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의 소리

- 올곧은 마음을 남기고 떠나신 분께 드리는 시편지

by 별숲지기

당신이 떠나간 날, 강물 속에서 당신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올곧은 길로만 걸어가려고 하셨던 당신의 고운 언어가

끝을 모르는 강물 속에서 한없이 젖어갑니다


다가오는 비웃음 속에서도

한평생 지켜낸 외로운 양심들이

서서히 흐르다 넓은 강줄기에 이르러 터지어가는 듯


밑바닥에서부터 높은 하늘을 향해

하얀 거품을 토해내는 거센 물줄기에 실려

겹겹이 쌓인 단아한 숨들을 고이 뿌리시더니 이내


고단한 길 사이를 이제 다 걸어왔다는 후련함으로

맺힌 응어리들이 스르르 풀리는 시원함으로

다가오는 빛들이

흘러간 세월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당신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들이 차례차례 이어져

새의 날개가 그려내는 풍만한 길을 따라 떠나갑니다


먼저 흘러간 주름을 따라

뒤돌아보는 미련은 놓아두고

앞으로 앞으로만 끝없이 나아갑니다


땅냄새, 풀냄새

기러기가 내려앉아 말해주는

하늘냄새까지 그윽이 맡으면서


당신의 주름들은

곱고 둥글게

반짝이며 흘러갑니다


- 2024년 10월 26일 목사님의 영전에서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은 빨간색 기와를 올린 한옥이었고 자두나무가 있는 뒤뜰 담 너머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낡은 한옥 뒤로 들어선 새집을 하나 장만하셔서 저는 고등학생 때 비로소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그 한옥이 참 그리워집니다.

이제 한옥은 사라졌고 작은 교회는 주변에 집들이 생기면서 골목 안에 들어온 모양이 되었습니다. 새로 지어 조금 커졌지만 목사님의 강직한 성품으로 교회의 모습이나 운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주말이면 잔잔히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신도 몇 분이 찾아와 찬송가를 부르고 가끔 지나가는 저를 보면 웃으시면서 주보를 건네시곤 했습니다.


처음 그 교회가 생겼을 때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기도도 하고 찬송가도 불렀던 추억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목사님의 성경 말씀은 잘 생각나지 않고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마당에서 뛰어놀고 배고프면 사모님께서 따끈한 밥을 챙겨주셔서 편하게 갔던 기억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마련된 셈이지요. 더구나 사모님께서는 어찌나 잘 챙겨주시는지 마당에서 열리는 오이나 호박도 따서 주셨습니다. 지금은 저희 어머니 김장을 도와주시지요.


이웃에 사시던 많은 분들이 이사를 가셨지만, 저희 어머님께서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계시기에 친정에 갈 때마다 목사님 부부를 뵙곤 했습니다.

친정어머님께서 사시는 동네 골목은 몇몇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항상 깨끗합니다. 목사님께서 하루 종일 쓰레기를 줍고 다니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마음이 아팠던 건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항상 하시던 일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셨던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골목을 지켜주시는 그 모습이 뵐 때마다 든든하고 따뜻했습니다.


2024년 10월 26일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지만 친정에 갈 때마다 감나무 옆으로 주춤주춤 걸어가시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다시 가을이 깊어지고, 찬바람이 골목을 스칠 즈음이 되자

따뜻한 추억을 남겨주신 목사님이 그리워져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