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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29. 2024

여름의 끝자락에서

지금 돌아봐도 애틋할 정도로 난 엄마를 참 많이 사랑했다.

 나는 8월 말, 1년 중 가장 더운 날에 태어났다. 아프고 나서 철이 든 건지 이렇게 더운 여름에 만삭의 몸이었을 엄마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출산 스토리는 말 그대로 '생'과 '사'의 고락을 넘나 든다. 처녀 때는 43kg의 여리여리했던 엄마가 나를 가지고 만삭일 땐 80kg에 육박했다고 한다. 불어난 체중만큼 임신중독이 심해서 제왕절개를 해야 안전했지만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하다가 엄마 골반에 내 머리가 껴서 말 그대로 둘 다 죽을 뻔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아빠는 너무 가난해서 선뜻 제왕절개를 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는데 지금도 그게 너무 미안하다고. 다행히 둘 다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아서, 나는 33번째 생일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새삼 이 더운 여름에 딸을 낳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걸 아주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내가 '분리 불안'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매일 얼굴을 보는 이모랑 있어도 엄마가 안 보이면 울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하교 후에 집에 엄마가 없으면 바로 울었다. 3살 터울의 오빠는 그런 나를 아주 이해가 안된다는 듯 바라보곤 했다. 장난감보다 엄마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노는 걸 더 좋아했고, 가끔씩 엄마랑 단 둘이 먹는 점심시간이 행복했다. 추운 겨울에는 전기장판 위에 뜨뜻이 몸을 데운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걸 가장 좋아했다. 지금 돌아봐도 애틋할 정도로 난 엄마를 참 많이 사랑했다.


머리가 크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분리불안은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여느 사춘기 딸과 엄마가 그러하듯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나의 자아가 커질수록 엄마와의 트러블이 늘어갔다. 그렇게나 엄마 바라기였던 내가 무럭무럭 자라서는 결국 소심한 반항을 하기 시작하고, 엄마가 하는 말들을 고리타분하다 느끼며 간섭으로 여겼다. 가끔씩 엄마가 필터링 없이 내뱉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 상처를 부풀려서 엄마를 마음속 깊이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만큼 미워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가장 존경했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품게 되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을까?


세월이 흘러서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나이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지고, 결혼을 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되니 엄마와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저 엄마와 딸의 포지션일 때보다 내가 '아내'라는 새로운 롤을 맡게 되면서 같은 여자로서, 아내로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던가. 황소만 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도 엄마는 사위를 참 좋아한다. 무뚝뚝한 아들들에 비해 곰살궂은 사위가 다행히도 까다로운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언젠가 스피커 폰으로 남편과 함께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와 남편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언제였지?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더라?


최근에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씻지도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옆에서 매 끼니를 챙겨주고, 다 큰 딸내미의 머리를 감겨주고, 퇴근한 사위의 저녁까지 챙겨주었다. 어릴 땐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어설프게나마 내 살림을 하다 보니 그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게 엄마의 사랑표현이라는 것도.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온 것과 다름없었다.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 엄마는 매일 나에게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봤고, 마지막 날에는 기어코 냉장고를 반찬으로 꽉꽉 채워두고 갔다.


내가 엄마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엄마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내가 엄마처럼 헌신적으로 자식을 길러낼 수 있는 걸까? 매년 이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나에게 해준 모든 것들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일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밤이 되면 거짓말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직 낮에는 덥지만 해가 지면 그래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유독 덥다는 말을 많이 했던 여름이었는데, 무더웠던 이 계절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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