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4)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에게 노동을 계속 착취하다보면 부르주아의 부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 부의 증가에도 문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착취가 쌓이고 쌓여서 상품이 넘쳐 흐르는 현상, 즉 공황이다. 공황은 짧은 주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큰 주기에 따라 대공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의 발생은 대공황의 상황에서도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이득을 챙긴다는 점이다. 창고에는 수없이 많은 물품이 쌓여있다. 왜? 공황이로 경기가 침체되어 물건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가진 맹점을 하나 파악할 수 있다.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한다. 그것도 아주 강도 높게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그런데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치하다보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물건을 생산하게 되면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소수의 부르주아는 다수의 소비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누가 되어야하는가?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다. 그러니까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상품을 소비해야지만 부르주아 역시 자신의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만이 최대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착취는 어떻게 일어나는 지 알아보자.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8시간 일을 한다. 1시간에 연필 한 자루를 만든다. 연필 한 자루의 가격은 100원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8개의 연필을 만든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노동 가치는 800원이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월급으로 500원을 준다. 그렇다면 300원은 어디에 갔는가? 그 300원, 연필 세 자루가 바로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에게서 착취하는 잉여가치이다. 자본가는 공장을 짓기 위해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에 투자한 자본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노동력을 더욱 거세게 착취한다는 것은 맞지만 어떤 방법이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방법은 월급을 줄이는 방법이다. 월급을 400원으로 줄이면 300원을 착취하던 것이 400원으로 늘어난다. 노동자의 수가 많다면 그 착취의 금액은 100원이 아니라 1,000원, 10,000원, 100,000원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월급을 적게 주려고 노력한다.
두 번재 방법은 노동 시간을 늘이는 것이다. 8시간 노동을 9시간, 10시간으로 늘이고 월급이 그대로라면 부르주아는 늘어나는 노동시간 만큼 잉여가치를 더 착취할 수 있게 된다. 이 상의 두 가지 방법에 의해 부르주아는 부를 창출한다.
그런데 적은 월급과 과동한 노동에서는 당연히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고 직원이 적은 월급 때문에 일자리를 그만둬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밖에는 더 많은 노동자가 그 월급, 그 노동 시간에 노동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노동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착취가 지속될 수록 문제가 발생한다고 앞서 말했다. 그 문제란 바로 프롤레타리아가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대공황에 직면한다.
여기에는 엄청나게 큰 모순이 있다. 부르주아의 창고에는 차고도 넘칠만큼의 상품이 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부르주아는 상품이 썩거나 고장이 날 지언정 공짜로 상품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를 창출해야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코뮤니즘이다. 공동으로 생산해서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 그렇다면 창고에서 상품이 썩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황과 같은 경제 위기는 없을 것이다. 창고에는 상품이 쌓여 있지만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빼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오로지 부와 착취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과 분배의 원리에 따라 나누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그건 각자의 상상에 한 번 맡겨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