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수처리장 구 씨 (7)
장현석 역시 그에게 왜 늦었냐는 말조차 묻지 않았다. 평소라면 주저리주저리 자기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을 장현석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구윤학 역시 장현석에게 반지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생각하느라 장현석의 그런 태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장현석의 표정과 행동에 대해 안중에 없었다는 말이 더욱 정확해 보인다. 그 둘은 그저 이전처럼 역겨운 분뇨 속에서 일할 뿐이었다.
구윤학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사준 니트를 더럽히기 싫어서 오늘은 분뇨 구덩이 속을 헤집고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뜰채로만 건져내고 일을 해결하기엔 일이 진행이 안 됐다.
구윤학은 5m 너비의 분뇨처리장에 놓인 간이 다리를 건너 장현석에게 다가갔다. 장현석은 분명 구윤학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이보게, 현석. 내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자네가 내부로 들어가 줄 수 있겠나? 미안하네.”
원래라면 장현석도 뜰채만이 아니라 분뇨 구덩이를 헤치며 다녀야 했지만, 구윤학 덕분에 장현석이 분뇨를 뒤집어쓰는 일은 많지 않았다. 구윤학 덕분에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많이 편했던 장현석이었지만, 구윤학은 분뇨 속으로 장현석을 들여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자네가 미안한 게 고작 그거인가?”
항상 능글맞던 장현석의 얼굴이 굳은 채로 구윤학을 쳐다봤다. 장현석의 얼굴은 해명이나 변명 따위를 원하고 있었다.
“그날 자네를 혼자 두고 먼저 떠나서 미안하네. 내가 영 술에 취했던 모양이야.”
구윤학의 대답은 장현석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장현석은 이미 구윤학이 반지를 가져간 걸 아니 엄연히 말하면 주머니 구석구석을 뒤져서 훔쳐 간 걸 알고 있다.
구윤학이 가족들과 함께 비참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장현석은 애타게 반지를 찾았다. 구윤학이 사지가 찢겨나가는 고통에 실신해 있었을 땐 둘이 술을 먹었던 가게를 다시 찾아서 감시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리고 반지 절도범이 구윤학이란 걸 확인했다.
장현석은 구윤학과의 우정과 동료애가 있기에 그의 해명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뿐.
“내가 지금까지 20년 동안 믿어왔던 동료가 금반지 하나에 눈이 돌아가는 줄은 몰랐는데. 오늘은 뜰채로 금두꺼비라도 건지길 바라네.”
구윤학이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장현석은 분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현석이 걸을 때마다 나는 첨벙 소리가 희미해지고 나서야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구윤학은 깨달았다.
구윤학은 뜰채로 흘러내려오는 불순물들을 건져내면서도 하염없이 장현석을 보았다. 하지만, 장현석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는 구윤학이지만, 너무도 매몰찬 장현석의 태도에 언짢았다. 그러면서도 구윤학은 후회했다. 장현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일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하던 일을 재빠르게 내버려 두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장현석이 보란 듯이 첨벙거리며 걷는 와중에 니트로 튄 분뇨 때문에 갈아입을 옷이나 멍울을 가릴 머플러를 챙기지 못하고 정신없이 출근한 구윤학은 한참이 지나서도 샤워장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이나마 악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무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장현석과 마주쳤다.
“이보게, 현석. 내 말 좀 들어주게.”
“나를 20년을 속인 도둑놈과는 하고 싶은 말이 없네. 주사가 도둑질이라니. 도둑한테 술과 고기 대접은 아주 잘 받았소.”
“그런 게 아니라...”
구윤학이 말을 잇기도 전에 장현석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혹부리 영감, 자네가 요즘 세상을 잘 모르니까 해주는 말이네. 요즘은 거리 곳곳, 가게 곳곳마다 감시카메라가 다 달려있어. 그리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올까 말까 한 내 휴일을 반지를 찾아다니는 데에 다 허비했지. 자네가 그렇게 가족이 소중하다기에 나도 내 전 여편네한테 만나자고 했던 날이었네. 그래서 반지라도 쥐여주려고 어떻게든 다시 잘해보려고 했던 날이었다고!”
장현석이 흥분하며 씩씩거리고는 언성을 높였다.
“근데 내가 결국 전 여편네한테 쥐여준 게 뭔 줄 아나? 내가 저 오물 덩어리들 좀 덜 묻히려고 잔뜩 사다 놓은 팔 토시야, 팔토시!”
구윤학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아내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술김에 벌인 행동으로 누군가는 또 한 번 가족들 잃는 비참함을 겪어야 했다.
“항상 가족, 가족, 가족! 구 씨 당신 목에 있는 멍울도 가족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거라는 걸 왜 몰라. 이 지독히도 아둔한 인간아.”
구윤학은 맞는 말만 골라 자신의 마음에 거침없이 화살을 꽂는 장현석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생각조차 안 하는 장현석에 화가 났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장현석의 말엔 틀린 말이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멍울 아니 암 속엔 자네 가족들이 가득할 거야. 아마 자네 가족들이 자넬 갈아먹다 못해 자네가 죽으면, 시체까지 연구소에 팔아먹을걸?”
자신의 그릇된 판단에 화조차 내지 않았던 구윤학은 장현석의 말에 장현석의 멱살을 잡았다.
“아무리 나한테 화가 났어도 나한테만 그러면 되지. 왜 내 소중한 가족까지 들먹여?”
허나 구윤학과 장현석의 덩치 차 때문인지, 장현석이 구윤학의 멱살을 잡고 뒤로 밀어버리자 그 둘의 몸 다툼은 싱겁게 끝났다. 그저 큰소리에 언제 모여들었는지 모르는 다른 노동자들이 수군거리고 있을 뿐이다.
