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다시 수련
멧돼지 족이 한 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성호와 오후가 멧돼지 족을 잡은 후 근처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 일, 성호가 태랑의 옆구리에 표창을 던져 다치게 한 일이 있고 난 후 태랑이 마음가짐도 변했다.
오늘은 일의 날, 일족 우진이와 수련을 하는 날이다.
오늘 수련은 활쏘기였다. 단순한 활쏘기는 태랑이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다. 우진이 잘 가르친 것도 있지만 특이하게 활쏘기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그건 다른 문제였다. 활은 쎄게 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능력, 그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태랑이에게는 아직 어려운 기술이었다.
우진은 표적과 태랑이 사이에 두 개의 밀집 인형을 세웠다. 그리고 태랑이를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 한 수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수련의 시작이다. 앞에 놓인 인형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인형을 피해 뒤에 있는 표적을 맞춰야만 한다. 태랑아 할 수 있겠냐?”
“네, 해 볼게요. 아뇨 하겠습니다.”
우진의 말에 태랑이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활 시위에 화살을 끼워 표적을 조준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간 태랑이의 화살은 앞에 놓인 인형의 가슴에 맞았다. 태랑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우진이 태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넌 지금 아군을 죽인거야. 내가 말했지 표적을 비켜서 화살이 날아가려면 활 시위를 잘 비틀어야 한다고, 그리고 네가 비트는 강도와 각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화살을 날릴 수 있다고. 자 날 잘 보거라.”
“네.”
우진은 활을 들고 활 시위에 화살을 장착하였다. 그리고는 손을 정교하게 비틀어 활 시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들었다.
우진은 인형 넘어에 있는 표적을 향해 화살을 쐈다. 우진의 화살은 두 개의 인형을 모두 비켜나가 세 번째 서 있는 인형의 가슴에 정확하게 박혔다.
“우와!”
태랑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했다.
“이 녀석아, 감탄하고,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고, 네가 해야하는 거야. 네가. 빛의 아이인 네가. 그리고 화살을 정확하게 날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적의 성향에 맞춰서 이 화살 촉에 너의 불과 물의 힘을 담아야 해.”
우진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은 태랑이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활을 들었다.
그리고 우진이처럼 활시위를 당기고 손을 비틀어 활시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태랑이의 화살은 다시 첫 번째 인형의 가슴에 꽃히고 말았다.
우진이는 그런 태랑이를 보며 웃으며 소리쳤다. 물론 그 웃음에는 근엄함이 들어 있었다.
“화살을 비트는 강도와 각도, 그걸 명심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냐? 넌 벌써 두 명의 아군을 죽인 거야.”
태랑이는 화살을 다시 장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첫 번째 인형에 맞고 말았다.
우진이는 태랑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강도와 각도! 강도와 각도! 그걸 명심하라고.”
태랑이는 다시 활을 들고 시위를 비틀었다.
이번 화살은 첫 번째 인형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태랑이는 이제 자신의 화살이 두 번 째 인형도 피해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화살은 두 번째 인형의 가슴에 꽂히고 말았다.
우진은 그런 태랑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넌 세 번째로 아군을 죽인거다. 네 표창이 조금만 더 빗나갔다면 성호는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거야. 한 번의 실수가 아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 그걸 꼭 명심해야 해.”
“네……. 알았어요. 아저씨.”
태랑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힘 빠지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만큼 수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성호가 다친 것도 다 수련이 부족해서야. 알겠지? 더 열심히 수련해야해. 수련. 수련. 어둠의 아이가 강해지는 시간만큼 너도 강해져야 해.”
표창에 상처를 입은 성호를 떠올리자 태랑이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호 아저씨는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아직도 배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태랑이는 다시 화살을 활에 장착하고 손을 비틀었다. 강도와 각도! 우진의 말을 되새기며 태랑이는 활을 힘차게 당겨 활 시위를 비틀었다.
이번에는 태랑이의 화살이 인형 두 개를 모두 피해 표적의 중앙에 정확하게 꽂혔다. 나무에 기대에 앉아 있던 우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쳤다.
“잘했다. 그렇지. 강도와 각도. 그것이 정말 중요한 거다. 그런데 성공했는데 왜 호들갑을 떨지 않냐? 평소의 너라면 호들갑을 떨고 난리가 났을 텐데.”
우진의 말에 태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이제부터 수련에만 집중할 거예요. 호들갑 떨고, 꾀부리고, 수련에 빠지고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우진이는 태랑이가 드디어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랑이는 다음 화살을 또 활에 장착하고 활 시위를 비틀었다. 이번에도 화살은 인형을 피해 과녁의 중앙에 적중했다.
우진이는 인형을 하나씩 늘여가며 수련을 이어갔다. 인형이 늘어날 때마다 수련의 강도는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태랑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화살을 쏘고 또 쐈다.
해가 저물어도 태랑이의 활쏘기는 계속 반복되었다.
우진이는 태랑이의 달라진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연습하다가 금방 지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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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의 날, 수참과의 수련이 있는 날, 태랑이는 수참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수참이 아저씨, 오늘 화의 날이지만 태린이 아저씨도 같이 수련하면 안 돼요?”
수참은 우진이에게 태랑이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또 무슨 잔꾀를 부려 수련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수참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태랑이에게 물었다.
“태린이는 불러서 뭐 하려고. 아직 불도 제도로 다룰 줄 모르는 녀석이 또 수련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거지? 요녀석 또 잔꾀를 부리는 거지?”
“아니예요. 아저씨.”
