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by 별숲지기


어슴푸레한 빛이다

저쪽 먼 구름에만 작은 불씨가 걸려 있으니

아직은 고단한 마음을 깨우지 않아도 된다

질기도록 끊어지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잠시간 잊게해 주던 어둠이 너무 따뜻해

길게 끌어당겨 온몸에 칭칭 둘러 오래도록 머물게 하고 싶었지만

얄밉게도 빛살의 강한 유혹은 내 곁을 자꾸만 자꾸만 후벼파고 있었다


구름이 무심히 빛을 밀면서 다가온다

다시 빛의 아침이 찾아온 건 다행이지만

흐물흐물 절망으로 절여진 마음을 끌고

오늘로 이어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동공을 향해 파고드는 빛이 차갑고도 뜨겁다


한때의 열정과 그 열정으로 인한 실패와 날카로운 비난의 소리가

강한 빛줄기에 실려 퍼붓고 있는데

순간, 나를 위해 밥을 지었던 노모의 함박꽃 웃음소리가 마음에 닿아

나를 돌보았고 내가 돌봐야될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려

발바닥을 태우고 오늘로 가닿는다


괜찮아, 늦지 않았어

귀에 걸렸던 말들이 서서히 구석구석 온몸을 타고 내려와

시리도록 아프게 꽂혀있던 마음의 가시 조각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축 늘어진 감정들을 건져내 숨을 고르고 소리를 다듬어 눈부시게 펼쳐놓는다


뒤엉킨 감정들을 차례차례 풀어내 다섯 줄의 선 위에 앉히고

톡톡 마음을 깨워준, 나의 고운 눈빛들이 건네주는 음을 따라

슬픔의 응어리 위에 위로를, 질투의 응어리 위에 화해를, 절망의 응어리 위에 희망의 깃대를 올리자

들쑥날쑥한 소리들이 하루하루 이어져

사랑으로 향해가는 교향곡이 되어 찬란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 어둠의 쉼표를 지나

메리골드 꽃잎을 가득 품은 듯

눈이 밝아지는 빛과 향기를 날리며

아침이 떠오르면


끝을 모르는 곡이

한 박, 두 박, 세 박,

빛이 그어주는 길을 따라

또 시작된다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