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수처리장 구 씨 (6)
“내가 봐도 술 때문인 거 같네요.”
그의 아내가 다시금 무심하게 구윤학의 마음을 밟고 지나간다.
“내가 술을 줄일게. 아니, 끊을게. 그러니 정말 괜찮아. 걱정 말아요.”
구윤학은 예전에 자신이 아내를 보듬어주었던 것처럼, 낡은 습관이 튀어나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아내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아내는 구윤학에게 부드럽고 온유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곧 자연스럽게 아래에 놓인 자신의 손을 빼고는 물티슈로 자신의 손을 닦았다.
“다들 식사 끝났지? 이만 일어날까?”
가족들 앞에 놓인 접시들은 대충 비어 있었지만, 구윤학 앞에 놓인 접시에는 여전히 음식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구윤학의 아내는 물티슈로 꼼꼼히 손을 닦고 식사를 끝내자며 일어났다. 아내를 따라 나머지 가족들도 자신들이 쓴 접시를 싱크대로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다. 구윤학도 일어나 접시를 옮기려고 하자 아내가 그를 말렸다.
“괜찮아요. 이만 쉬어요. 굳이 쉬는 날까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해요?”
아내와 아들, 며느리의 움직임으로 식탁은 정리되고 설거지가 이어졌다. 그 사이 구윤학은 식탁에 어색하게 앉아있던 손주들에게 눈이 갔다. 몇 년 만에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건지 모르겠다. 구윤학은 자신의 손주들이 사랑스럽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자 긴장은 풀리고 웃음이 나왔다.
“너무 오랜만에 왔지? 할아비가 말이야.”
큰 손자는 어렴풋이 구윤학을 기억했지만, 작은 손녀는 구윤학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작은 손녀가 기껏 해봐야 말 몇 마디 시작할 때 구윤학이 지하 차고로 내려갔으니 말이다. 구윤학은 그 작던 아기가 이렇게 커버린 세월의 속도에 감탄하며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녀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엄마가 나한테 할아버지는 없다고 그랬어요!”
손녀의 외침에 모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손녀와 구윤학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깐의 정적 후에 찾아온 다급함 섞인 변명. 식사 도중에 자신에겐 말 한마디 걸지 않던 며느리였다.
“아, 아버님. 그게 아니라요! 애가 자꾸 지하 차고에 들어가 본다고 하고... 어... 어, 그래! 자꾸만 아버님을 찾길래! 그래서 그랬어요! 그래서!”
다급하게 두서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 바쁜 며느리였다. 어찌나 당황한 건지 손녀가 말을 더하려고 하자 며느리는 손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아이의 입을 막았다. 구윤학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지하로 내려가기로 한 건 구윤학 스스로가 한 선택이었다. 그러니 며느리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괜찮다, 며늘아기야. 그럴 수 있지.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저 할아버지가 지하 차고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줘도 됐을 텐데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 애쓰는 다른 가족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원망해선 안 된다. 화내서도 안 된다. 가족이니까. 구윤학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차를 마시자는 아내의 말이었다. 아내는 젊었을 때도 화내는 법 없이 수려한 사람이었는데 여전하다. 변한 건 오직 구윤학 뿐이라 느껴진다. 아내는 아들에게, 며느리에게 차례대로 무슨 차를 마실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손주들에게도 뭘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물어본 사람은 4명, 아내가 준비한 찻잔은 5잔. 아내가 차를 마시지 않을 리 없다. 아내는 젊었을 적부터 차를 좋아했고 구윤학 역시 아내와 함께하는 고요한 티타임을 좋아했다. 자신에게는 물어보지 않고 찻잔이 한 잔 모자란 이유는 딱 하나다. 구윤학은 아무 말 없이, 의자의 끌림 소리도 안 나게 조용히 일어나 집을 나왔다.
지하 차고로 돌아온 구윤학은 온몸에 긴장이 풀려 간이침대 위로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오늘 아침은 이제껏 혼자 보낸 휴일들에 비하면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도 가족들의 평화로운 식사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자신이 없어도 잘 지내는 모습에 화날 법도 하고 억울할 법도 하지만, 구윤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잘 지낸다는 건 구윤학에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아내가 자신에게 차를 권하지 않았어도 괜찮다. 며느리가 작은 손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겼어도 괜찮다. 아들 내외가 안방을 차지했어도 괜찮다. 가족이니까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구윤학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이가 드니 주책이구먼, 그저 본인이 늙어서 눈물이 많아진 것일 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나오는 눈물이라고 굳게 믿는 구윤학이다.
사랑의 눈물을 흘리던 구윤학이 갑작스레 목에 멍울을 잡는다. 목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를 중심으로 급격스레 고통이 찾아왔다. 구윤학은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에도 미소를 짓고 있다. 희망의 씨앗이 드디어 제대로 싹을 틔우고 있다. 희망의 싹이 났다. 이 싹은 얼마 안 가서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몸 곳곳으로 줄기를 키워낼 것이다. 그리고 꽃망울이 터지며 더 많은 희망의 씨앗을 만들겠지. 구윤학은 진통제라도 찾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구윤학은 그저 그에게 찾아온 희망과 고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 내 악을 쓰는 대신, ‘하하하’ 웃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왜소한 구윤학이 이겨낼 수 없는 통증은 그의 정신을 잃게 했다.
