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에 만난 제자들을 떠올리며
- 별숲지기 시소샘
어떤 마음이
인내심일까
먹고 싶은 것을
입고 싶은 것을
따뜻하게 살고 싶은 것을
견디며 아끼시는 모습이
못내 못마땅하기도 했던 날들
서로 다른 오 남매의
시간을 위해
머리엔 생선 짐이 잔뜩 올려있고
손은 차갑게 얼어붙기도 하고
허리는 굽혀 펴지지도 못한 채
분주한 하루 속에서도
아이들은 매달려 있었던 날들
그때는 말없던 장면들이
이제야 슬그머니 떠올라
다정히 속삭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인내심이라고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참고 또 참아내던
그 모습이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 인내가
우리 마음속에서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인내는 인내심을 낳아
봄에 다가선 듯, 다시
피어나게 하나 봅니다.
정말이지 엊그제 같은데,
지금 떠올리는 일은 2003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쯤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제자들의 얼굴이 문득 떠오릅니다.
몇 년 전 담임교사로 있을 때, 후배 교사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어쩜 그렇게 편하게 학급을 잘 운영하세요?”
그 질문에 저는 과거의 어떤 장면에 멈춰 서듯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깨져보고, 많이 아파보니 그렇다고요.
“또 그 반 학생이군요. 징계위원회 합니다. 내려오세요”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학교였기에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 준수해야 할 사항이 많았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2학년 담임으로 영상제작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은 반에는 생각이 자유로운 아이들이 많아, 종종 일탈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 반 아이들 스물다섯 명이 순서대로 징계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월요일 : A와 B가 5회 이상 무단외출하였습니다.
화요일 : C와 D가 체육 선생님께 계속 반항을 하였습니다.
수요일 : E와 F가 담배 피우다 걸렸습니다.
목요일 : G와 H는 수업 시간에 몇 차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요일 : 가장 큰 사건입니다.
두 명의 여학생과 두 명의 남학생이 학교 옆 아파트 옥상에서 술을 마시고 귀교하지 않았습니다.
“2주간 퇴실입니다. 2주 후에 봅시다.”
퇴실당한 두 여학생은 각각 인천과 부산에 집이 있었습니다.
도저히 통학이 안 되는 상황이라 부모님께 동의를 구한 후 2주간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지요.
그 당시 저는 결혼 1년 차, 아직은 신혼이었기에 남편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다행히 남편의 허락을 얻어 작은 방에서 두 아이가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은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주간 같이 지내면서 밤마다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어른들의 오해로 일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혼자서는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신혼집 근처에서 자취하던 동료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밤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얌전하게 지냈던 두 여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기 위해 질문을 했지요.
“무단외출을 왜 한 거니?”
“밤샘 영화 보기 대회에 너무 가고 싶은데 그 이유를 대면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이유를 대고 나가려다 귀찮아서 그냥 나갔어요.”
“생활지도 선생님께 반항한 이유는?”
“무턱대고 우리 반 아이들을 미워하셔서 우리도 그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수업 시간에 못 들어간 이유는?”
“작업하다가 잠깐 졸았고 일어나 보니 이미 수업시간이 많이 지나 들어가기 멋쩍어서 그냥 숨어있었어요.”
(그 당시 이 학교는 오전에는 국영수 수업 위주이고 오후에는 작품제작을 위한 실기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실과는 떨어진 곳에 작화실이 있었지요.)
“기숙사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잠을 잔 이유는?”
“대회에서 떨어져서 속상해 술 조금 마시다 보니 많이 마시게 되었고 시간도 많이 흘러 부랴부랴 기숙사로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문 열어 달라고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래서인지 사감 선생님께서 안 열어주셔서 마땅히 갈 때가 없어 옥상에서 잤어요.”
(청소년 영화제에 공모했는데 공모작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학교 옆 아파트 옥상 문이 열려있었나 본데 지금 생각하니 이 모든 일들이 아찔합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담임인 나하고 먼저 상의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선생님께 말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저에게 말해 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지요.
매일 징계위원회에 불려 다니면서도 아이들 편에 서서 대변해 주지 못하는, 규칙만 앞세우는 어른.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 주며 보호해 주는 어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나약했던 담임교사인 제 모습과 다른 선생님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였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느새 ‘자주 사고 치는 대상자 목록’에 올라 있었고, 무슨 일만 생겨도
“너 그 반 학생이지?”라는 말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한 번 낙인찍힌 아이는, 그 이후의 모든 행동이 어른들의 눈에 이미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선생님들이 무조건 문제행동으로만 바라보고, 진심으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기도,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엄격한 규율의 잣대를 내려놓고, 우리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마치 그들의 엄마처럼요.
그러자 아이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말을 하고 나니까… 그래도 이 부분은 저희가 잘못한 것 같아요, 선생님.”
물론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깨달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씩이라도 어제와는 달라지고 있는 오늘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변화를 알아보고 칭찬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50대에 들어와서야 신규 교사였던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그때의 제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기에,
그 시절 제자들을 떠올리면 참으로 미안하고, 또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이렇게 위로해 봅니다.
누구나 처음은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하는 이들의 실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싶어 졌습니다.
짧은 시간에 긴 기억들을 떠올리다,
제 곁에 있던 후배 교사에게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선생님! 제 방법은 참 오래 걸리는 거예요.
인내심을 갖고 아이를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다 보면 1년쯤 지나 어느새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달라져 있을 거예요”
그때 함께했던 시간들이,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이들의 얼굴로 잔잔히 떠오릅니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제가 얼마나 인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사로 살아온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온 가장 큰 힘은
어머니께 물려받은 인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의 길을 걷기 위해 인내했고,
저와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참고 또 참다 보니,
어느덧 제가 걸어온 이 길이
참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