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분노에 대하여
청년은 분노한다.
불공정한 구조에, 반복되는 기회 박탈에, 무책임한 권력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왜 분노하는지조차 설명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청년의 분노는 종종 ‘감정적’이라거나 ‘미성숙’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을 마주한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반응이다. 기회는 줄어들고, 책임은 늘어나며, 기대는 높아진다. 그 속에서 청년은 조용히 무너지고, 때로는 크게 외친다.
철학자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 청년의 분노를 “정치적 각성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분노는 무지의 반대다. 분노는 현실을 직시할 때 생긴다. 청년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깨달을 때 분노한다. 그 분노는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쉽게 소비된다. SNS에서 분노는 콘텐츠가 되고, 댓글 속에서 희화화된다. 청년의 분노는 ‘요즘 애들’이라는 말로 축소되고, ‘노력 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된다. 그 속에서 청년은 다시 침묵한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분노를 잠재운다.
나는 청년이다. 나 역시 분노한다.
일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때,
정치가 나를 대변하지 않을 때,
가족조차 내 불안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분노는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분노를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말하고, 연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분노는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의 에너지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청년의 분노는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청되어야 할 것이다. 그 분노 속에는 시대의 모순이 있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붙잡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청년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