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수처리장 구 씨 (8)
퇴근 후, 집 문 앞에 다다르자 편지함에 자신이 놓고 간 편지가 그대로 있었다. 읽어보지 않은 건가 싶어 편지를 꺼내 보았다. 편지 봉투는 뜯어져 있었고 자신이 구구절절 쓴 편지지 뒷면에 아들의 답장도 있었다.
구윤학은 그 편지를 손에 꼭 쥐고는 자신의 지하 차고로 들어갔다. 구윤학은 간밤에 아들 부부의 싸움 소리를 듣고 자신은 괜찮다며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 A4 용지 한 장 가득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자신이 쓴 편지 뒤에 적힌 두 마디뿐이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건강 잘 챙기세요.]
정말 자신은 버림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목의 멍울에서부터 시작되는 통증이 구윤학을 사로잡았다. 구윤학은 얼른 차고 서랍을 뒤져 진통제 몇 알을 집어삼켰다. 쉽게 가실만한 고통이 아닐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번에는 씨앗이 머리로 뿌리를 내리는 중인 건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구윤학은 눈을 감고 머리를 베개 위로 처박았다. 머리에 있는 혈관이라도 터진 것 마냥 구윤학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공포에 질린 것인지 고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고통에 구윤학은 이불을 끌어와 입에 잔뜩 쑤셔 넣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뼈까지도 산산 조각날 거 같은 통증에 소리를 지르거나 소리를 참으려다 이도 깰 수 있을 거 같았다. 희망의 뿌리는 단단히 자리를 잡는 중인지 머릿속 곳곳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뿌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지독한 고통을 남겼고 그 고통을 쉬이 사그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기침이 나오더니 입속에 들어가 있던 이불을 피로 물들였다. 그리고 구윤학이 처박고 있던 베개에는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르는 코피가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몇 알이나 먹었는지 조차 모르는 진통제가 말을 듣기 시작한 건지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피로 흥건해진 침대는 구윤학에게 한숨을 내쉬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 구윤학은 자신이 암으로 잘 죽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구윤학은 여전히 남아있는 통증에도 차고를 뒤적여 해묵은 노트 한 권과 펜을 찾았다. 노트는 언제 산 것인지, 쓴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낡아 가장자리 부분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구윤학은 노트에 암이나 멍울이란 단어 대신 희망의 씨앗이라고 적었다. 희망의 씨앗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지만, 사이가 틀어져 버린 장현석, 그리고 한 달 반 정도 뒤에 있을 하반기 노동자 건강 검사, 건강을 챙기라는 가족들. 자신의 상황을 모두 적고 난 후 구윤학은 더 암담해졌다.
딸! 구윤학은 갑자기 자신의 딸이 생각났다. 희생을 당연시하는 구윤학이 싫고 아버지를 짓밟고 올라서는 구주성을 혐오한다며 집을 박차고 나간 딸. 지하 차고에 있던 전화기가 고장 나기 전에는 종종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왔었다. 허나, 어느 순간 전화가 오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더는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기 역시 사용할 일이 없어져 고치지도, 새로 사지도 않았다.
딸이라면,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지 않을까? 자신의 희생에 그렇게 눈물짓던 아이라면,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 할지라도 조금의 도움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딸과 만나려면 직접 그 아이가 사는 곳으로 가족들 몰래 가야 하나, 오래전에 끊긴 연락이라 전화번호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의 상태를 얘기하면 오히려 반감을 사려나. 구윤학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건강검진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반이지만, 한 달에 한 번밖에 휴일이 없는 구윤학에게는 딸을 만날 수 있는 건 단 하루밖에 없는 기회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 구윤학은 화장실로 가서 온몸을 씻었다. 이미 하수처리장에서 샤워했지만, 위층으로 올라갈 생각을 한 구윤학은 온몸을 구석구석 피부가 새빨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는 가장 멀끔해 보이는 옷을 고르고 실내에서 하고 있어도 과장스럽지 않아 보이는 머플러로 목을 가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한집에 살아도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올라가는 건 구윤학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가 세 발 다시 뒤로 내려왔다. 괜찮을까? 과연 내가 저 집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지는 않을까? 하지만 새벽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구윤학에게 오늘만큼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말을 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다시 두 발 앞으로 올라가 큰 숨을 내쉬었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구주성이 집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아버지? 거기서 뭐 하세요?”
“아, 그, 그냥...”
구윤학은 자신의 집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날이 추워요, 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가실래요? 어제 엄마께서 차 끓이시는데, 아버지가 그냥 가버리셔서 서운해하셨어요.”
구주성은 편지 뒷장에 남긴 무심한 두 마디와는 대조적으로 굉장히 살갑게 구윤학을 대했다.
“아, 그랬니? 네 엄마에겐 내가 미안하다고 전해주렴. 숙취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구주성의 살가움에 오늘 느꼈던 고통, 통증, 두려움 그 모든 것이 녹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가족.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주성아, 주영이랑은 연락하며 지내니?”
자신의 누나 이름이 나오자 구주성은 흠칫 놀랐다.
“뭐, 가끔요. 추운데 집에 들어가서 얘기하실래요? 차도 한잔하고요.”
