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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15. 2024

결혼하고 명절이 싫어진 이유(1)

결혼 후 첫 명절, 시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나에게 결혼하고 무엇이 가장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명절이다. 결혼 전 나에게 명절이란 심플하기 그지없었다. 지겨운 출퇴근에서 잠시 해방되어 그리웠던 엄마밥을 실컷 먹고, 엄마가 걱정할 만큼 종일 잠만 자다가 어느새 끝이 나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친가, 외가가 북적북적거릴 만큼 친척들이 모여서 명절을 쇠었지만 사춘기가 지나고부터는 부모님을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고, 어느 시기부터는 우리 식구들끼리만 모여서 단촐한 명절을 보냈다. 나중에서야 아빠에게 들은 얘기지만, 내가 점점 커갈수록 친척들이 한가득 모여 남녀구분 없이 부대끼며 잠을 자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빠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이제 제사나 차례도 지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오빠의 결혼이다. 며느리가 들어오면서부터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도 이제 더 이상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원래 설날이나 추석이면 우리 식구끼리라도 소소하게 차례를 지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오빠가 결혼을 한 뒤에는 명절이 더 심플해졌다. 그냥 식구들끼리 모여서 밥이나 먹다가 끝나는 것이다. 심지어 조카가 태어나니 부모님이 역귀성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오빠집에 잠깐 조카를 보러 모이는 게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결혼을 하게 되니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시댁은 명절에 시할머니댁에 모여서 제사를 지낸다. 명절 전날 음식을 하기 위해 모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다. 이 말인즉슨 내 노동력을 제공하러 무조건 전날부터 가 있어야 하고, 시할머니댁에서 1박 2일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디어에서 수없이 접했던 시댁이라는 곳은 정말 흉흉한 소문이 도는 곳이 아니던가. 어떤 며느리는 '시'자가 들어가서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이 결혼 후 첫 명절이 다가올 때 터지고 말았다.

 

 남편과 오래 연애를 했던 만큼 그 상황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명절 때 서로 통화를 하다 보면 남편은 항상 할머니댁에 있다고 했고, 차례도 지낸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 알고 한 결혼이지만, 막상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 걱정부터 앞섰다. 남편이 장손이라 집안의 첫 결혼이었고, 모든 상황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은 며느리가 들어온다고 제사도 단칼에 없앴는데.. 나는 이렇게 결국 남의 제사를 지내러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집안마다 상황과 입장이 다르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당시의 나는 엄청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전날 음식을 하러 가는 건 ok, 대신 할머니댁에서 자지 말고 근처 숙박업소에서 하루 자고 차례 지내러 가면 안 되냐고. 내가 이런 제안을 했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할머니댁은 오래된 주택이었고 화장실이 1개밖에 없었다. 식구들이 많이 모일텐데 화장실 1개밖에 없으니 제대로 씻지도 못할 거고, 처음 보는 시댁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그리고 결혼 전에 강원도에 있는 남편의 외가댁에 인사를 갔을 때도 잘 곳이 마땅치가 않아 근처에서 1박을 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한 것이다.


 나는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표정을 보아하니 굉장히 난감해 보였다. 시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도 계시는 데 손주며느리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잔다는 건 이상해보일 것이라는 것. 그런 말을 꺼내면 바로 내가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날 거의 밤을 새우며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남편도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화가 너무 싫었지만 할머니, 아버지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맞춰드릴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남편도 결혼은 처음이라 이런 상황이 엄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본인은 평생 그저 습관처럼 해왔던 일인데 아내는 그게 불편하다고 말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결국 남편은 급기야 본인이 그냥 혼자 가겠다고 말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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