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문화생활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 애나메리 모지스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중
이번 주말은 리움미술관에 다녀왔다.
이태원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매우 수준 높은 예술 전시장이었다.
전시는 예약만 된다면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나, 예약이 쉽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으나 우리는 교통이 좋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부득이하게 차를 가지고 이동했고,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이미 입구엔 주차 대기 중이 차량이 줄을 서 있었다.
다행히 우리 뒤로 4대까지만 주차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하니 먼 곳에 주차하고 오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리움미술관의 외관은 멋스럽고, 깔끔했으며, 중간중간 직원들이 매우 많이 있는 자체로도 관리가 매우 잘 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웬 노숙자?"
정문 출입문 바로 앞에 노숙자가 누워있어 누가 신고 안 하나 했는데,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입장한다.
알고 보니 작품이란다. ㅋㅋㅋ
디지털 가이드는 데스크에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무료로 대여해 준다. 휴대폰 형태의 오디오를 목에 걸고 QR코드 찍고 입장하면 해당 작품 앞에서 자동으로 설명이 나온다. 도슨트에게 묻지 않았도 되고,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으니 시스템이 좋은 거 같았다. 확실히 작품은 설명을 들어야 이해도 쉽고, 그 의미도 파악이 되는 듯싶다. 디지털 가이드를 위해서라도 리움미술관 갈 때는 꼭 신분증은 챙겨가야 한다.
우리가 보기로 한 전시는 이탈리아의 마우치리오 카텔란이란 작가의 작품 전시였다.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은 예술가다.
사회, 정치, 종교를 막론하고 현실 사회를 극사실주의적 시선으로 조롱한 듯 또한 비판한다.
그렇다 보니 매우 사실적인 인물들의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루는 작품들이 많았다.
작품들도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저 멀리 박제된 말이 매달려 있다. 말의 근육, 그 큰 눈과 말발굽, 꼬리가 너무 생생하다.
박제된 말과 비둘기등 동물들이 사실적인 작품이긴 하나 개인적으로는 일단 편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 자신의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아서 얼굴만 보면 누군지도 알 듯싶다.
냉장고에 계신 분은 작가의 엄마라고 한다. 뜨악...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작품은 작가의 이중 자화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실 관람 중에 중간중간 북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오디오북 설명을 들으니 양철북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2층 멀리서 찍어서 화질이 떨어진다. 폰을 바꿔야 하나?)
1층 전시실실 끝에 벽을 보며 교복 같은 외투를 입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한 학생이 있었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랐다. 히틀러다.
전쟁, 학살로 수천만 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를 형상화한 작품인데, 지금도 학살과 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의미의 작품이라고 한다.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또 센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빨간 카펫 위에 놓여 있는 시신들을 하얀 천으로 덮어 놓은 작품을 보니 왠지 섬뜩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기코끼리가 하얀 천을 두르고 있는 작품은 백인 우월단체인 KKK단체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바티칸의 교황이셨던 요한바오르 2세가 운석을 맞으셔 쓰러져 계신 작품도 있는데, 절대 권력에 대한 비판의 의미라고 한다.
2층에서는 전시실 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던 곳은 별도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있었는데,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그대로 축소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길게 줄을 서고 있어서 관람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미국과 관련된 작품들도 있었다.
캔버스에 그려진 아이러브 뉴욕은 무려 1977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 나보다도 형님이신 슬로건이다.
오디오가이드에서 이름을 알려줬는데, 기억 못 하겠는 두 명의 경찰관은 시민을 위해 봉사를 하나 911 테러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공권력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총탄 맞은 검은 성조기는 세계의 경찰국가를 지향하나 그 폭력적인 모습을 비판한다고 한다.
더 위층으로는 불교와 고려, 조선시대 유물들 전시가 있었는데, 얼핏 봐도 국보급 유물처럼 보였다.
사실 이런 작품이야 말로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천천히 듣고 싶었지만 배고픈 두 모녀의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계단도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느낌 있고 멋있었다.
오늘도 딸내미는 배고프다고 내려와서는 어김없이 기프트 샾을 찾는다. 기프트샾도 부산스럽지 않고 잘 정돈되고 정갈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의 쉼도 없이 2시간 열심히 오디오북 들으며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다행히 또 아내가 맛 집을 예약해 놓았단다.
오늘 점심은 가로수길 을지다락이다. 세 자리 예약은 쉽지 않다는데 용케 해냈다.
가로수길 2층에 위치한 그리 넓지 않은 매장이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모여들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식사가 나오고 막 스푼을 드는 시간이 되니 이미 만석이다. ㅋㅋㅋ
우리는 대표 메뉴인 오므라이스와 로제스파게티, 그리고 시레기기 들어간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오므라이스는 직원이 너무 순간이지만 배를 가르는(?) 쇼를 보여준다. 너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더니 양식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번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이드로 감자튀김까지 추가했는데, 말 그대로 정말 깨끗하게 비웠다.
이번 나들이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닌 보람 있는 하루였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또다시 새로운 한 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