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카트린 지타-
새해가 되면 연차가 리셋된다.
사내 시스템으로 확인해 보니, 올해는 여름휴가까지 합하여 27개가 새로 생겼다. 연말이 되어도 항상 열개 남짓 남는 게 일상이었는데, 최근 워라밸 좀 챙기며 살아보기로 맘먹은 한 이후 그 많은 걸 거의 다 사용하고 있다. 나 역시 하루 연차는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가정일 혹은 부동산, 은행 업무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일주일 이상 쓰게 되는 휴가는 방학이 없는 직장인에게는 늘 그리운 시간이다.
요즘 회사 생활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도 휴가다.
여름휴가를 8월 첫 주에 단체로 휴가를 가야만 했던 신입 시절도 있었다. 날도 더운데, 최고 피크에 휴가를 가야 하니 물가는 비싸고, 가는 곳마다 사람도 많아 우리 가족은 한여름에는 피서를 떠나지 않았었다.
지금도 한 여름에는 길어야 1박을 하는 정도다.
이제는 회사 내에서 휴가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어서 일 년 중 원하는 시기에 떠날 수 있다.
더구나 여름휴가에는 개인 연차까지 붙여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멀리 장거리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시절이 된 것도 환영받을 일이다.
이렇게 귀한 휴가이다 보니 뭐라도 하고 싶었다.
나만의 생각 주간 이야기를 풀어내 본다.
혼자 떠나는 휴가를 계획하고 행동으로...
지금도 그렇지만 나에게는 일 년에 몇 일간의 나만의 휴가가 주어진다.(코로나 3년은 제외)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는 휴가이다 보니,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주변에선 어떻게 혼자 갈 수 있냐?"라고 묻는다.
"아내가 남자도 숨 쉴 시간이 필요하데, 그리고 믿으니 보내준데"라면 답을 한다.
그래서 늘 아내의 현명함에 감사하며 나만의 휴가를 맞이한다.
단, 아내는 딱 한 가지만 요구했다. 위험한 것만 하지 말기!
처음엔 그냥 걷기만 했다.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그것도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회사원에게 휴가는 달콤하다 못해 환상적이다.
그러나, 처음엔 막상 시간이 생겼는데도, 무엇을 하면 보낼지가 막막했다.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혼자 여행을 다녀봤어야 어디라도 가지"라며 스스로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지리산 종주였다. 그리고 그렇게 내리 네 번을 갔다.
'어머니의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갈 때마다 넉넉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서른 즈음 시작된 회사 생활은 녹녹하지 않았고, 주변에 꽤나 골치 아픈 일들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산을 오르고 걷는 것이었나 보다. 적어도 그때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되니까...
사실 걷는다고 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걷다 보면 무질서하게 떠오르던 생각들도 한 걸음씩 옮겨지는 내 발걸음처럼 같이 움직여져서 적어도
더 이상 깊어지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그런 경험이 익숙해진 탓인지 요즘도 여행지에서도 걷고 있을 때 진정한 여행의 참 맛을 보게 된다.
그리고,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더 잘 보인다. 출퇴근하면서 이미 수백 번도 더 지나갔을 길을 우연한 기회에
걷게 되면 "이 가게가 원래 여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찾게 되고 시야가 탁 트이게 된다.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은 내게 늘 신선한 기쁨을 준다.
걷다 보니 어느덧 난 걷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다른 곳도 가볼까?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지리산에 이어 찾은 곳은 제주도 올레길이었다.
한참 때라 나흘간 8코스를 걸었다. 그것도 여유가 있게 말이다.
중간에 바닷가를 걷다가 소라와 전복을 안주삼아 한잔하고 또 걷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또다시 걸었다.
그냥 걷는 그 자체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던 듯싶다.
좀 힘들면 밀감 밭도 구경하다가도 바닷가에 눈을 감고 잠시 앉아 파도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제주의 그 맑고 푸르름은 지금도 늘 청량한 기분을 준다.
또 다른 섬?
울릉도로 향하다.
시청역 앞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배에 올랐다.
호기 좋게 뱃멀미 약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교과서적인 뱃멀미를 아주 진하게 체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릉도를 가면 독도를 찾는데, 난 성인봉에 올랐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성인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성인봉은 천 미터가 안 되는 곳이라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인지 마지막엔 거의 기어서 올라갔다.
특히 중턱 즈음 섬의 음지에 형성된 허리춤을 넘는 고사리 숲은 한낮에도 해가 잘 안 들어 등뒤로 타고 오는 그 오싹함이 극에 달했다. 두 번 다시는 혼자는 가기 싫을 정도다.
울릉도에서도 꽤 많이 걷긴 했는데,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건 왠지 모르게 "오징어 내장탕" 뿐이다.
딱 봐도 뭐가 들어간 것도 없었는데, 배 멀리를 거하게 한 후에 먹어서 그런지 그 시원한 맛에 취한 듯싶다.
남도기행
순천, 여수
행신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순천역에 내려, 렌터카로 낙안읍성, 순천만 정원, 꼬막 맛집을 여행했다.
이순신 대교를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도해를 바라봤다.
순천만 습지 용산 전망대에 보는 광경은 꼭 식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남도는 가는 곳곳이 멋지고 먹는 것마다 맛있었다.
너무 멋진 곳인데, 당시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가야만 하다.
아예 나가볼까?
오키나와
지금 생각해 보니 이때부터는 작정하고 놀러 가기로 했나 보다. ㅋㅋㅋㅋㅋ
휴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를 바로 보게 된다.
휴가는 재충전의 시간인 동시에 생각을 연결시키는 Deloading(디로딩)의 시간이다.
평범한 나와 같은 직장인이 MS의 빌게이츠처럼 일 년에 두 번씩 생각 주간을 가질 수는 없다.
꼭 주간일 필요도 없다.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니 매일 짧은 시간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짧더라도 이런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우리에겐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