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먼저 풀고 넘어가자
공산당 선언과 상호부조론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약간의 오해를 먼저 풀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용어가 불러일으키는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뮌(코뮨, commue)이라는 서구의 용어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는 사람 혹은 일제가 만든 잘못된 인식에 의해 폭력 투쟁에 앞서느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오해이다. 동양에도 코뮌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상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정도령 설화에서 정도령이 꿈꾸는 세상이 코뮨주의 세상이다. 홍길동에서 홍길동이 만든 율도국이 교뮨주의 세상이다. 무슨 실없는 소리냐고. 실제가 아니니 실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도령이 꿈꾼 세상, 홍길동이 꿈꾼 세상은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며, 계급의 격차에 의한 부정과 부패, 억압이 없는 사회라는 사실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실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그렇다. 그 사상은 실제에도 존재했었다. 어디에? 바로 우리가 조선왕조500년 넘게 이어 받은 사상 속에 그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대동사상이다. 대동사상은 코뮨주의와 거의 비슷한 개념이다. 물론 둘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둘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고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목표, 그 목표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니까 개성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동양과 서양 모든 곳에 항상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유학자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합병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의병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선을 지배한 사상은 계몽주의, 즉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 정치에 적용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즉, 적자생존에 의한 실력양성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적자생존에는 엄청난 모순이 하나 숨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제국주의의 논리를 뒷받침한단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논리는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한 자본주의의 성장이다. 즉, 제국의 자본이 발달했기에 약소국을 침략하는 것, 그것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1919년 3월 1일 31만세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은 깨달았다. 계몽주의 논리와 실력양성의 논리, 외교론 등 지금까지 했던 모든 수단과 방법이 결국에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때 받아들인 것이 바로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는 크로포트킨의 논리처럼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강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서로 공생하고 협력했을 경우에만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의 논리 역시 사적유물론의 발달에 의해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제모순에 빠져 자본주의의 최대 적인 프롤레타리아를 수없이 많이 창출하였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프롤레타리아가 상부구조를 무너뜨리고 평등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모두 원하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행복하고 동등한 세상이다. 물론 앞 장에서 말했듯 둘 사이에는 방법 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세상은 같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무엇과 닮았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조선 왕조 내내 끝없이 강조되었던 대동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대동사회 역시 만인이 모두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 대동사회의 논리과 어떻게 쿄뮤니즘의 논리와 연계되는지 알 수 있을까? 그것은 1920년대부터 무수히 소개되기 시작하는 아나키즘, 마르크시즘, 레닌주의, 마오쩌둥주의 등의 논설과 논조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존의 독립 운동 노선을 버리고 사회주의 노선으로 변경을 한 것이다.
이렇게 사회주의 노선으로 가장 먼저 변신한 사람들이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혁심유림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안동이기 때문에 안동을 예로 드는 것이 가장 편할 것 같다. 안동은 유교 사상이 오랫동안 뿌리내린 고장이다. 그런 곳에서 유교가 아닌 다른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게 용서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안동의 유림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것도 혁심유림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사회주의 지식을 습득하고 독립을 위한 논리에 적용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이준태, 권오설, 김재봉 같은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무수한 유림들이 사회주의 논리를 받아들여 독립운동에 적용하였다.
즉 코뮤니즘, 코뮨, 코뮤니스트라고 해서 부담감을 가지고 바라보지 말자. 우리의 전통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동학이 바라던 개인이 하늘인 세상, 그 세상 역시 코뮤니스트가 꿈꾸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