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수처리장 구 씨 (3)
“하지만, 그건 자네가 가지면 안 될 텐데 말이야?”
구윤학의 말이 맞다. 아무리 분뇨 속에서 피어난 진주일지라도 노동자들은 분뇨와 함께 밀려온 어떤 것에도 소유권이 없다.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올려야 할 일이지 누구에게 선물할지를 고민하면 안 된다. 하지만, 장현석에겐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와 자네만 입 다물면 될 일이지.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굴어.”
“그래도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게 원칙이니까.”
“자네는 그렇게 보고를 잘해서 상급자한테 혹부리 영감이라고 보고했나?”
능글스럽게 웃으며 장현석은 역설적인 말을 내뱉은 구윤학을 쳐다보았다. 구윤학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자네 걱정되어서 한 말이었네. 자네 마음대로 하게.”
구윤학은 다시금 분뇨 속의 쓰레기를 건지러 내려갔고 장현석은 자신이 건진 보물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웃어 보였다.
“니들은 보석도 품고 있구나, 좋겠다. 똥 주제에 가진 것도 많아서,”
구윤학은 분뇨를 헤집으며 혼잣말을 했다. 구윤학의 말처럼 때때로 분뇨는 악취뿐만 아니라 값비싼 것들도 품고 있었다. 다들 상급자한테 보고하지 않고 쉬쉬하며 하나씩 챙기는 모습들을 보면 구윤학은 자신이 더 초라해졌다. 이제는 자신에게 남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구윤학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분뇨 속에서 앞으로 20년을 넘게 허우적거려야 하니까 말이다.
12시간 동안 분뇨 속을 헤집고 다닌 구윤학은 기운이 다 떨어졌지만 약 복용자인 장현석은 멀쩡했다. 그들은 남들보다 늦게 샤워를 하고 나와 장현석의 주도로 통근 버스가 아닌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구윤학은 집과 일 외에는 아무런 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집이 맛있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저 묵묵히 장현석을 따라갈 뿐이었다.
장현석은 술을 마실 생각에 꽤나 들떴는지 이래저래 떠들었지만, 구윤학은 대충 대답만 해주었다. 그는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다 갑작스레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이자 표정을 구겼다.
장현석을 잇달아 가다 들어선 곳은 화려한 거리랑은 대비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정육 식당이었다. 이곳엔 젊은이들은 하나 없고 자신들과 비슷해 보이는 처지의 늙은 노동자들만 몇몇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왜 이리 허름해 보이는 곳으로 온 건가. 난 자네가 술에 대해선 꽤나 사치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구윤학은 돈, 꽤나 쓰겠다는 생각으로 장현석을 따라왔지만, 도착한 곳이 퍽 초라해 의아했다.
“어이구, 이 혹부리 영감은 세상 돌아가는 걸 참 모르는구먼.”
“아무래도 돌아다닐 일도 없고 밖에서 먹을 일도 없다 보니 그렇지.”
“쯧쯧, 자네 가족은 이만 비우고 주변에 관심 좀 가져봐.”
장현석의 말에 구윤학은 그저 고개를 떨어뜨렸다. 침묵이 계속되자 ‘흠흠’ 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장현석은 종업원에게 돼지고기구이 2인분과 술 2병을 주문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 같지 않아. 괜히 이런 비루한 모습으로 큰 가게에서 술을 먹다가 시비 붙은 이야기가 한두 개가 아니라고.”
“아, 그런가... 하긴 우리 때와는 또 달라 보이긴 하더라고.”
“그래, 이 혹부리 영감아. 괜히 시비 붙어서 좋을 거 하나 없어. 아무리 행패 부리고 때린 놈이 우리 대신 일 해줄 거라 해도 늙은이가 다쳐서 얼마나 골골대려고.”
