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코끼리 족(1)
수족 족장은 급한 일이 있는 듯 일족 족장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족 족장은 마음이 급한 듯 일족 족장이에게 인사도 없이, 자리에 앉을 사이도 없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족장님, 큰일 났습니다.”
일족 족장은 숨이 차도록 뛰어온 수족 족장의 얼굴을 보며 놀란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족 족장은 잠시 숨을 고른 뒤 헐떡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땅 끝에 있는 수족 바닷가 마을에 이상한 어선 한 척이 정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선에서 내린 것은 아주 오래전 수족과 교역을 하던 코끼리 족들이었습니다.”
일족 족장은 수족 족장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남만에 있는 코끼리 족 역시 천오백 년 전, 이미 멸족된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일족 족장은 놀란 얼굴로 수족 족장에게 물었다.
“코끼리 족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말입니까? 어둠의 아이에게 멸망한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고요? 그래서 남만과 수족이 다시 교역을 하자고 찾아 온 것인가요?”
수족 족장은 일족 족장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배에서 내린 코끼리 족은 성호와 오후가 말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닷가 마을에 있는 수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코끼리 족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부족원들이 제가 있는 마을로 와 이 사실을 말해 주었지요,”
일족 족장은 수족 족장의 말을 듣고 근심에 잠겼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바닷가 수족의 마을을 점령한 코끼리 족은 어둠의 아이가 부활시킨 어둠의 군대가 분명했다.
어둠의 아이가 만든 군대가 또 다시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했다.
아직 수족 족장 역시 남쪽에서 올라온 수족들의 증언을 들은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수족 족장 역시 어둠의 군대를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어둠의 군대인지를 명확하게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만약 그들이 어둠의 군대라면 싸울 수밖에 없다. 어둠의 군대가 선량한 종족들을 헤치는 것만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어둠의 군대가 맞다면 반드시 싸워서 물리쳐야만 했다. 어둠의 군대가 무고한 종족들을 헤치게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족 족장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하나의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섯 종족의 전사들을 코끼리 족이 나타난 곳으로 파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족 족장은 수족 족장에게 말했다.
“어서 아이들을 모으지요. 그 아이들을 코끼리 족이 나타난 마을로 보내야겠습니다.”
수족 족장은 일족 족장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섯을 모두 보내는 것입니까?”
일족 족장이 대답했다.
“아니요. 일곱이죠. 이번에는 태랑이까지 함께 보내야겠습니다. 어둠의 아이가 만든 군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태랑이에게도 실전을 치를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수족 족장은 깜짝 놀랐다.
“아직 수련 중인 아이인데, 실전에 투입했다가 죽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저희는 정말…….”
수족 족장은 말끝을 흐렸다. 태랑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태랑이를 걱정해서하는 말이었다.
정말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실전이었다.
하지만 일족 족장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는 진정한 싸움을 겪어 봐야지요. 지금까지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수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실전을 통해 실력을 더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서 일곱 모두를 불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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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족 족장을 중심으로 여섯 명의 스승이 둘러 앉았다. 일족 족장은 여섯 스승을 보며 말했다.
“남쪽 바닷가 수족에게 일어난 일을 들었느냐?”
여섯 스승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들었습니다.”
일족 족장은 그들을 다시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가 가서 확인을 해줘야 겠다. 코끼리 족은 어둠의 아이의 손에 의해 오래 전에 멸망한 종족이다. 어둠의 아이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만이 아니라 이 세계, 이 별 전체를 지배하기를 원했지. 그래서 다른 섬에 있는 종족들도 거의 멸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모든 종족이 멸망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우리가 이 별,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모든 종족이 멸망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코끼리 족의 멸망은 확실한 것 같다. 왜냐하면 천오백 년 전 우리와 교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네. 천오백 년 동안 코끼리 종족을 보았다는 종족은 없습니다.”
“그렇다. 일천오백 년 전, 어둠의 아이에게 멸족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후에는 우리와 아무런 교역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남쪽 해안가에 코끼리 족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이 정말 코끼리 족일까요?”
“그 마을에서 살아남아 도망쳐 온 수족에게서 들은 바로는 확실히 코끼리 족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성호와 오후가 본 멧돼지 족의 모습처럼 괴상한 형태였다고 하는 구나.”
“마치 죽은 자가 부활한 것처럼, 그 멧돼지 족처럼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멧돼지 족처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어둠의 군대가 맞다면 어둠의 아이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거겠지.”
말을 마친 일족 족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죽은 종족이 부활한 것 같은 모습……. 그게 맞다면 분명 어둠의 아이가 만든 어둠의 군대일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확인을 해봐야지 않겠느냐? 흠…, 그래서 너희 여섯과 태랑이가 함께 가야겠다.”
태랑이와 함께 가라는 말에 성호는 깜짝 놀라며 일족 족장에게 말했다.
“태랑이까지 함께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안 됩니다. 태랑이는 아직 수련이 부족해 위험합니다.”
일족 족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너희의 수련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태랑이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실전만큼 실력을 빠르게 성장 시키는 것도 없다.”
이번에는 오후가 나섰다.
“아무리 실력이 늘었다 해도 실전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태랑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수련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일족 족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수련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다시 어둠의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빛의 아이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실전이야말로 실력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방법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태랑이도 함께 데려 가거라. 알겠느냐?”
