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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22. 2024

고난은 어김없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망막 박리 진단과 처음 경험해 본 전신마취 수술까지의 이야기

"돈을 잃는 것은 당신의 일부를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당신의 절반을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당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어릴 적 자주 가던 동네 도서관 한쪽 벽면에는 멋진 서예글씨로 적힌 작품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그 작품에 적혀있는 글귀가 어린 마음에도 참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문장은 어느 순간부터 나의 좌우명 같은 말이 되었다. 건강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바쁘게 일상을 살다 보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건강을 한 번 잃어 본 사람이라면 거리낌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건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취업 스트레스로 만성 염증에 시달리며 잦은 입퇴원을 반복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고, 학교를 휴학한 뒤 본가에서 푹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렇게 한 번 크게 아프고 나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라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부작용(?)이라고 하면 약간 건강 염려증 같은 것도 생겨서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거나 아플 것 같으면 지채 없이 병원에 갔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큰 탈없이 잘 살아왔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중간중간 잔병치레를 하긴 했지만 결혼 뒤에는 생활이 안정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꾸준히 운동도 하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난은 어김없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방심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지금도 자려고 누우면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모습과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던 날.


 어느 날 강남에 있는 유명한 안과에 라식 검안을 신청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퀘스트를 깨듯 수많은 검진 기계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갔다. 안압도 정상, 각막 두께도 정상, 정상 정상.. 이대로라면 무사히 라식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어떤 기계 앞에서 검안사 분이 '최근 안과 검진은 언제 받아보셨냐, 눈에 뭐가 보이는데 데 병원에 정말 잘 오셨다'라는 얘기를 하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 내 눈에 뭔가 이상이 있구나. 생각해 보니 안과를 마지막에 간 게 언제인 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의사는 눈 CT 사진을 보여주며 한쪽 눈에 망막박리가 의심되니 전문 안과에 가보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방치하면 실명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병이었다. 병원을 나서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차올랐다. 남편은 혹여나 내 한쪽 눈이 실명되더라도 본인이 먹여 살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는데, 어이없게도 그 말이 나도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일단은 빨리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고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망막 박리로 유명하다는 안과 병원들은 모두 예약이 차 있었고, 2주 넘게 혹은 한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뿐이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의료 대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망막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서 바로 다음 날 외래를 갈 수 있게 예약까지 해주었다. 다들 예약이 꽉 차 있다는 말만 하던데 어떻게 예약했냐고 물어보니, 처음에 자리가 없다길래 한 번만 더 확인해 달라 사정사정을 했다고 했다. 마침 딱 한 타임 취소 자리가 생겨서 바로 예약을 넣을 수 있었다고. 남편은 내 전화를 받고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안심시키려 큰소리쳤지만 남편도 적지 않게 놀랐던 모양이었다. 쭈구리처럼 울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 와중에 풉- 하고 웃음이 났다. 그렇게 어렵게 예약한 병원에 가서 또 각종 검사를 받았다. 망막 박리 초반에는 레이저 치료가 가능한데, 나는 레이저 치료를 하기에는 박리된 범위가 넓어서 '공막돌륭술'이라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처음 들어보는 수술명에 정신이 혼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외래 진료를 받은 대학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망박 박리 진단부터 수술까지 이게 모두 불과 3-4일 만에 일어난 일들 이었다.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에 들어가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남편의 배웅을 받고 혼자 들어간 수술실 안은 정말 냉기가 가득했는데 추워서 인지 두려움 때문인 지 나도 모르게 수술대 위에서 사지를 떨고 있었다. 마취제가 들어가고는 거의 3초 만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회복실이었는데 수술한 눈의 통증보다 마취가 깨는 동안의 매스꺼움 때문에 더 괴로웠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입원해있던 병실로 옮겨졌고 거기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하게나마 남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감이 느껴졌다.


망막박리는 수술을 한다고 바로 완치가 되는 병은 아니다. 사람마다 박리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회복되는 속도도 모두 천차만별이다. 빠르게 회복되어서 한 달 만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재박리가 되어서 재수술을 하는 경우는 더 흔하다. 일단 수술하고 나서는 한동안 눈에 물에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씻기도 힘들다. 수술하고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눈이 부어서 뜨고 있기도 힘들고 심한 안구 통증 때문에 계속 누워 있기만 했다.


 또 한번 크게 아프고나니 일상이 소중해지고, 옆을 지켜주는 남편의 존재가 새삼 고마워졌다. 몸과 마음이 참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지만 처음 망막박리 진단을 받은 날부터, 수술 후 외래를 다니는 지금까지 무조건 시간을 내서 같이 병원에 가주는 남편 덕분에 단 한순간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서 이제는 매일 넣던 안약도 중단하고 무리없이 일상생활도 가능해졌다.


인생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예기치 못한 일로 깨달음을 주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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