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 설레는 일을 떠올리게 하는 시편지
온 종 일
시곗바늘에 매달려 둥그렇게 떠돌다
칼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허무의 동공이
바늘 끝에 걸려있을 때
켜켜이 쌓인 시간을 벗어버린다
접힌 눈꺼풀을 깨우는 렌즈와,
흐물거리는 발바닥을 세우는 삼각대,
그 사이에서
바늘을 걷어낸 욕망의 몸이
뜨겁게 춤을 춘다
첨벙!
밤하늘에서 강줄기로 흩어지는 빛
빛의 꼬리가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서늘한 가슴이
빛으로 번지는 순간이다
지금부터 온 종 일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 처음으로 부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계속 담임만 해오다 40대 후반에 업무부서로 간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더 늦기 전에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도 알아야 저도 편하고 후배교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다행히 인문사회부장을 맡아 책을 중심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인문사회부는 부장 역할을 맡은 저와 연배가 있는 사회 선생님, 아이가 아직 어린 사서 선생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의 부서를 이끌어 나가는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그저 제가 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고 여러 선생님들께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염두에 둔 것은 우리 부서 선생님들의 행복이었어요. 무엇보다 부서 선생님들의 마음이 좋아야 제가 계획한 일들도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코로나라니.... 연초에 나름 뿌듯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순조롭게 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미뤄지고 아이들은 등교하지 못하고 교사들도 부서별로 요일을 나누어서 출근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졌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어리둥절 정신없이 보냈지만 그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경험이 지금 맡고 있는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얻은 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모두가 모일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자연스럽게 같은 교무실을 사용하는 선생님들과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밥도 함께 먹다 보니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관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게 된 사회 선생님은 짙게 화장하신 게 아니었는데도 얼굴이 하얗고 참 예쁘셨어요. 옷도 우아하게 잘 입으셨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주셨지요.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상대가 누구든 당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말씀하시는 거였어요. 저는 마음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있어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종종 저를 챙겨주시는 역할을 해주셔서 처음으로 부장을 맡았지만 참 든든했습니다.
사회 선생님은 살아오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신 것 같았어요.
저는 집과 학교를 오가는 삶을 살아간다면 선생님은 사진 여행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었지요. 사회 수업 자료로 본인의 작품을 활용하시는 것을 보면서 꽤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가을밤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 선생님께서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으시더라고요. 오늘 밤엔 가을 풍경을 담아 올 거라고 하면서요. 가슴 설레는 게 저에게도 느껴졌습니다.
사회 선생님을 설레게 한 그 가을밤
오늘 밤 잠시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을까?
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진 여행을 간 그날 저는 늦게까지 학생들의 작품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담아내면 좋을까 고민하면서요.
그리고 제자와 약속했지요.
너는 꼭 7년 후 체육 교사가 되렴.
나는 7년 후 시집을 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