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득문득 나의 나이를 실감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크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많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였다.
내 나이 이제 52세.. 쉰이라는 나이로 들어가면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40대 후반부터 조금씩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실감을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크게 문제가 생길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직장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 떄문이었을까?
첫번째, 1년동안 가르친 아이의 성을 잘못 적어두고도 틀린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 내가 만든 자료에 아이의 성을 잘못 적었는데 계속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전교생이 30여명 밖에 안되는데도 1년동안 아이들의 이름을 정확히 다 외우지 못했다. 물론 관심 어쩌고 저쩌고 이런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계속 봤음에도 머릿속에 박히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이의 성을 실수하고도 꺠닫지 못하는게 말이 될까?
두번째, 아무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고, 메모해도 결국 못찾는다. 한곳에 적는다고 수첩에 적어도 계속 찾지 못한다. 핸드폰 앱을 깔고 적었는데도 어떤 것은 있고, 어떤 것은 없다. 3월에 딱 한 번 접속하는 사이트에 분명히 작년 3월에 관리자 아이디와 비번을 물어서 적어두고 썼는데, 다음 업무 담당자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기억도 나질 않는다. 메모 습관은 왜 이렇게 안생길까?
세번째, 바로 얼마전에 들었던 이야기나, 받았던 무언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군대간 아들 녀석이 휴가 나왔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받은 현금 용돈을 도저히 쓸 수가 없다고 나에게 저금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본 둘째 녀석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들에게 돈을 받았던 기억도 없고, 그 돈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10만원을 홀랑 잃어버린걸까? 물론 어딘가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데 어떻게 찾겠는가? 기가 막힌건 아들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까먹은 게 아니고 정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들었던 기억 조차도. 이건 뭘까? 기억 상실일까?
이런 몇 번의 사고를 겪으며 생각한다. 정말 적어두지 않으면 바보가 되겠구나. 한 곳에 잘 기록해야 한다. 직장은 직장 수첩에, 집 일은 핸드폰에 꼭 써두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다. 겨우 52살에 이렇게 기억이 없어지는 걸 보면 치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러다가 정말 치매가 오는 건 아닐까? 남편에게 이야기해야겠다. 치매가 심해지면 그냥 요양원에 넣어달라고 하려고 했더니 입원비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간병인을 쓰면 한달에 2백만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 아프면 그것도 다 돈이 들어가니 사는 것은 험난한 길인가보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인 것이 행복한 것일까? 몇 년 더 일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안정적인 직장에, 누군가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면 마음을 조금씩 비워가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내 일을 어느 정도 해 나가면서 좋겠다. 콕 박혀서 그래도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쓰다가 문득 학교 교과서 담당인데, 변경된 교과서 중 하나 신청을 한 것이 맞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종료를 누르고 학교 시스템에 접속해서 주문한 것을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잘 주문이 되어 있었다. 만약 주문을 안하고 넘어갔다면? 와, 정말 가슴이 두근거린다. 50이 넘는다는 것은 그냥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듦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아닌 것 같다. 내가 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 아닐까? 문득 두려워진다. 나이듦에 대해 자신있게 연륜이 쌓여가는 거라고만 말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이 두려움을 받아들이려면 얼마나 더 실패를 겪어야 할지 걱정스럽다. 잘 버텨나가자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려본다. 잘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