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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Feb 06. 2023

코뮤니스트로 살아가기

공산당 선언(2)

 앞서 『공산당 선언(1)』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 그 공산주의 투쟁을 위해, 공산주의 사회, 즉 코뮤니즘의 사회를 만들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한 관문,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문장,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하여 자본가, 즉 부르주아에 맞서야 한다. 그래야 현대의 고통 받고 있는 모든 대중들이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에 올라 설 수 있다.


공산당선언, 16p. 책세상, 2018.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또 다른 중요한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이다. 원시 공동체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다 같이 나눠먹고 함께 행복한 모계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화했다. 농사를 짖게되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사람들에게는 잉여 재산이 생겨났다. 잉여 재산이 많은 사람은 굶주린 사람, 재산이 없는 사람을 자신의 밑에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으로 인해서 잉여 재산을 둘러싼 끝없는 싸움이 이어졌다. 그렇게 사회가 발달하면서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고 부를 가진 사람은 더욱 큰 부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즉, 원시 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원시 국가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의 형태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왕이 있고, 귀족이 있고, 그들을 잉해 잉여 노도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사회, 즉 노동력의 착취를 통해 잉여 재산을 더욱 축적하는 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여러 단계를 걸쳐 발달해 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회의 발전에는 꼭 모순이 뒤따랐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우리의 통일 신라 시대를 생각해보면 가장 좋을 것 같다. 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은 꽉 막힌 계급 사회였다. 6두품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진골이나 성골 귀족과 차별 대우를 받아야했고, 귀족의 사치는 극에 달해 백성과 노예를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모순 속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시대적 열망이 일어났고, 마침내 고려라는 새로운 사회가 생겨난 것이다. 고려 말의 모습도 똑같다. 귀족들의 모순이 극에 달해, 나라의 국교였던 불교의 타락이 극에 달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새롭게 태어났다. 


공산당선언, 목차, 책세상, 2018.

 물론 통일 신라와 고려의 제도적인 변화는 크게 없다. 같은 제도권 안에 머물고 있다. 필자가 이 예를 든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를 택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하는 시대의 변화는 제도까지 함께 변화하는 엄청난 변화의 고리이다. 옆의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가가 만들어져서 농민과 노예를 부리는 사회가 생기고, 이 사회가 변화하여 봉건적 사회가 생겼다. 그리고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소시민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과 생산 수단의 커다란 변화에 주목하여 시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를 엥겔스의 표현에 따르면 '사적 유물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필자가 왜 통일 신라 말과 고려 말을 예로 들었냐하면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모순이 극에 달해야한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봉건 사회에서 부르주아 사회로 넘어가는 지점에도 모순은 극에 달했었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시민 혁명이 일어났고, 시민 혁명에 성공을 거둔 나라는 부르주아 사회 즉, 소시민적 사회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적 유물론'의 토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단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다른 장을 빌려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사회의 변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모순'이다.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봉건적 사회가 모순의 극에 달해 농노를 착취하고, 산업 부르주아는 귀족의 힘에 의해 자신들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 결과 모슨을 해결하기 위해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났다. 모순이 극에 달한 봉건 귀족과 왕은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수의 귀족과 왕은 다수의 부르주아와 민중의 힘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농노들 역시 모순이 극에 달한 귀족과 왕에 맞서기 위해 부르주아와 한 편에 섰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하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농노에서 해방되었지만 일반인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왜냐하면 소수의 자본가, 부르주아에게 부가 몰린 것이다. 그들은 이제 농노의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기 시작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자본가의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보았을 때, 역사적 큰 변혁이 일어나는 시대의 모순이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왕족, 귀족이라는 계급과 자본가, 농노라는 계급이 대립하여 혁명이 일어났듯이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모순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 모순이 극에 달한 것이다. 

 모순이 극에 달했다면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혁명'이다. 그것도 하층 계급이면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곧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코민테른을 만들어 각 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놓고, 그 교두보를 통해 부르주아 사회를 전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사회, 부르주아의 착취가 없는 사회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규모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행복, 그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계급 투쟁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 모른다. 마르크스의 논리에는 프롤레타리아가 만든 코뮤니즘의 사회를 역사의 최종 단계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곳에도 모순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함께 힘을 썼으면 좋겠다.

 

공산당선언, 책세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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