구윤학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 과연 그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은 걸까. 멍울이니 암이니 이런 소리까지 다 들은 걸까. 구윤학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화가 나 씩씩거리고 있는 장현석의 입을 막아야만 한다.
“내가 미안하네, 현석. 내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
“됐네. 나도 자네 같은 사람이랑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구윤학이 건넨 화해의 말을 걷어차 버린 건 장현석이었다. 소란이 그저 우정 다툼으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점심시간이 끝나는 알림이 울렸다. 구윤학과 장현석은 말없이 분뇨의 악취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다른 노동자는 뒤에서 수군거리며 그 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분명 귀 밝은 노동자 몇몇은 들었을 것이다. 분뇨처리시설의 노동자 중 몇은 타인의 불행에 꽤나 즐거워했고 어떻게 해야 이 악취 속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구윤학과 장현석이 평소와는 눈에 띄게 다른 모양새로 일하는 모습을 본 다른 노동자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빛났다. 저녁 시간을 알리는 알람에도 구윤학은 샤워실에 가지도 사무실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는 다른 노동자의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봐, 현석. 둘이 무슨 일 있나?”
호기심에 제일 빛나던 눈을 가졌던 노동자 한 명이 장현석에게 물었고 주변에 관심 없는 척하던 다른 노동자들도 장현석의 입가만 쳐다보는 중이었다.
“일은 무슨. 그냥 잠깐 다툰 거지.”
장현석은 구윤학의 얘기에 치가 떨리는 건지, 그저 그에게 헛된 소문이 돌까 걱정하는 것인지 그저 묵묵히 대답하고 밥을 먹었다.
“에이, 잠깐 다툰 거로 주먹다짐까지 하나.”
장현석과 구윤학은 서로의 멱살을 잡은 적은 있지만, 주먹다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옷 모양을 다듬어준 걸세. 뭔 주먹다짐이야. 우리가 20살 되는 불같은 청년인 줄 알아?”
소문은 항상 그랬다. 퍼지는 와중에 불필요한 것들이 달라붙어 항상 사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장현석은 말도 안 되는 소문에 휘말리기 싫었다.
“그저 휴일 전날, 같이 술을 마셨는데 지 취했다고 날 버리고 튄 거뿐이야. 그래서 나는 의리도 없는 구 씨에게 심술을 부리는 중이고. 어찌 다들 궁금증은 다 해결되었나?”
장현석의 비꼬는 말투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대답해주었다. 단지 비꼬는 것을 넘어 사건을 더 키우지 말라는 경고도 섞여 있었다.
“멍울이니 암이니 하는 얘기는 뭔데?”
“암이나 걸려서 팍 뒈져버리라고 했다. 왜?”
장현석의 분노에 다들 더는 뭐라고 캐묻지 못했다. 뭐라 한 마디라도 덧붙였다간 장현석에게 멱살을 잡혀 두들겨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치로 장현석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다 먹지도 않은 식판을 집어던지듯 놓고 나간 장현석은 다시금 사무실 앞에서 알짱이는 구윤학과 마주했다. 장현석은 구윤학과 더 이상 말하기 싫었지만 구윤학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장현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미안하네... 내가 정말 미안해...”
장현석은 20년 된 친구의 절절한 사과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오후 업무에서도 구윤학과 장현석은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장현석이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서 분뇨 속 쓰레기들을 줍고 있었다. 그동안 구윤학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분뇨 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장현석은 그러지 못했다.
장현석은 자신을 대신해 항상 분뇨 속을 헤집고 헤엄쳐 다니던 구윤학이 밉기까지 했다. 혼자 모든 짐을 지고 죽으려 발악하는 구윤학이 싫었다. 결국, 구윤학의 암 덩어리 속에는 자신 또한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구윤학을 쉽게 용서할 생각은 없다. 믿었던 친구가 절도라니. 구윤학을 그토록 믿던 장현석은 절도의 이유가 무엇이라도, 혹은 술김에 한 실수였다고 해도 자신이 구윤학에게 보여준 신의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다.
구윤학이 그 반지를 달라고 했다면, 장현석은 기꺼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상급자를 운운하던 태도와 다시 가족과 잘 지내보려고 만든 자리에서 꺼내려던 반지 대신 팔토시를 선물했을 때의 비참함이 장현석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능글맞음 뒤에 숨겨진 장현석의 자존심은 그리 쉬이 치유받지 못할 것이다.
견고하고도 고결했다 생각했던 20년이라는 시간의 틈에 작열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저녁 식사 알림이 울리자 구윤학은 다시 장현석에게 사과할 생각으로 밥도 먹지 않고 장현석이 사무실에서 오길 기다렸다. 샤워를 마친 노동자들은 무리 지어 재잘재잘 떠들며 사무실로 향했다. 노동자 무리 가장 뒤에는 장현석이 있었다. 구윤학은 장현석의 팔을 잡았지만, 장현석은 그 팔을 내쳐버리고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 상황에 구윤학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친구로서는 못 받아주더라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황스러움을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멍울이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통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다.
구윤학은 재발하는 통증에 목을 잡고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기 한 대의 물을 켜놓고 구윤학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목부터 시작해서 등골로 이어져 팔과 다리로 퍼지는 감각들. 씨앗이 줄기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웠다.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듯 캑캑거리던 구윤학의 입에선 선명한 피를 토해냈다.
물줄기와 함께 금방 옅어져 하수구로 흘러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피를 보며 구윤학은 이번 생이 이대로 빨리 끝나서 자신도 흔적 없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며 고통이 가라앉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