태랑이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수참이에게 대답했다.
“아니예요. 불과 물, 모두를 다 잘 다루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불도 물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수참이 아저씨와 태린이 아저씨가 도와준다면 화의 날과 수의 날 둘을 한 번에 연습하고 싶어요. 그래야지 불을 만들 때 물을 만들고, 물을 만들 때 불을 만드는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수참은 무슨 잔꾀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태랑이가 변했다는 우진이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수참은 태린을 불렀다. 태린이도 태랑이가 달라졌다는 말을 여러 명에게 들었지만 의심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다.
또 무슨 꾀를 부려서 빠져나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며 수련장에 도착했다.
태랑이는 수참이와 태린이에게 불과 물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수참이 아저씨, 태린이 아저씨. 불이 필요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 필요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불도 썼다가, 물도 썼다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태랑이의 말에 수참이와 태린이는 정말 수련에 온 힘을 쏟기로 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둘은 머리를 맛대고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불을 다룰 때와 물을 다룰 때는 정신을 집중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불이 손끝에서 타오르고 발사된다면, 물은 손바닥 전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니까 불과 물이 나오는 방법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과 물은 상극이라는 사실이었다. 손끝에 불을 만들고, 손바닥에 물을 만들면 둘은 중화되어 오히려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하면 둘을 동시에 쓸 수 있을까 수참과 태린은 머리를 맏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궁리에 궁리 끝에 둘은 드디어 방법이 떠올랐다.
몸의 균형, 특히 손의 균형만 잘 유지하면 된다는 사실이었다. 손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불과 물의 경계가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불과 물을 한 번에 생성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과 물을 한 번에 생성하기 위해서는 속성이 다른 두 가지에 모두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균형감각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는 것도 지금까지의 수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과연 태랑이가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수참은 태랑이에게 먼저 불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태랑이의 열 손가락 끝에 불꽃이 맺혔다.
이번에는 태린이가 태랑이에게 물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손바닥에 물이 일어나자 불과 물은 만나서 곧 사라져버렸다.
역시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었다. 그리고 불을 먼저 만들고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도 문제였다.
물을 만들기 위해 불꽃이 작아지면 그만큼 위력이 감소해 버렸다.
중요한 것, 그것은 균형감각과 집중력이었다.
수참이와 태린이는 어떻게 하면 균형감각과 집중력을 한 번에 수련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태랑이가 불과 물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불과 물을 함께 사용해서 적을 물리친다면 속성에 맞춰 적당한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참과 태린은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했지만 실전에 이르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여섯 부족에서 수련을 책임지고 있는 모두를 오늘 밤 모으기로 했다.
그날 밤 여섯 종족의 스승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성호, 오후, 수참, 태린, 미르, 우진 여섯은 모여서 토론을 했다.
먼저 이야기가 모아진 것은 태랑이가 확실히 변했다는 것이었다.
성호가 다친 그날 이후 태랑이의 모습은 완전히 변했다. 수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더욱 오랜 시간 수련에 임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태랑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 그것만은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이제 수련의 방법도 바꿔야 한다는 방향으로 여섯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련의 방법을 바꿔야 할까? 여섯이 아무리 고민을 해도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일족 족장이 여섯이 모인 방으로 들어왔다.
여섯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족 족장을 맞이했다.
일족 족장은 여섯을 둘러보았다. 일족 족장은 비장한 표정의 여섯의 얼굴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말했다.
“수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 물론 여섯 모두의 노력이 배로 들겠지.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수련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말일세.”
여섯은 일족 족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고전적인 방법, 그래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지금껏 수련을 게을리했던 태랑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몰랐다.
여섯은 일족 족장의 근엄한 표정을 바라보며 의견을 모았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진이 일족 족장의 말에 모두를 대신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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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은 다음 날부터 수련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수련은 다시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물을 나르고, 기본적인 체력훈련을 하고, 집중력을 올리기 위해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균형감각을 만들기 위해 위태위태한 봉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오전에는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고, 오후에는 각자가 맡은 수련을 담당하기로 했다.
태랑이는 정말 수련에 열심히 임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어깨에 멍이 들어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가끔 수연이가 도시락을 싸 들고 와 위안을 주기도 했다.
수연이의 도시락 맛은 좀처럼 실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늘 맵고, 짜고 먹기에 곤욕스러웠다.
하지만 태랑이는 수연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루의 고단함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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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태랑이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이제 성호와 대련을 할 정도로 권법이 늘었고, 오후와 검법을 겨룰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수참이와 태린이는 늘 함께 태랑이의 수련에 동참했다. 그리고 마침내 균형감각과 집중력이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불과 물 역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위력은 쎄지 않지만 불과 물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진전이었다. 태랑이가 불과 물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우진이와의 수련도 진전을 보였다. 활 쏘기, 말타기, 경공술 등 태랑이는 우진이와도 겨룰 만큼 실력이 늘었다.
미르와의 수련에는 엄청난 진척을 보였다. 집중력이 올라가자 변신에서도 실수가 줄어들었다.
아직은 가끔 실수하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르도 그런 태랑이의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비기 역시 다루는 솜씨가 늘어서 사과 세 개에서 네 개, 네 개에서 다섯 개로 점차 숫자를 늘여가며 한 번에 여러 개의 표창과 단도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일족 족장은 매일 수련장을 찾아 태랑이가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른 종족의 족장들도 가끔 수련장을 찾아와 태랑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련에 열심인 태랑의 모습을 보며 다른 족장들은 일족의 족장 말에 조금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