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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사탕 Oct 11. 2021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를 읽고

- 난 그저 나이고 싶다.


제목을 읽으면 딱 양희은이 떠오른다. 70이 넘은 나이인데도 너무나 분명하게, 크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볼 때 ‘젊은 시절의 경험 탓이겠지’ 생각했다.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굴곡을 겪었다는 것은 종종 매스컴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시대 방송에서 듣는 양희은의 목소리와 이야기, TV에서 하는 공연이나, 다른 젊은 가수들과의 노래 등을 볼 때는 늘 서로 다른 모습의 양희은을 떠올리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선배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 선배가 계시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노년에 대한 이야기 중에 전유성의 대답은 참 간단하고, 명쾌하다. 맞다. 무얼 그렇게 많은 계획을 세우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지금 많이 걱정하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 때의 상황을 어찌 알겠는가. 이제 50이 넘는 나도 끊임없이 나의 노후를 걱정하고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무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먹고 살까, 가장 걱정인 것은 도대체 몇 살까지 살 것으로 계획을 세우냐는 지점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이제 50이 넘어서 내가 70까지 살지, 아니면 100세까지 살지 고민하고, 그거에 맞는 계획을 세우려고 아등바등 한다는 것이 말이다.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 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일에 요령이나 지혜가 쌓이고, 하는 일이 무언지를 ‘쬐꼼’ 알만한 때, 이미 일은 나를 떠난다. 내가 밀려난다. 그게 요즘 순리다.


저절로 느려져서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된다는 작가의 말에 절대 동감이다. 요즘은 내가 아무리 그 전에 잘하던 일들도 그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속상하더니 받아들이고 나니 다른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전에 보지 못한 그 일들의 뒷면 말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참 많이 달라진다. 내 생각도, 사고방식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면서 가끔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에 멈춰서기도 한다.


“이거 영원토록 갖고 있을 것 같아? 엄마 이제 곧 가. 간 다음에 우리가 몇 달 힘들여 정리할 걸 생각해서 좀 미리미리 하라고! 엄마 조카딸들한테 줄 것 있으면 다 나눠 주라고.!”

그 얘길 듣는 넘마의 기분은 그리 흔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직도 치울 생각이 없으시다.


왜 우리는 죽고 난 후의 이야기를 이토록 꺼리는 걸까? 누구나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 살고 있는데. 주변만 보아도 죄다 아픈 사람투성이다. 강을 건너기 전에 내 것을 나누고 정리하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가 보다.


70이 넘는 딸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아마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에 대한 고민을 해봤기 때문에 부모에게 이렇게 말 한 것이리라. 100세가 되어도 자신의 것을 다 비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자식들이 다 떠나려고 하는 우리집도 여전히 아이들 어렸을 때 물건부터 집안 곳곳 물건이 한가득이다. 지금 사는 집을 이사할 즈음에는 둘째까지도 대학을 갔을 때이니, 그 때는 정말 대대적으로 다 버리고 싶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진짜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책이 많아서 이사할 때마다 남들의 두배 가격을 주고 이사를 다녔었다. 아이들이 커서 책을 많이 처분했는데도 늘 처음보다 약간 적은 정도여서 늘 트럭을 두 개 불러서 비싸게 다녔다. 이제 다 컸는데 그래도 짐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버리는 것,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 담백한 찌개 같은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양희은 같은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살아온 세월이 담겨있다는 말이 양희은 노래를 읽는 가장 좋은 감상 같다. 듣다보면 내 인생도 보이고, 나의 부모님 인생도 느껴진다. 그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다.


사람도 냉면도 똑같다는 생각이다. 냉면도 먹어 봐야 맛을 알 듯, 사람도 세월을 같이 보내며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꾸밈없고 기본이 탄탄한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분명 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사람, 어떤 경우에도 음색을 변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심지 깊은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심지 깊은 아름다운 사람. 나는 턱도 없다. 늘 흔들리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솔직한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는 사람. 나도 그렇다. 둘째 아들이 종종 멋부리고 싶어하고, 남에게 보이는 자신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일 때 걱정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다. 이나이가 되도록 하지 못하는 것을 10대 한참 나이의 아들에게 말하는게 가끔 바보스럽다고 느낀다.


가끔 틈을 내어 어렵게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늘 떠날 듯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배낭 하나만큼만 짐을 쌀 줄 아는 마음, 다른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마음……. 그때 그때 만나는 산과 강과 사람을 고마워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산과 강과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는 마음……. 낯선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늘 낯선 곳에 있는 듯 자유로운 마음, 선선한 눈빛으로 자기를 돌볼 줄 아는 마음. 잔가지에 얽매이지 않고 중심의 본 줄기를 찾는 마음.

굳이 짐 꾸려 떠나지 않더라도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서 있는 자리에서 조촐한 오솔길을 내볼 일이다.


늘 떠날 듯이 산다는 것, 그건 지금 내 일상이 소중하고, 너무 많은 미련을 두지 않고, 고마워하는 마음. 참 소중한데 가지기 어려운 마음이다. 늘 욕심내고,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다른 것을 더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나도 70이 넘으면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까?


주변에서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은 많지만 난 그저 나이고 싶다.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노랫말과 그 사람의 실지 생활이 동떨어지지 않는 가수. 꾸밈없이 솔직하게 노래 불렀고 삶도 그러했던 사람.

물론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노래를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 되불러 주는 사람들의 것이니까.


양희은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저 나이면 된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바램을 가져 보지만, 그것 조차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면 좋겠다. 그게 50이 넘어도 힘들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다시 한 번 중얼거려본다.


‘난 그저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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