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실험이 재밌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지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겹다고 얘기한다.
밤새 실험하던 대학원 시절 실험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해서 분석하고 결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재밌었다. 예상했던 결과를 얻을 때나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와도 그 생활 자체가 흥분되었다. 고민하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고 건전한 토론을 하던 때가 그립다.
자부심 넘친 연구원이었으나, 제대로 한 번 봐주지도 않던 회사를 짝사랑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사하여 R&D 엔지니어로 16년을 보냈다. 흔히 연구원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하듯 바라본다. 그러나 내가 겪은 엔지니어는 그냥 3D 직종의 회사원일 뿐이다.
엔지니어는 이공계 대학에서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공부하고 취업 한 사람들이다. 연구소에 입사한 경우엔,
보통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실험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분석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정리하고 본인의 생각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간, 월간 등 수 차례 보고를 하고, 가치가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특허도 쓴다.
동시에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다수인 경우도 많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공장에 기술을
이관하거나 직접 제품이 되는 과정을 맡아서 수행하게 된다.
내가 개발한 기술이 제품이 되는 연구원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끝맺음이다.
지극히 과거형이나 꽤 보람찼고 큰 희열도 맛봤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탐색을 하거나 떠밀려 온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까지 가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통상 100개 중 하나 둘이다. 결국 연구소에서 시작해서 제품으로 생산되는 경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그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주면
그나마 다행이나,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주변에 소위 말하는 '똥파리'들이 득실거린다. 살짝 발을 거친 후 제품이 되면 본인들의 성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 뭐 같지 않은 인사들이 여전히 많은 걸 보면,
회사의 앞날이 걱정스럽니다.
난 요행을 바라는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꿈꿔온 엔지니어와는 너무 큰 괴리가 있었다.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화요일에 퇴근하고, 다시 수요일과 금요일을
그렇게 근무했다. 소위 말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직장 생활은 내게 버티고 참는 것만 강요했었다.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회사에서는 바쁜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근무하면서 반년쯤 지났을 무렵 몸에선 슬슬 신호가 왔다. 어깨가 자주 뭉치고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도 맑지 못하였다. 차마 힘이 든다는 목소리조차 내리 못하고 미련스럽게 그냥 버텼다.
딸아이가 때어나던 해는 그렇게 일에 치이며 하루살이처럼 보냈다.
"곧 지나가겠지" 하며 버틴 시간들이 아깝게만 느껴진다.
엔지니어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별 보며 출근해서 별 보며 퇴근하던 시절이
앞으로도 없었으면 한다.
기술을 개발해 본 사람들은 '이론과 논리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운도 따라야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주변 환경 등 많은 것들이 받쳐줘야 한다.
"다음에 또 멋진 프로젝트 같이 해요."라는 말을 듣는 엔지니어이고 싶었다. 실력 있고 인성 있는 이들과
난도 높은 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렇게 네 번의 전혀 다른 기술이 개발되었고, 제품도 되었다.
어려운 난관들을 함께 헤쳐나간 그들을 동료로서 지금도 신뢰하고 존중한다.
사십 대가 되면 대부분 실무 엔지니어로 근무하지 않으니, 좁기만 한 관리자가 되지 못한 다수는 다른 길을
찾는다. 버티거나, 이직을 하거나 업무를 변경하거나 등이다.
그러다 보니, 몇 해 전부터는 경쟁 업체나 해외로 떠나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
매체에서 '기술매국노, 기술탈취'라는 제목의 뉴스를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회사의 자산인 정보를 개인의 사욕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일부를 보고, 생활을 위해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는 그렇지 않은 다수의 엔지니어들을 바라보는 시선 같아 영 불편하기만 하다.
아마 비슷한 연령대의 경험 있는 엔지니어로서의 공감이지 않을까 싶다.
회사는 '정년보장'이라는 말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아마 정년을 보장받는
사회가 아니다 보니, 회사에 충성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국가도 회사도 엔지니어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의 경험과 기술을 보호하지 않는다.
소수를 제외하면 회사는 나이 든 연구자들을 젊은 엔지니어들로 교체한다.
그냥 나이 들고 경쟁에 도태된 퇴물 취급을 할 뿐이다. 안타까우나 현실이다.
세상은 발전할 것이고,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시절엔 노동의 가치와 삶의 조화를 아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