여섯의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제히 대답했다.
“네!”
일족 족장은 밖에서 엿듣고 있을 태랑이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태랑아 정말 실전이다. 잘 싸울 수 있겠느냐?”
깜짝 놀란 태랑이가 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말했다.
“네! 자신 있어요. 할아버지. 어둠의 아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어요.”
일족 족장은 여섯 스승을 돌아보고, 다시 태랑이를 바라보았다.
“태랑아,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너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너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고 여섯 명의 스승이 시키는 일만 하거라. 먼저 앞에 나서거나, 스승들의 말을 어길 시에는 다음부터 실전 투입은 없다. 알겠느냐?”
태랑은 일족 족장의 얼굴을 보며 굳은 의지를 표현하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네, 할아버지 절대 말썽 피우지 않을게요.”
일족 족장은 의지 가득한 태랑이의 얼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섯 스승을 둘러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아직 우리 여섯 종족 말고는 다른 섬에 어떤 종족이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천오백년 전의 일이니 거의 멸족했어도 분명 살아남은 종족이 있을 거다. 코끼리 족도 마찬가지다. 만약 살아있는 종족이라면 절대 싸움을 해서 다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둠의 아이와 그가 만든 군대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 항상 신중히 행동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여섯 스승과 태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족 족장은 모두의 얼굴을 한 번 더 돌아보며 말했다.
“좋다. 오늘은 그만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채비를 하거라.”
“네!”
태랑과 여섯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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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초가 지붕 위로 석양이 저물고 있었다. 노란 노을이 지붕에 걸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태랑이는 주막 담벼락에 목을 쭉 빼고 주막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수연이가 저녁 손님들을 맞이하며 엄마의 일을 돕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정겹게 인사를 하고, 엄마가 퍼주는 국밥을 나르고,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들을 위해 방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담벼락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민 태랑이를 발견했다. 수연이는 반가운 얼굴로 태랑이를 불렀다.
“어? 태랑아, 안으로 안들어 오고 뭐해?”
태랑이는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미 수연이에게 들킨 뒤였다.
수연이는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슥슥 닦으며 태랑이 매달려 있던 담벼락 쪽으로 다가갔다.
태랑이는 부끄러운 듯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수연이는 그런 태랑이 옆에 바닥에 털썩 앉았다.
태랑이는 들키지 않은 줄 알았는데, 수연이가 옆에 와서 앉자 깜짝 놀랐다.
“수……, 수……, 수연아.”
태랑이가 수연이를 부르자 수연이는 국화꽃보다 활짝 핀 웃음으로 태랑이에게 말했다.
“왔으면 들어와야지. 안 들어오고 뭐해?”
“아……, 아……, 아니야. 그냥 멀리서 네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했지. 나 내일 스승님들이랑 같이 남쪽으로 떠날거야. 멸족 된 줄 알았던 코끼리 족이 나타났데.”
코끼리 족이라는 말에 수연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엄청나게 힘이 세다는 그 코끼리 족, 내가 듣기로는 예전에 우리랑 교역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는데, 그 코끼리 족이 살아있었던 거야? 그럼 다시 옛날처럼 교역하고 남만의 예쁜 보석들도 다시 들어오는 거야?”
태랑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수족 족장님 말로는 코끼리 족을 어둠의 아이가 부활시킨 것 같데. 그래서 나랑 스승님들이 조사를 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는 거야. 남쪽에 있는 수족 마을이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
수연이는 깜짝 놀라 무서운 얼굴로 태랑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런 위험한 곳에 너도 같이 간다고? 스승님들이 너랑 같이 가는 걸 허락해 줬어? 같이 가도 된다고?”
태랑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대족장 할아버지가 같이 가도 된다고 이야기했어. 이번에는 실전을 통해서 수련의 효과도 확인하고, 실력을 더 쌓으라고…….”
수연이는 금방 울듯한 표정을 지으며 태랑이의 손을 잡았다.
“절대 다치면 안 돼? 알았지? 그래, 내가 맛있는 주먹밥 만들어 줄게. 먼 길 떠나는 데 네가 좋아하는 주먹밥은 먹고 가야지.”
태랑이는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네가 힘들텐데. 괜찮아. 주먹밥은 갔다 와서 먹을게. 그러니까. 그때 많이 만들어줘.”
수연이는 태랑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랑이의 손을 끌고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평상에 앉혔다.
“금방 맛있는 주먹밥 만들어 올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알았지? 어디 가면 죽는다. 내가 아주 많이 만들어 올거니까.”
태랑이는 수연이가 주먹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무리 맛이 없다해도 좋았다.
그런데 내일 중요한 일정을 떠나는데, 수연이의 주먹밥을 먹으면 아마 편하게 잠들지는 못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먹기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태랑이는 정말 난감했다.
어느새 주방에 들어간 수연이가 주먹밥을 한가득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태랑이 앞에 주먹밥을 내려놓았다. 태랑이는 주먹밥을 하나씩 집어 입안 가득 넣었다.
역시 수연이가 만들어 준 주먹밥은……,
맵고, 짜고, 시고 예전의 그 맛 그대로였다.
어떻게 음식 솜씨가 늘지 않는 지, 아주머니는 엄청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어떻게 아주머니의 실력을 물려 받지 못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