“헉헉”
가파른 숨을 내쉬며 구윤학이 눈을 떴다. 실신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악무도했던 통증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겠지. 앞으로는 더욱 철저히 점점 더 커지는 암 덩어리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을 숨겨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아니, 죽을 수 있다. 그 누구에게 피해 주지 않고 가족을 지키며 죽을 수 있다.
창문 같은 건 없어서 해가 졌는지 날이 밝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윤학은 시계를 찾았다. 침대 머리맡에 올려져 있는 낡은 알람 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에게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가족 중 누군가 부르러 왔다가 실망한 채 발걸음을 되돌리진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실신해 있던 구윤학은 절대 모를 것이다. 가족 중 그 누구도 구윤학을 부르러 온 사람은 없었다는 걸 말이다.
구윤학은 잠이 오지 않은 채 그저 간이침대에 누워 눈만 꿈뻑이며 산송장처럼 누워있었다. 실신했던 것 때문일까 몸에 힘이 없긴 하지만 잠이 오진 않는다. 그는 예전에 처방받았던 수면제 한 알을 먹고 눈을 감고 있지만, 도저히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 바닥과 벽 사이를 타고 전해지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내외의 목소리였다. 지하 차고까지 들리는 걸 보니 꽤나 격앙된 목소리로 다투는 중인 거 같다. 구윤학은 주의를 기울여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들어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해?”
“애가 아버님한테 다가가서 좋을 건 없잖아. 그저 방지 차원이었어!”
아무래도 아침 식사 때 있었던 작은 소동 때문인 듯하다. 구주성은 아무리 구윤학이 지하 차고에 살고 있더라도 자신들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한다며 화를 냈다.
반면 며느리는 큰 손자 때처럼 작은 손녀까지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을 뿐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입장은 모두 이해된다. 그 어떤 생각이든, 의견이든 가족이니 받아들여야지.
아들 내외는 한참을 더 싸우다가 아이가 우는 소리에 결론은 내리지 못 한 채 싸움을 멈췄다. 자신이 지하 차고에서 지내겠다고 한 선택은 가족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을 아예 나가는 게 정말 모두를 위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지만, 구윤학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구윤학은 그저 아들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며느리와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는 편지 한 통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아내를 잘 보살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직접 말하는 거보단 진심을 담은 편지가 더 와 닿을 것이다.
꿈뻑 꿈뻑. 잠이 든 건지 잠이 들지 않은 건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구윤학의 낡은 알람시계가 울렸지만 구윤학은 시계를 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몇십 년 동안 들은 알람시계 소리인데도 그는 반수면 상태에서 들리는 꿈속의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20분이나 계속해서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구윤학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악취 속으로 들어가는 날임을 깨달았다. 그는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잽싸게 이를 닦고 물로만 얼굴과 머리카락을 대충 묻히고 나서 점퍼를 걸쳤다. 그리고는 곧장 지하 차고를 나와 대문을 지나쳤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 유독 구윤학만이 바삐 뛰었다. 길거리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유흥과 풍류를 즐기는 이들이 즐비했다. 오늘 구윤학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찰 여유도 없었다. 구윤학이 통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 너머로 지나간 버스의 뒤꽁무니만 아른아른 보일 뿐이었다.
“헉... 허억...”
가파르고 갈라지는 숨소리 속으로 목에 통증이 스멀스멀 몰려왔지만 구윤학은 지금 그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재빨리 손을 흔들어 택시를 간신히 하나 잡았다.
“하수처리장으로 가주세요. 얼른요.”
답지 않게 취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질 않나, 거실에서 각혈했는지도 모른 채 잠을 자질 않나, 거기에 출근 버스까지 놓쳐버리다니.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깨져버린 건지 모르겠다. 소음조차 없던 적막과도 같은 일상에 꽤나 부산스러운 소음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통근 버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택시는 통근 버스보다 좀 더 늦게 하수처리장에 도착했다. 구윤학은 택시에서 내려 분뇨처리시설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 출근 체크를 했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분뇨처리시설장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구윤학은 서둘러 작업복을 입었다. 오늘도 정신없이 오느라 머플러를 따로 챙기지 않았다. 다행히 어제 입고 잠든 옷이 하이넥 니트였고 갈아입지도 않고 튀어나오느라 목의 멍울은 가려졌다.
‘제기랄, 집에서 입는 니트였는데...’
구윤학은 그나마 모양새가 괜찮은 하이넥 니트를 나름 아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사준 옷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수처리장에서 뒹굴고 난다면, 더 이상 일상복으로서의 가치는 잃을 거다. 아내가 사준 옷을 악취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구윤학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별수 없었다.
자신의 캐비닛 문을 닫고 옆에 놓인 ‘장현석’이란 이름이 적힌 캐비닛을 보고 나서야 구윤학은 반지를 떠올렸다.
“아...”
조그마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장현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지만,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구윤학은 분뇨처리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장현석을 포함한 다른 노동자들은 벌써 일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지각한 구윤학을 본 노동자들이 힐끔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구윤학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장현석 역시 그에게 왜 늦었냐는 말조차 묻지 않았다. 평소라면 주저리주저리 자기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을 장현석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