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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1. 하수처리장 구 씨 (5)

“꺄아악!”


구윤학이 정신을 차린 건 낡은 알람시계의 울림소리가 아니었다. 여자의 비명인 듯한데 술이 덜 깬 구윤학은 몸을 일으킬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밤새 추위에 떤 것인지 기침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이 다시금 혼미해졌다.


“아버지! 아버지!”


이번에 구윤학을 깨우는 소리는 아들 구주성의 목소리였다. 자신을 흔드는 아들의 움직임에 꾹꾹 밀어 넣었던 숙취가 다시금 올라왔다. 구윤학은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그만하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구윤학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구주성 역시 지하 차고로 내려올 일이 없는데,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에 눈이 팍 떠졌다.


“... 아버지? 괜찮으세요?”


구윤학이 눈을 뜬 곳은 자신의 지하 차고가 아니라 아내와 아들 내외, 손주들이 사는 거실이었다. 구윤학은 자신이 왜 거실에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하려고 애쓸수록 싸구려 술의 지독한 숙취가 몰려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거실 바닥에 핏자국이 흥건하다.


구윤학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에도 핏자국이 남아있다. 거실에 놓인 큰 거울로 시선을 돌렸을 때, 자신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도 볼 수 있었다. 놀란 표정의 구주성과 눈이 마주친 구윤학은 놀라서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몇 년 만에 들어와 보는지 모르는 화장실의 어색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구윤학은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구윤학의 입과 얼굴에는 이미 검붉게 굳어버린 피부터 흐를 듯 말 듯 방울진 피, 그리고 선명한 붉음을 티 내고 있는 피까지 다양이 묻어있었다. 본인이 술에 취해 허덕이던 밤사이에 각혈한 모양인데 그 결과가 꽤나 심각히 아픈 사람처럼 보인다. 본인의 계획을 망칠까 봐 공포심에 몰려오며 구역질도 함께 쏟아졌다.


“우웩, 케엑.”


구윤학이 내는 토악질 소리에 놀란 구주성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괜찮으세요? 의사를 부를까요? 아니면 병원에 가실래요?”


아들의 목소리에는 꽤나 당혹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구윤학은 괜찮다고, 병원에 갈 필요는 전혀 없다고 당장 말하고 싶었지만,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것들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내 곧 속이 진정되고 숨이 트였다.


“아버지? 아버지!”


구역질이나 신음도 들리지 않자 혹여 실신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구주성이 다급히 구윤학을 불렀다.


“괜찮다, 주성아. 단지, 술 때문이야... 술. 그냥 술이 문제지...”


다급한 구주성을 안심시키고 한숨을 크게 고른 구윤학은 얼른 세면대로 가서 얼굴과 손, 목까지 묻어있는 각혈 자국을 닦았다. 구역질한 덕에 이도 닦고 싶었지만, 이 화장실에 자신의 물건은 하나도 없다. 자신의 흔적은 사라진 곳이다. 구윤학은 대충 보이는 비누로 세수를 하고 수건 하나를 들어 목에 멍울을 감싸고 입을 가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정말 괜찮은 거 맞으세요...?”


구주성의 눈빛에 불안함이 가득하다. 자신의 소중한 아버지를 잃을까 봐 불안한 것인지, 자신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고 빚을 떠안을까 봐 불안한 것인지는 누가 봐도 척하고 알아챌 것이다.


구윤학은 오늘이 다행히 한 달에 고작 한 번 있는 휴일이라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긴다.


“나는 이만 내려가 볼게. 아침부터 소란을 만든 거 같아 미안해, 아들.”


“아버지, 오늘 출근 안 하세요?”


구주성과 구윤학이 단절된 지는 이미 오래다. 구주성이 구윤학의 쉬는 날에 대해 알 리가 없다. 구윤학이 지하 차고에서 혼자 죽더라도, 아마 구주성은 파리가 구윤학의 살을 뜯어먹고 구더기가 시체 위 가득하게 올라앉아 있어야나, 위층으로 올라오는 썩는 냄새에 구윤학의 죽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어... 오늘은 휴일이야.”


“그럼 같이 아침도 먹을 겸 얘기 좀 해요, 아버지...”


“그래, 꼴이 말이 아니니 옷 좀 갈아입고 다시 올게.”


구윤학의 말에 구주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구윤학은 집 현관을 나와 자신의 지하 차고로 내려갔다. 지하 창고를 개조한 화장실에 들어가 서둘러 이를 닦고 샤워를 하며 술 냄새를 지워 내려갔다.


하지만, 분뇨 냄새는 닦여나가지 않은 듯 느껴졌다. 구윤학은 짙은 향수를 몸에 뿌리고는 하이넥 니트를 입었다. 집 안에서 입기에는 니트가 좀 두꺼워 보였지만 멍울을 가리기 위해서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재빠르게 단장을 마친 구윤학은 차고를 나가기 전 다시금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의 얼굴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침 일이 생각나 근심도 늘어났다.


구윤학이 1층 현관으로 들어오자 마침 모두가 식탁에 모여 구윤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6인용 식탁이었는데, 못 본 사이에 5인용 식탁으로 바뀌어있었다. 유독 생김새가 다른 의자 하나가 덧붙여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퍽 구윤학 같았다. 구윤학은 그 집의 가족이 아닌 듯 간신히 덧붙인 의자에 앉아 다른 가족들과는 다른 모양의 식기들로 식사를 시작했다.


“아버지, 요즘 생활은 어떠세요?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긴 무슨. 다들 그렇게 일하며 사는 거지. 괜찮다.”


접시에 담긴 따뜻한 수프를 마시려다 수저를 내려놓고는 구주성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데요, 아버지. 혹시 간밤에 안방에 들어오셨어요?”


