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자존감의 거리
일을 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나의 자리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때로는 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일과 자존감을 자주 연결한다. 잘할수록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못할수록 존재가 작아지는 것 같다.
나는 하루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족과 함께 일하며 책임을 나눈다. 일은 늘 바쁘고, 할 일은 끝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바쁨 속에서 자존감은 자주 흔들린다.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각. 그 감각은 나를 점점 작게 만든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존재의 방식과 소유의 방식”을 구분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며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성과 중심이다. 결과가 없으면 과정은 무시되고, 존재는 평가받지 못한다.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시선에서 자란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 질문을 놓치면, 우리는 일에 끌려다니게 된다. 일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소모하는 기계가 된다.
나는 가끔 일을 멈추고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존중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나를 지우고 있는가. 그 질문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다. 자존감은 성과에서 오지 않는다. 자존감은 내가 나를 존중할 때 생긴다.
일과 자존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일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 것. 그 질문이 자존감을 지켜주는 시작이 된다.
오늘도 나는 일한다. 하지만 그 일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잠시 멈춰서 나를 바라본다. 자존감은 성과가 아니라, 존재의 온도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