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불타버린 도서관
불은 오래 전에 꺼졌다. 그러나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타버린 종이에서 피어오른 매캐한 향은 벽에 스며들어 도서관 전체를 장례식장처럼 만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바닥은 부서진 유리와 재로 덮여 있었고, 조금만 힘을 주어 밟으면 바스러지는 소리가 공간에 메아리쳤다.
책장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금이 간 기둥 사이로 먼지가 흘러내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회색빛 구름처럼 공중에 흩어졌다. 어쩌다 원형을 유지한 책도 있었으나, 페이지를 펼치면 곧바로 가루처럼 흩어졌다. 기억과 지식, 과거와 미래가 한순간에 무의미한 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런 잿더미 속에서 한 권의 표지를 주웠다. 검게 그을렸지만, 단 한 단어만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존재’.
짧은 단어 하나가, 이 폐허 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살아남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멸망의 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날짜를 세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의미가 없었고, 계절의 구분도 이제는 모호했다. 중요한 건 오직 하루를 버텨내는 것뿐이었다. 배고프면 무언가를 찾아 먹고, 피곤하면 쓰러져 잤다. 그것이 나의 삶의 전부였다. 과거의 나는 누구였는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조차 희미했다.
도서관 구석에서 나는 또 다른 생존자를 발견했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었고, 손가락 끝에는 재가 묻어 있었다. 눈빛은 희미했으나 이상하게 맑았다. 마치 오래된 거울처럼 흐릿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책을 찾고 있나?”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없는 짓일지도 몰라. 이곳에는 더 이상 지식도, 과거도, 미래도 남아 있지 않아. 바람 불면 다 흩날려버리지.”
그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반문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남는 이유는 뭔가?”
그는 미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재 위에 원을 그렸다. 동그란 선이 바람에 의해 금세 무너져 내렸다.
“이유? 이유 따위는 없을지도. 그냥 본능일 뿐. 숨 쉬는 것처럼, 배고프면 먹는 것처럼.”
그가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네가 지금 질문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이유일지도 모르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불탄 책의 표지를 쥔 손끝이 떨렸다. 이 세상에 남은 것은 단지 공허한 생존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남긴 말은 작은 불씨처럼 내 안에서 일렁였다.
밖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검은 눈송이를 공중으로 흩날렸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언어들의 유령 같았다. 서로 부딪히다 사라지고, 허공에서 흩어지는 그 재 속에서, 나는 문득 내가 여전히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나는 손에 든 책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존재’**라는 단어가 빛바랜 채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 마음을 조롱하듯, 동시에 위로하듯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