구윤학이 흠칫 놀라 토끼처럼 눈이 커졌다.


“어... 어... 그랬지. 내가...”


구주성이 비닐에 쌓인 무언가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려 하니 구주성의 아내가 그를 툭 치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더러운 걸 왜 식탁에 올려놔.”


작은 소리였지만, 집안에는 그 어떤 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기에 구윤학은 구주성의 아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구주성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다가 식탁에 올리려던 비닐을 구윤학에게 직접 건넸다.


“안방을 저희 내외가 쓴 지 꽤 됐어요, 아버지...”


구윤학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아들 부부에게 안방을 내주었을 때, 아내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 가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그저 온화한 표정으로 식사를 할 뿐, 오랜만에 본 남편에게 어떠한 내색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이 가족 중 구윤학에게 말을 건네는 건 오직 구주성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어머니가 큰 방을 혼자 쓰긴 싫다고 하셔서요. 어머니 뜻이었어요, 아버지.”


구주성은 자신의 말에 죄송함을 담는 대신, 구윤학 때문이라는 핑계만을 담았다. 하지만, 구윤학은 가족들이, 아니 아들이 그렇다면 그럴 수 있다며 생각했다. 그리고 구주성이 건넨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아침에 제 아내가 일어나서 깜짝 놀랐어요.”


구윤학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아차 싶었다. 구윤학의 마음속엔 자신이 술에 취한 짓이 이런 껄끄러운 식사 자리를 만들게 했다는 자책도 섞여 있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주성이 엄마한테 끼워준다는 걸 그만...”


“아버지 아무리 취하셨어도 피 묻은 반지를 주시면 어떡해요. 어머니한테든, 누구한테든요.”


“피?...”


구윤학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분명 어젯밤 칫솔과 치약으로 반지를 깨끗이 닦았고 불그스름히 빛나는 보석이 박힌 금반지였다. 비닐봉지 속 반지를 꺼낸 구윤학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군데군데 치약으로 광을 낸 곳은 제법 멋스럽게 빛났지만, 붉은 보석이 박혀있던 자리는 온대 간데 사라지고 검붉은 핏자국만 남아있었다. 심지어 반지 안쪽에는 여전히 오물 자국이 남은 듯 보였다. 그때야 구윤학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느꼈다. 왼손 검지와 손톱 사이가 다 벌어져 있었고 그사이를 굳은 피딱지들이 채우고 있었다.


술에 취했던 구윤학은 몰랐다. 그가 온 힘을 주어 닦고 있는 게 반지인지 자신의 손가락인지. 구윤학은 지난밤 그의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묻은 반지를 붉은 보석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붉은 보석보다, 검붉은 그의 피가 가족을 향한 구윤학의 진심과 사랑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그 진심과 사랑을 받은 가족들은 구윤학의 모든 것을 거절했지만 말이다.


“앉아서 마저 식사하세요.”


처음으로 입을 연 구윤학의 아내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오히려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들렸다. 마당에서 손주들에게 한없이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지난달 휴일에 엿들은 구윤학이었다. 하지만 온화한 할머니가 아닌 구윤학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게 연민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다 늙어서 무슨 반지가 필요하겠어요. 그리고 범죄 현장에서 온 거 같은 반지를 갖고 싶어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지난 새벽, 구윤학의 상상 속에서 함께 춤추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신 같던 아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행복한 춤을 췄던 구윤학에게 너무 가혹한 말들이 쏟아졌다. 술에 취해 아내가 반지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본인을 자책하고 또 자책할 뿐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구윤학은 온몸이 떨렸다. ‘털썩’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지만,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잡으면 떨리는 손이 가족들에게 보일까 봐 자리를 벗어나지도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그 반지는 당신 빚 갚는 데에 쓰든지, 그 누추한 옷 좀 버리고 새 옷을 사는 데에 쓰든지 해요.”


과거 한없이 다정했던 아내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구윤학에 대한 분노가 묻어있었다. 구윤학의 아내가 화난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구윤학을 알 턱이 없다. 구윤학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국가를 비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술 좀 줄이지 그래요? 건강검진 결과에 매번 술을 자제하라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돼서 집을 와요?”


구윤학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암을 숨기기 위해 건강검진 때마다 장현석의 피와 소변을 항상 제출했으니 건강검진 결과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윤학은 되레 아내의 잔소리가 기뻤다. 자신의 건강에 관심이 있다는 것 아닌가. 자신에게 사랑이 남았으니 할 수 있는 잔소리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건강관리 잘해요. 애들한테 빚 떠넘기고 죽는 몹쓸 부모는 되지 말아야죠.”


구윤학은 가족과 오랜만에 함께하는 여유롭고 느긋하지만, 생동감과 사랑이 넘치는 식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모든 게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 구윤학을 당황스러웠다. 안 그래도 실내에서 입기엔 두꺼운 하이넥 니트를 입은 구윤학인데 이 모든 상황 속에서 구윤학의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아버지, 정말 병원에 안 가보셔도 되겠어요?”


새벽에는 피를 토하고 팔과 다리는 덜덜 떨면서 땀까지 흘리면서 창백한 구윤학의 모습에 구주성은 급히 말을 꺼냈다.


“아니다. 난 정말 괜찮아. 건강해. 그냥 모든 게 술 때문이야.”


구윤학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건강검진 결과에 쓰인 술을 줄이라는 말 때문에 할 수 있는 변명이 생겨 다행이라 여겼다. 구윤학은 더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해야만 했다. 가족들에게 절대 목에 멍울을 들켜선 안 된다. 가족들이 자신이 아픈 걸 알면서도 숨겨줬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공범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들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떠안게 될 것이다.


“내가 봐도 술 때문인 거 같네요.”


그의 아내가 다시금 무심하게 구윤학의 마음을 밟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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