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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는 없는 이별 - 다시 시작된 세계

멧돼지 족(3)

by 김균탁commune
제6화 그림.png

성호가 먼저 멧돼지 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성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듯 했다.


어둡고 큰 그림자는 냄새를 다 맡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토족의 냄새, 목족의 냄새. 우리 종족의 원수, 토족의 냄새, 목족의 냄새…….”


멧돼지 족은 토족과 목족, 빛의 아이와 함께 어둠의 아이를 물리치고 살아남은 종족들을 모두 원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후가 성호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봐 그건 오해라고. 너희 종족을 몰살시킨 건 우리가 아니야. 그리고 빛의 아이도 아니고. 어둠의 아이가 너희 종족을 몰살시켰다고.”


어두운 그림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그런 거짓말에 안 속는다. 어둠의 아이님이 이야기하셨다. 절대 속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 종족을 몰살시킨 건 너희들이라고. 어둠의 아이님이 나의 목숨을 살려주셨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나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그런 어둠의 아이님이 우리 종족을 몰살시켰다고? 어둠의 아이님은 우리 종족의 편이시다. 너희들의 거짓말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으아아악!”


갑자기 날카로운 발톱이 성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적인 공격에 성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동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발톱을 피한다 해도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 오후가 검을 뽑아 들고 성호에게로 날아오는 발톱을 막았다. 그리고 성호에게 말했다. 오후의 칼은 멧돼지 족의 날카로운 발톱 사이에 걸렸다. 둘은 서로 밀어내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뭐해? 어서 공격해.”


오후의 말에 성호는 급하게 커다란 그림자에게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공격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성호가 날리는 주먹은 허공을 가르기도 하고 멧돼지 족의 손과 발에 막히기도 했다.


오후 역시 공격이 싶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발톱을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 째쟁. 째재쟁. 째쟁. -


오후의 칼과 멧돼지 족의 발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두운 동굴 속에 울려퍼졌다.


성호가 오후에게 소리쳤다.


“너무 어두워서 공격을 제대로 못하겠어. 방법이 없을까?”


오후 역시 날아오는 발톱을 막기에 급급할 뿐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발톱이 날아오는 걸 막는 것만 해도 벅차. 저 녀석은 눈이 어둠에 적응해서 우리가 다 보일 텐데, 지금은 발톱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방향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아.”


멧돼지 족의 모습이 보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공격할 텐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공격을 할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밝은 불꽃들이 날아왔다. 여섯 개의 불꽃이 성호와 오후 그리고 멧돼지 족의 주위를 감쌌다.


그러자 멧돼지 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호와 오후는 불꽃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태랑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제 잘 보이죠? 빨리 공격해요.”


성호와 오후는 태랑이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성호가 태랑이에게 외쳤다.


“너 이 녀석 언제 쫓아 온 거야? 위험하다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이런 말썽꾸러기 녀석. 너 이 일이 끝나면 크게 혼날 줄 알아?”


성호의 고함소리에 태랑이는 움찔했다.


‘쳇! 도와주려 온 건데 혼 낸다니. 켜져 있는 불꽃을 다 꺼버릴까보다. 쳇!’


태랑이는 도와주러 온 자신의 도움을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혼낸다고 하니 너무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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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환해지자 성호와 오후는 멧돼지 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멧돼지 족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다. 옆구리에는 뼈가 드러난 곳도 있었다.


얼굴 역시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눈 주위에 살은 아예 없어 안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엄니와 손톱 끝에는 검은 기운이 스며있었다.


성호와 오후는 생각했다. 멧돼지 족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죽었던 멧돼지 족을 어둠의 아이가 살려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성호와 오후는 밝아진 시간을 이용해 서둘러 공격을 시작했다.


태랑이의 불꽃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어질 수 있을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화족의 수련으로 일으킨 불꽃이지만 태랑이는 아직 화족과 수족의 마법을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불꽃도 금방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멧돼지 족의 정체가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후가 먼저 멧돼지 족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멧돼지는 오후의 칼을 손톱으로 튕겨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 성호가 멧돼지 족에게 달려들었다. 성호의 주먹은 정확하게 멧돼지의 복부를 가격했다. 멧돼지 족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크아아악!”


그리고 다시 비틀거리던 몸을 바로 잡으며 어둠이 서린 날카로운 손톱을 성호를 향해 길게 뻗었다.


오후가 칼을 들어 손톱을 막았다. 그 사이 성호는 다시 멧돼지 족의 복부를 주먹으로 치고, 멧돼지 족의 몸 중앙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턱을 향해 주먹을 힘껏 들어올렸다.


멧돼지 족의 몸이 다시 뒤로 흔들거리며 물러섰다.


성호는 또 다시 휘두르려 하는 멧돼지 족의 발목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오후를 향해 외쳤다.


“오후야. 지금이야. 내가 잡고 있을테니 공격해!”


성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후가 멧돼지 족의 몸을 파고들어 뼈가 보이는 있는 옆구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멧돼지 족의 갈비뼈가 칼에 부딪혀 깨어졌다. 멧돼지 족은 더 큰 괴성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성호는 비틀거리는 멧돼지 족의 팔을 놓고 찢어져 있는 눈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눈을 맞은 멧돼지 족은 손으로 눈을 감싸며 자리에 꿇어앉았다.


하지만 멧돼지 족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날카로운 손톱을 성호를 향해 휘둘렀다.


