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1. 하수처리장 구 씨 (4)

“크게 다친 곳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현석 씨. 크게 다쳤으면 가족들이 꽤나 마음 상했겠어요. 그래서 구했어요.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거잖아요.”


“가족은 개뿔. 내가 진 빚 갚으려고 일하는 거지.”


구윤학의 말에 장현석이 빈정거려도 구윤학의 얼굴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나는 그래요. 나는 이 힘든 일도 가족을 위한다면 평생 할 수 있어요. 가족은 나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거든요. 요즘 어린 손자 놈들 보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가족을 상상하는지 구윤학의 입가엔 미소가 절로 났다.

 

“여튼 도와줘서 고맙소.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텐데.”


“전혀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석 씨랑 나랑 입사 동기니까 같이 잘해봅시다.”


50대의 구윤학은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구윤학 역시 장현석이 본인을 고깝게 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장현석을 돕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장현석의 할당량이 남으면, 구윤학은 자신의 퇴근 시간을 미뤄가며 장현석을 도왔다.


처음에 장현석은 가식적이여 보이는 구윤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 없이 본인을 위해 일해주고 도와주고 대신 상급자에게 혼나 주기까지 하는 구윤학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퇴근 후 함께 마시는 술은 그 둘을 더욱이 가깝게 만들었다.


그 많던 술자리에서 장현석은 구윤학이 가족을 뼈저리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가족밖에 남은 게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반면, 구윤학은 장현석이 가족애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이혼까지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척박하고 역겨운 노동 속에서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그 둘에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장현석은 구윤학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고 되레 구윤학을 도왔다. 이것이 이 둘이 우정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서로를 구태여 이해할 노력이나 바꿀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묵묵히 도와주는 것. 그렇게 20년을 이어온 우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란다.




몇 병의 술병이 깨끗이 비워진 건지 모르겠지만, 구윤학과 장현석의 얼굴을 보면 그들이 꽤 많이 마셨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둘 다 벌게진 얼굴에 살짝이 풀린 눈꺼풀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이봐 혹부리 영감, 그때 나는 왜 구했대? 다들 멀찌감치 떨어져 쳐다만 보고 있던데.”


장현석의 혀가 살짝 꼬이긴 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때가 언제여?”


“자네랑 나랑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말이야. 왜 있잖나. 내가 똥 구렁텅이로 홀라당 자빠져버린 날.”


“아아, 그때? 사람이 사람 구하는 데 뭔 이유가 필요하겠나?”


구윤학은 그리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귀중함을 알고 국가에 보답하고자 하던 충실한 노동자였다.


“그러면 말이야, 구 씨. 내가 자네를 구하는데도 이유는 필요 없겠지?”


죽음으로 구윤학을 구하겠다는 건지, 암으로부터 구윤학을 구하겠다는 건지 장현석의 말은 알 듯 말 듯 묘했다. 하지만, 구윤학은 자신의 친구가 당연히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의 영혼을 좀 구해주게나.”


구윤학은 껄껄 웃어댔다.


구윤학과 장현석도 이내 곧 허름한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찬란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던 노동자들과 별반 다름없이 자신들의 젊은 시절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이미 수도 없이 말해서 서로가 알고 있는 황금빛 젊은 시절 이야기. 이제는 그마저도 낡은 오르골처럼 이야기의 소리도 변하고 탁해져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허나, 노동자들은 이 낡은 오르골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다들 한 번씩 되감아 보고, 또다시 돌려보며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회상하며 자위할 것이다.




‘쾅’하는 소리에 놀라 다급히 눈을 뜬 구윤학은 얼마나 마신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시야가 뿌옇게 변해버렸다. 소리를 낸 장본인은 장현석이었다. 그의 머리는 테이블로 처박혔다. 이제야 집에 왔다며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완전히 취한 듯 보인다. 구윤학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가게 주인을 불렀다. 구윤학의 부름에 종업원인지 주인인지 모르는 행색의 사람이 주방에서 나왔다.


“계산하시려고요?”


“네, 계산해주세요.”


“여기에 동공 센서가 있고 지문 센서는 여기 있습니다. 동시에 대주세요.”


가게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철제가 놓여있었다. 홍채와 지문으로 사람을 인식해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이기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카드나 현금 같은 건 필요 없다. 계산대 위에는 50cm 정도 되는 봉이 놓여있고 여기엔 홍채 인식 센서와 지문 인식 센서가 달려있다. 홍채 인식 센서는 똑똑하게도 구윤학의 눈 위치로 스스로 움직였다. 홍채 센서에 맞춰서 눈에 힘을 주어 크게 뜨려 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술을 먹은 탓인지 구윤학은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고객님. 홍채 인식이 힘드시면 ID카드로 대신해도 됩니다.”


그 말에 구윤학은 안주머니에서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다 헐어버린 지갑에서 ID카드를 꺼냈다. 지갑을 쓸 일이 없어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건지, 아니면 자신의 삶 마냥 모든 걸 포기해버린 건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구윤학도 그다지 자신을 잘 꾸미고 가꾸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윤학의 옆에는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다. 두 사람이 친구이던 시절부터 구윤학에게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어떤 식으로 머리를 자를지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구윤학은 그녀의 섬세함과 다정함에 반했고 그 둘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그의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구윤학을 멀끔히 보이도록 다듬어주고 챙겨주었다.


