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카립스 철학기행

3화 — 길 위의 아이

by bonfire

3화 — 길 위의 아이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폐허가 된 도시는 뼈대만 남아 있었다.
기둥은 부러지고, 벽은 무너졌으며, 그 위로 잡초와 덩굴이 자라나 죽은 자들의 무덤을 뒤덮는 듯했다.
나는 바람에 실려오는 흙냄새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배낭 속 식량은 손바닥만큼 남아 있었다.
통조림 반쪽, 물 한 병, 그리고 부스러진 비스킷 두 조각.
지난밤, 도서관에서 만난 사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살아남는 이유가 있나?”
그 질문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불씨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불씨가 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쓰러진 버스 잔해 옆에서 작은 기척이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손에 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잔해 틈에서 나온 것은… 아이였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앙상한 팔과 갈라진 입술을 가진 아이.

아이의 눈은 굶주림으로 흐려져 있었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희망이 섞인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물… 조금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배낭을 움켜쥐었다.
한 모금도 아쉬운 물을, 이 아이에게 내줄 수 있을까?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네가 살려면 안 돼. 이 아이까지 데리고 가면 둘 다 죽는다.’
‘하지만 외면한다면, 네가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의 얼굴은 이미 잊혀진 내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병을 꺼냈다.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고, 몇 모금 삼키자 곧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그 목소리는 너무 가늘어서, 금세 바람에 섞여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지금 물을 준다는 건 곧 앞으로의 선택도 의미한다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물을 건넨 순간 나는 이미 이 아이를 버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불 꺼진 가로등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의 배는 여전히 꼬르륵 소리를 냈고, 내 배낭은 점점 가벼워졌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앞으로는… 같이 가자.”

아이의 눈이 커졌다.
그 안에는 두려움보다 더 큰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나는 알았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식량은 분명 모자랄 것이다.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정했다.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바람이 불었다.
폐허 위로 재가 흩날렸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이 스며들었다.
—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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