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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철학기행

2화 — 배급의 순간

by bonfire

2화 — 배급의 순간

식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도시의 잔해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대부분 사람들이 먼저 쓸어간 뒤였다.
남아 있는 것은 부서진 캔 몇 개와 바람에 날려온 먼지 같은 곡물들, 그리고 오염된 물뿐.

나는 하루 종일 걸어 겨우 한 상자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통조림 두 개, 그리고 오래된 비스킷 몇 장이 있었다.
숨을 고르며 그것들을 배낭에 넣으려던 순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어제 도서관에서 만난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예리했지만, 어딘가 이미 오래 굶주린 짐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식량을 찾았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나눌 수 있겠나?”

나는 순간 멈췄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틀, 길어야 사흘을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그와 나누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린 둘 다 살 수 없어.”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었다.
“알고 있네. 그래서 묻는 거야.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굶주린 이를 살리기 위해 나누겠는가?”

그의 말은 단순히 식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시험하듯, 내 양심과 두려움 사이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통조림을 쥔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살아남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살아남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닌가.

“인류는 이렇게 무너진 거야.”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급급했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법을 잊었지.
지금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어쩌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빛은 비어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대답, 나의 행동, 나의 철학.

바람이 불었다.
통조림 캔 위로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내 손은 떨렸고, 심장은 무겁게 뛰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식량보다 더 무거운 것은 바로 선택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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