.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음식들을 만들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을 위해 차례를 지내는 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게 며느리로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풍경이다. 그저 내가 묵묵히 명절에 시댁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의 가족이고, 남편이 나로 인해 불편하거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며느리가 되어 몇 번의 해를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명절 문화가 아직도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차별적인지 더 뼈저리게 느낀다. 이번 명절에도 시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는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할 거다. 시어머니도 며느리이기 전에 딸인데, 그녀는 왜 명절에 친정을 가지 않는 게 더 익숙해진 걸까. 작은 어머니는 왜 남편보다 먼저 시댁에 와서 음식을 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왜 뒤늦게 도착한 남편과 아들의 밥을 연달아 차려줘야 하는 걸까. 멀리 종갓집으로 시집갔다는 큰고모님은 왜 명절에 친정으로는 오시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누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38년생인 시할머니는 첫 명절에 나를 앉혀놓고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했다. 딸이든 아들이든 구분 없이 낳으라는 말이 세련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녀에게 현재 우리나라의 비혼율이 왜 이렇게 높고, 출산율이 왜 이렇게 낮은지 설명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그 순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떠올렸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자손을 번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고, 그녀는 그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걸까.


며칠 전에는 얌체 같은 며느리 때문에 괴롭다는 시어머니의 사연을 봤다. 시댁에 와서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는 며느리. 조상 덕 보는 사람들은 해외여행가지 제사 지내겠냐고 술주정 부리는 며느리. 그런 며느리 때문에 괴롭다는 시어머니.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세상이라고. 그런데 시어머니도 결국 며느리였고, 그녀도 결국 시댁 제사를 지내는 것 아닌가?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데 왜 여자들끼리 서로를 원망하고 할퀴게 되는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자극적인 단어와 단순한 이분법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문제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 나라의 명절 문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착한 며느리병'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하면 여자들이 시댁에 싹싹하고 착하고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어야 할 것 같아 무리하는 걸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나는 결혼 전부터 그 병에 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지금도 그 병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시댁에서도 특별히 꾸며낸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세상에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는 만큼 나도 시댁에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남편이 소중해지는 만큼 남편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시부모님께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부부가 서로에게 억지 효도나 어떤 도리를 바라기 보다 그저 서로에게 더 집중하고, 더 잘 하려고 노력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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