오후가 다시 손톱을 막아 주었다. 성호는 숨겨져 있던 발톱을 꺼냈다.


그리고 멧돼지 족을 향해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멧돼지 족을 향해 힘껏 발톱을 내리치는 중이라 그 바람 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오후 역시 멧돼지 족의 날카로운 발톱이 성호에게 닿지 않게 막고있는 중이라 성호를 향해 날아오는 바람 소리를 막아 줄 수가 없었다.


성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날아오는 물건에 상처를 입더라도 멧돼지를 처리해야만 한다.’


성호를 향해 날아오는 것은 표창이었다.


표창은 성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성호는 표창에 상처를 입고 소리를 질렀다.


“으악!”


표창을 던진 것은 바로 태랑이였다.


태랑이는 표창 던지기만은 다른 수련들 보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 그 표창으로 성호의 옆구리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성호의 옆구리를 스친 표창은 멧돼지족의 목에 꽂혔다.


멧돼지 족은 피를 울컥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성호는 있는 힘들 다해 멧돼지 족의 머리를 내려쳤다. 성호의 공격을 받은 멧돼지 족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공격을 끝낸 성호는 표창이 스치고 지나간 옆구리를 손으로 감쌌다.


성호의 옷이 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호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태랑이 너 이 녀석. 잡히면 가만히 안 둔다.”


태랑이는 성호의 외침에 움찔했다. 그리고 켜져 있던 여섯 개의 불꽃을 꺼버리고 빠른 속도로 동굴을 빠져나갔다.


오후는 상처 입은 성호를 부축했다. 성호는 상처를 손으로 감싸고 오후의 부축을 받으며 동굴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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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와 오후는 수련장이 있는 일족 마을에 도착했다.


가장 급한 건 성호의 부상을 치료하는 일이었다.


오후는 성호의 옆구리에 약초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약초물이 스며들자 상처가 더 쓰라려 왔다. 성호는 쓰라린 상처 때문에 신음 소리를 냈다.


“아아. 야, 오후 너 살살 안 하냐?”


“야, 임마. 이 정도 상처로는 안 죽어. 그러니까. 걱정하지말고 엄살 떨지마. 빨리 치료하고 보고하러 가야 하니까.”


성호와 오후가 일족 족장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여섯 부족의 족장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여섯 부족의 족장은 어떻게 된 사연인지 궁금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성호는 상처를 감싸 쥐고 있어 오후가 족장들에게 오늘의 일에 대해 보고 했다.


“분명 멧돼지 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멧돼지 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치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둠의 아이가 오래전 멸망한 종족들을 다시 부활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멧돼지 족이 머물던 동굴에는 어둠의 상흔들도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오후의 이야기를 들은 여섯 족장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정말 어둠의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금족 족장이 붕대를 감고 있는 성호에게 물었다.


“성호 자네의 상처는 멧돼지 족에게 당한 건가?”


성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멧돼지 족이야 쉽게 상대할 수 있었는데, 태랑이 녀석이 던진 표창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성호는 태랑이 이야기를 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멧돼지 족을 쉽게 잡은 것에 태랑이가 분명히 도움을 준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태랑이의 표창에 상처를 입은 것도 사실이었다.


위험하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한 말을 어긴 것도 혼나야 할 일이 분명했다.


성호는 태랑이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화족 족장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태랑이가 정말 빛의 아이가 맞을까요? 우리 여섯 부족의 힘을 모아 만든 아이는 맞지만 저는 자꾸 의심이 듭니다. 과연 다시 이 세상을 평화로운 그 시절로 돌려놓을 수 있는 빛의 아이가 맞는지요?”


화족 족장이 화를 내며 이야기를 하자 일족 족장이 화족 족장을 달래듯 말했다.


“이제는 믿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지요. 그 아이, 태랑이가 정말 우리가 바랬던 빛의 아이가 맞는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와 새로운 빛의 아이를 만든다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어둠의 아이는 이미 그 시간 동안 힘을 키웠고 벌써 자신의 군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화족 족장은 못마땅 했지만 일족 족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화족 족장에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족장들에게 태랑이 말고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빛의 아이가 어둠의 아이를 이길 거라는 아주 오래된 예언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태랑이가 믿음직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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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랑이는 이들의 대화를 문밖에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다.


어둠의 아이는 점점 막강한 힘을 얻어가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표창을 제대로 던졌다면 성호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태랑이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성호와 오후가 문을 열고 나왔다.


태랑이는 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랑이는 성호의 붕대를 보며 말했다.


“성호 아저씨 미안해요. 제가 수련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죄송해요.”


성호는 또 한 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태랑이에게 말했다.


“아저씨에게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네가 우리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거야. 물론 너의 도움이 있어 멧돼지 족 녀석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네가 없어도 오후와 내가 처리했을 거야. 다음부터는 위험한 일에 끼어들지 말아라. 네가 엿들었듯이 넌 소중한 빛의 아이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수련에 게으름도 잔꾀도 부리지 말고…….”


“네…….”


태랑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성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이야기했다.


“어둠의 아이는 이미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네가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그리고 어둠의 아이는 분명 너를 먼저 노릴 거다. 어둠의 아이도 빛이 아이가 자신을 막을 거라는 전설을 알고 있을테니까. 그러니 항상 조심해라.”


태랑이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꼭 명심할게요. 그리고 수련도 정말 열심히 할게요. 성호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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