하지만, 구윤학이 지하 창고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 번도 구윤학을 먼저 찾아와 그의 옷을 다듬어주거나 살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구윤학은 지금 누가 봐도 누추하다 못해 다 해져버린 옷을 입고 다닌다. 헐어버린 지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삶에 더는 필요치 않은 부분이 되어버린 것이겠지. 그의 아내가 본다면, 꼴이 이게 뭐냐며 당장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 눈부신 것들로 그의 공허함을 잔뜩 채워주겠지만, 구윤학에게 더 이상 그런 아내는 없다.


눈부신 것.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 갑자기 구윤학은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자는 장현석에게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구윤학은 털썩 주저앉아 장현석의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겉옷 주머니에는 없다. 바지 주머니에도 없었다. 그때, 구윤학은 장현석 겉옷의 안주머니를 발견하고 집요하게 뒤졌다. 그리고 장현석이 오후에 분뇨처리장에서 꺼낸 반지를 찾았다. 반지를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껴보니 딱 맞았다. 그러고는 땅을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주인장 양반, 이 사람 깨면 집 좀 잘 보내주쇼,”


원래의 구윤학이었다면, 장현석을 집까지 데려다주었을 거다. 하지만, 오랜만에 술에 심히 취한 구윤학은 사리 분별이 되지 않았다. 구윤학은 구석진 골목을 뛰어나와서 급히 택시를 잡았다. 가슴이 두근, 두근거리는 걸 참느라 힘이 들었다. 취한 거 같이 보이지 않는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윤학의 몸은 택시 뒷자리에 앉아있음에도 눈과는 반대로 비틀거렸다.


맨 정신이었다면, 거리 곳곳에서 젊음의 자유를 느끼는 자들을 혐오하고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을 구윤학이다. 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구윤학은 젊은이들을 보며 자신이 가져온 반지보다 더 값어치 있고 영롱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구윤학의 부모는 그다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매일 그들은 누구의 빚으로 생활비를 내는지 싸웠고 심지어 어린 아들이 빚을 내길 바랐던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성인이 된 17살에 구윤학은 부모와의 이별을 택했다.


자기 자신을 꾸밀 줄도 몰랐던 소박한 청년이었지만, 부모에게 억눌려 살던 시간을 지우기 위해 화려한 집과 차로 자기 자신을 채우기 시작했다. 화려해진 구윤학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날마다 구윤학의 화려한 집에서는 파티가 이어졌고 파티가 없는 날엔 훌쩍 여행을 떠나 호화로운 날들을 즐겼다.


그러다가 만난 게 지금의 아내다. 화려하기만 할 뿐 어울리지 않는 상의와 하의, 거기에 비싸 보이지만, 기괴한 모자와 가방을 두른 구윤학을 보고 미소 짓던 아내. 구윤학의 사치스러운 파티와 호화로운 여행은 아내를 만나며 끝났다. 아내와 함께하며 좋아 날뛰는 군중 속에서 느끼던 고독을 더는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구윤학은 항상 아내를 위했다. 자신이 보고 자란 부모의 이기적임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구윤학의 기준은 아내이자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분뇨처리시설에서 일하더라도, 그 일을 하며 치욕스러운 것들을 겪어도 구윤학은 행복했다.




구윤학의 회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택시기사가 먼저 도착했다는 말을 해왔다. 구윤학은 가게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홍채 인식이 되지 않아 ID카드와 지문으로 결제를 하고는 비틀거리는 몸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택시에서 내렸다. 구윤학은 바로 자신의 지하 화장실로 달려갔다. 자신이 쓰던 칫솔에 치약을 묻혀 열심히 반지를 닦았다. 눈에 초점이 흐려져 손가락을 비비고 있기도 했지만 구윤학은 어느 때보다 안간힘을 썼다. 물로 치약을 닦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니 반지는 제법 멋졌다. 가운데 불그스름히 빛나는 알맹이도 박힌 반지였다.


구윤학은 자신이 선물하던 반지, 옷, 사랑을 좋아하던 아내에게 얼른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평소라면 절대 위층으로 향하지 않았을 그가 반지를 가지고는 집 현관으로 들어갔다. 흐릿한 시야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히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에는 하나도 늙지 않은 듯 보이는 아내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다행히 아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구윤학은 조심스레 자신이 가져온 반지를 잠든 아내의 약지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약지 손가락에서 빛나는 보석 박힌 금반지라니. 구윤학은 아내와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행여 아내가 깰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방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구윤학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50여 년 전 아내와 했던 결혼식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구윤학은 마치 20대의 새신랑으로 돌아간 듯 느꼈다. 결혼식 날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라고 여겼다. 마치 여신이 하늘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고 느꼈다.


아내, 아니 여신의 작고 부드러운 손을 마주 잡고 췄던 춤을 구윤학은 지금 거실에서 추고 있다. 마음속의 클래식 음악 소리가 고막을 진동시켰고 가슴속에 남아있는 드레스 입은 아내가 내민 손을 잡자 그리웠던 감촉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최고로 행복한 춤을 추었다.




“꺄아악!”


구윤학이 정신을 차린 건 낡은 알람시계의 울림소리가 아니었다.

이전 05화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