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는 없는 이별 - 다시 시작된 세계

제23화 두더지 족(1)

by 김균탁commune
제23화 그림.png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은 일족 마을.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스스스슥, 바스락, 스스슥. -


불이 모두 꺼지고 깊이 잠든 일족의 마을. 논과 밭이 펼쳐진 일족 마을 앞에 들려오는 은밀한 소리. 일족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족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박서방이었다. 박서방은 기지개를 켜며, 마루에서 짚신을 신었다.


“으아아아함.”


아직 잠이 덜깼지만 희미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 꼬끼오. 꼭, 꼭, 꼭. -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박서방의 귀에 들렸다. 박서방은 세수를 하려다가 그냥 눈을 비벼 눈꼽만 떼고 잠시 논에 나가보기로 했다.


노랗게 익은 벼와 땅속에서 알뿌리를 키우고 있을 감자와 고구마, 박서방은 올해 작황이 좋아 가을 내내 기분이 좋았다.


태풍도, 가뭄도 없는 계절, 그런 해에는 배를 곯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서 부자에게 빌린 환곡에 이자를 떼고, 살을 붙이면 얼마 남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올해 환곡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환곡을 빌려 이자를 떼이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럼 내년에는 조금 더 살만해 질 것이었다.


박서방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자신의 논과 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논과 밭에 도착한 박서방은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또 비벼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박서방은 그 자리에 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고. 아이고, 아이고오.”


박서방의 울음 소리는 동네를 떠나갈 듯이 울렸다.


아직 아침 잠이 덜 깬 사람들이 박서방의 울음 소리를 듣고 박서방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봐, 박씨 무슨 일인가?”


“박서방 왜 그러나?”


박서방은 울면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논과 밭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은 박서방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런데…….


벼가 황금으로 일렁여야될 들녘에는, 고구마 줄기가 땅을 따라 피어있어야할 들녘에는, 감자 잎이 무성하게 자라있어야할 들녘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논과 밭은 그야말로 텅빈 황무지 그 자체였다.


사람들 역시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어떻게 이 넓은 논과 밭의 곡식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박서방, 이러지 말고, 관아. 관아로 가세.”


모여 있던 사람들 중 정신을 차린 이장이 박서방의 손을 끌고 관아를 찾아갔다.


관아에서 박서방의 밭으로 포졸들을 보냈지만, 박서방의 밭에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다. 그냥 황무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라는 것 말고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또,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이대로면 우리 가족들 다 굶어 죽습니다.”


박서방은 사또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라면 가족들이 다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사또는 그런 박서방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 자네의 밭에서 일어난 일을 철저히 조사할터이니 걱정하지 말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서방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하루 만에 모든 곡식이, 그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 오늘 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 포졸들을 최대한 동원해서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을을 지킨다. 다들 알겠나?”


“네.”


형방이 사또의 말을 따라 논과 밭, 골과 골 사이에 포졸들을 하나씩 배치했다.


이윽고 밤이 다시 찾아왔다. 여기저기 횃불을 든 포졸들이 논둑과 밭둑, 이랑과 골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눈초리를 부라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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