구윤학은 발을 들이기 그렇게 어렵던 자신의 집에 거침없이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실은 자신이 지하 차고로 처박혀 가족들을 버린 거였을까? 이렇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거였는데 가족을 지킨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을 버린 걸까? 생각에 잠긴 구윤학에게 구주성이 얼른 들어오라며 재촉했다.
집은 어제와 변함없이 아득하고 따뜻했다. 가족의 사랑이 흐르다 못해 창문 밖으로 넘쳐나가는 거 같았다. 구주성은 거실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고 자신의 코트를 식탁 의자에 대충 걸쳐놓고 차를 탈 물을 준비했다.
주방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자 방 안에 있던 다른 가족들이 나왔다. 며느리도, 아내도 자신을 보자 흠칫 놀란 거 같지만, 잘 올라왔다며 애써 미소 지어주었다.
하지만, 구윤학의 눈엔 그 미소조차 황홀했고 그동안 구윤학 속에 쌓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거 같았다. 이렇게 평생을 살면 참 좋으련만. 자신을 향하는 가족들의 행복한 미소를 볼 때마다 살고 싶어졌다. 지금 역시도 가족들 속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때론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떠들고 식사를 하며 평생을 살고 싶어졌다.
그러나, 구윤학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빠르게 단념했다. 구주성은 따뜻한 차 두 잔을 가져와 한 잔은 구윤학의 앞에, 한 잔은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며느리는 방으로 들어갔고 아내는 구주성의 옆으로 와 앉았다.
“무슨 일 있나요?”
뜨거운 차를 식히려 호호 불고 있는 구윤학을 보며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구윤학은 차를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주영이는 잘 지내요? 주영이랑 연락이 끊긴 지 꽤 되어서...”
“뭐, 가끔 주영이랑 연락하긴 해요. 자주는 아니지만.”
사실 구주성은 누나인 구주영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전혀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의 엄마가 구주영과 연락하고 지내는지도 몰랐다. 구주성은 자신이 낄 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저 뜨거운 차만 홀짝였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오랜만에 주영이가 보고 싶군요. 그 아이는 어디에 산대요?”
“여기서 차로 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사는 거로 알고 있어요.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은 없고요.”
한 시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갑작스레 찾아가는 것보다는 집으로 초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거라 생각한 구윤학은 뜸을 들였다. 행여 거절하면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먼저 앞섰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러면 내, 다음 달 휴일에 오랜만에 주영이 초대해서 밥 한 끼 먹으면 어떨까요?”
아내를 향한 구윤학의 눈빛은 거절이라도 한다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정도로 애처로웠다. 지하 창고로 내려간다고 담담히 말하던 사람은 온대 간대 사라지고 그저 나이 들어 자식을 그리워하는 남편만 남아있었다.
가족을 위한다면서도 최하위 등급의 직업을 받아와서 당당하던 무능력한 남편, 지독한 악취와 함께 침실에 드러눕는 더러운 남편, 자신은 버려두고 혼자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했지만, 지금 구윤학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요, 밖에서 바비큐 파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날이 추우니 집에서 먹죠. 다음 달 당신 휴일이 언젠데요?”
“다음 달 휴일은 2주일 후 일요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주영이가 그날 시간이 안 된다면 다른 날로 바꿀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요, 그러면 주영이한테 전화해보고 올게요.”
거실에도 전화기가 놓여있었지만, 아내는 곧장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조용히 차만 홀짝이던 구주성은 아내가 떠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갑자기 누나는 왜요?”
“그냥 나이가 드니 그리운 게지, 뭐.”
그저 핑계만은 아니었다. 기적처럼 찾아온,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귀히 여기며 더 좋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딸을 차별하진 않았다. 구윤학은 더 이상 딸에게 오지 않는 전화에 실망했었고 편지도 보내보았다. 물론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었지만 말이다.
그저 자신이 죽음을 위해 딸에게 부탁도 하고 겸사겸사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가족들과의 행복 넘치는 모습의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죽고 싶었다. 구윤학은 아내와 대화하는 사이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찻잔 속 차가 동이 날 무렵 아내가 돌아왔다.
“때마침 주영이도 시간이 된다고 하네요. 그럼 다다음 주 일요일 낮에 같이 식사해요.”
아내의 말에 구윤학은 벌떡 일어났다. 아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분명 아내가 싫어할 거 같아 멋쩍게 서서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여보.”
“뭐, 당신의 희생에 비하면 별거 있나요.”
아내의 말은 분명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구윤학은 그 말조차 자신의 희생을 인정해주는 거라 여겼다. 자신을 반겨주는 아들, 자신의 희생을 이해해주는 아내. 그리고 2주 후면 보게 될 딸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가족이다.
“그럼 이만 내려갈게요. 고마워요.”
그때 구주성이 허겁지겁 일어나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그때, 그 반지요. 아무래도 돌려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이 말을 끝으로 봉투를 건네받은 구윤학은 집을 나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달리던 불안정한 감정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구윤학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은 것만 같았다. 다시 자신의 차고로 돌아와서는 노트와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족이란 단어를 크게 쓰고는 그 위로 동그라미까지 그렸다. 오늘 자신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구윤학만의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