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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Feb 18. 2022

애비 왁스먼의 '릴리언의 정원'을 읽고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

주인공 릴리언은 '평범한 일하는 주부'라고 하면 맞을까? 남편이 죽은지 4년 정도 지났고, 7살 딸인 에너벨과 5살 클레어를 키우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동생 레이첼이 많은 일들을 도와주고 있어도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릴리언은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고, 남편이 죽은 후 1년이 넘게 정신병원에서 남편의 죽음을 극복하느라 힘들게 보냈다.


릴리언이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너무 커서 짐작하기도 힘든 것 같았다. 릴리언은 남편이 죽은 날,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를 했고, 나머지 새탁하지 않은 옷을 찾아 모두 지퍼백으로 꽁꽁 포장을 했다. 남편인 댄의 입자가 증발할까봐.


내가 병원에 입원한 뒤 레이첼이 이 지퍼백들을 발견했지만, 내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다행히도 모두 고이 치워두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오직 필요할 때만 지퍼백들을 공기에 약간 노출시켜 내 자양분으로 삼았다. 지금 나는 남편의 희미한 체취를 들이 마시고 있다. 눈물이 차오르면 고개를 돌리고 지퍼백을 닫고는, 여전히 그이 대신 내가 죽었길 소망한다. 그가 나보다 훨씬 더 슬픔을 다루는 데 능숙했을 것이므로.


릴리언은 회사에서 채소에 관한 책을 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6주간의 채소 원예 강좌를 들어야 했다. 이 강좌를 듣는 것이 릴리언의 삶에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함께 채소를 심고 가꾸는 것을 배우며 매주 만난 사람들은 원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 그 집의 정원을 바꾸는 것을 여러 번 같이 나누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하는 릴리언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원예수업을 가르쳐 주는 에드워드를 만나면서 릴리언의 생활은 바뀌게 된다. 하지만, 둘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알게 된 후 릴리언은 또 한참 뒷걸음질 친다. 아이들이 있고, 아직 남편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다.


책 속의 이런 관계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장 좋은 것은 원예수업을 하면서 다양하게 묘사되는 정원과, 그리고 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땅을 가꾸는 이야기는 사람의 관계보다 마음이 편하고, 따뜻하다.


한 두 그루쯤 심고 나니 이 일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토마토 모종에서 근사한 냄새가 풍겼다. 좋은 향만 나는게 아니라, 재미있게도 알싸한 내음과 풀내음도 났다. 내 손에서, 햇살 가득한 공기 속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돌연 오감이 평소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작동하는 게 느껴졌다. 비판적인 뇌가 평소처럼 훈수를 두지 않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몰랐다. 손은 물론, 눈, 귀, 코로 더 많은 정보가 유입되었다. 나는 별들이 윙윙대는 소리, 새들이 뭔가를 두고 지저귀는 소리,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 클레어가 리사에게 고양이 젖꼭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토록 편할 수가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최근 몇 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생각을 멈추었고, 그저 땅을 파는데 열중했다. 


어쩌면 우리가 텃밭을 가꾸고, 정원을 가꾸는 그런 일들은 몸을 움직이고, 무언가 결과물을 얻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친해지는 이유는 같이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정원 일을 해야 할 때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능력있고, 똑똑한지, 돈이 많은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살아있는 식물을 심고 가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릴리언이 죽은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쉽게 에드워드와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을 어려워하다 결국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생 레이첼이 릴리언을 돕고 함께 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릴리언은 좋은 사람들과 함꼐 하는구나 싶어졌다. 누군가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가족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친구든 말이다.


시어머니인 에이프릴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애 자리를 대체하려고 애쓰지 말거라. 릴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받아들이고, 그 애는 그냥 그 자리에 있게 둬. 그건 배신도 거부도 아내야. 나는 클레어와 에너벨에게서, 마지에게서, 폴에게서 기쁨을 느낀단다. 그게 댄을 잃은 내 슬픔을 지워 주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 애를 추억할 때 느끼는 기쁨을 휘발시키지도 않아. 그건 서로 연관이 없는 거야. 이 사실을 이해했으면 좋겠구나.”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냥 그 자리에 둔다는 것, 그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어렵지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책을 덮으면서 릴리언에게 함께 있어주는 좋은 가족들, 에드워드, 그리고 식물을 가꾸는 일을 즐겨 하게 된 것 모두 정말 든든한 이불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사람과 일,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걸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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