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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소리 Mar 15. 2023

저녁 산책

소소한 일상

"홀로 존재하는 시간은 삶의 여정에 특별하면서도 긍정적인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 카트린지타 저서 중



살다 보면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가 있다.

회사라면 상사에게 진하게 한소리를 듣었든가, 동료와 일로 말다툼을 했든가,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던가,

하던 일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 돼버리든가..

집이라면 늘 하는 집안일이나 별일 아닌 것들이 다툼이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들이 있는데, 요즘이 그렇다.




예전 같으면 왠지 모를 꿀꿀한 날이면 친구들 불러내서 술을 마시곤 했었는데, 모이기도 힘든 것도 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졌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는 조용히 혼자 풀고 싶어졌다.

더구나 학교와 직장에서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온 식구들에게 달갑지 않은 저녁을 선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아무 내색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다.


일이 되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도 무언가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느껴지는 요즘이 딱 그런 때이다.  

아무 일도 없는 척 태연히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산책을 나간다.


이번 산책길엔 둥근달이 환하게 반겨준다. 


내 저녁 일상은 저녁을 먹고, 집안일 좀 한 후 시계를 보면 보통 8시 전후가 된다.

운동복 차림에 트레킹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보통 1시간 정도를 걷는데, 정해진 코스 없이 그냥 발길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간다. 

동네가 크지 않아서 멀리 가봐야 돌아오는 길이 30분이면 족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걷다 보니 이 동네에서 걷는 즐거움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멈춤이 없다.

길을 걷다 보면 공원이나 강변 혹은 산길이 아닌 도시에서는 보통 길을 건너기 위해 멈추게 된다.

여기는 그런 멈춤이 없다. 작은 도로들이 있기는 하나 멀리 있는 차의 헤드라이트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다른 하나는 열린 하늘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건물들에 갇혀 있는 하늘이 아닌 말 그대로 열린 하늘이다.

미세 먼지 농도도 낮은지 둥근 보름달이 열려 있는 하늘에 떠 있다. 




걷는 동안 내가 의도치 않게 만들어 놓은 세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우선 뭔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는 이어폰을 꽂는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듣는다. 이런 날은 정해진 코스로만 다닌다. 

일부러 방향이나 코스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온전히 발걸음에만 집중한다. 

주로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날 걸음에만 집중한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좀 더 걷는다.

아무 생각도 없길 바라는 마음의 걷기라서 그런 듯 싶다.


마지막으로는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내버려 두며 걷는다.

회사일, 집안일, 투자, 운동, 공부, 가족 등 많은 일들이 복잡스럽게도 떠오르면서 어느 것 하나에도 집중되지 않는다. 일부러 뭔가에 집중하지 않고 싶을 때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다. 

이런 날은 발길 닿는 곳으로 간다. 

걷다가 마주하게 되는 길이며 나무, 건물, 사람들을 지나치며 순간순간의 느낌들만 생각한다. 


3월이 되는 날도 많이 풀려 점점 걷기에 좋은 날이 되어 간다.

운동 겸 마음도 생각도 정리할 겸 규칙적으로 나올 결심을 하게 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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