장현석의 말에 수긍한 구윤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일에 휘말려 좋을 거 하나 없었다. 폭행이나 사고로 국가의 노동자가 다치면, 가해자는 노동자의 상해 정도에 따라 노동자가 가진 빚을 떠안게 된다. 하지만, 그 일로 생길 후유증이나 마음의 상처는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기에 그냥 피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도시 거리의 구석진 곳에 가게들이 생기고 그곳은 비루한 노동자들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딱 맞게 가게 역시 누추해 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문인지 젊은이들은 이런 가게 근처를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이내 그들이 주문한 고기와 술이 나왔고 고기는 불판 위로 바로 올라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탐스럽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장현석은 술병을 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구윤학 앞에 놓인 잔도 채워주었다.
“혹부리 영감, 내가 오늘 이 술을 마시려고 저녁밥도 조금만 먹었다고.”
반달로 휘어진 장현석의 눈과 입에서는 분뇨를 뒤덮고 일할 때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현석은 구윤학과 건배를 하기도 전에 자기 잔에 담긴 술을 홀라당 마셔버렸다.
“이런 냉혈한. 아무리 술이 좋아도 그렇지. 건배도 안 하고 자기 혼자만 마시나.”
구윤학도 장현석이랑 함께 하는 이 자리가 좋은 것인지, 퇴근 후 말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평소였다면 안 마셨을 술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으윽, 언제 마셔도 술은 나랑 참 안 맞아.”
30도가 넘는 싸구려 술을 들이켠 구윤학은 재빠르게 자신의 앞에 놓인 땅콩을 집어먹었다. 구윤학은 장현석이 이렇게 쓰디쓴 술이 뭐가 좋다고 홀랑홀랑 마셔대는지 알 턱이 없었다. 구윤학의 속도 모르고 장현석은 금세 넉 잔을 비웠다.
구윤학은 아무런 맛도 없이 입과 목을 소독하는 느낌에 잔을 비울 때마다 고개를 찌푸렸지만, 불판 위 고기가 다 익었을 땐 이미 둘이 술 한 병을 다 비운 상태였다.
고기와 함께 두 사람의 얼굴도 달아오른 모양이다. 두 사람의 볼이 불이 아닌 술로 인해 벌겋게 익었다.
“크으, 내가 이 맛에 살지, 살아. 가족이고 뭐고 다 쓸모없다네.”
두 번째 병을 따 자신과 구윤학의 잔을 채우며 장현석이 말했다. 구윤학은 그 생각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영감 보게? 자네는 자네 가족이 그렇게 중요한가? 지금 자네 처지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어?”
장현석은 구윤학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구윤학은 그의 말에 그저 목청을 긁어내리는 듯한 술만 넘겼다.
“아니, 세상에 제 아버지를 지하실로 내쫓는 자식이 어딨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말이야.”
장현석은 자신이 겪은 일도 아닌 일에 구윤학 대신 열심히 화를 내었다.
“날 내쫓은 건 아들이 아니라 나일세. 우리 주성이가 얼마나 착한 아들인데 그래.”
구윤학은 아들을 감쌌지만, 입에 맞지 않는 독한 술보다 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착한 건 자네 아들이 아니라 구 씨 자네랑 나지. 뭘.”
장현석은 매사에 타인에게 친절하고 성품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구윤학에게는 한없이 좋은 친구인 건 사실이다. 장현석은 구윤학의 목에 멍울이 생긴 것도, 구윤학이 암이라고 한 얘기도 묵묵하게 듣기만 했었다. 구윤학을 상부에 고발하면 충분히 자신의 빚이 탕감될 수 있음에도 침묵을 택했다. 상반기, 하반기로 진행되는 노동자 건강 검사에서도 구윤학에게 자신의 피와 소변을 나눠주었다.
“자네 정말 치료는 안 받을 텐가?”
능글맞던 웃음이 싹 가신 얼굴의 장현석이 구윤학에게 물었다.
“이건 내게 희망이네.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난 누구보다”
장현석은 죽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구윤학의 말 잘랐다.
“듣는 귀가 많으니 조용히 말하게. 자네 취했어.”
“오랜만에 마시는 이딴 맛없는 술에 취하다니 나도 정말 늙었나 보네.”
구윤학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족이라고 자네처럼 품 안에 꼭 쥐고 있을 순 없는 걸세.”
“자네에게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한때는 우리 주성이가 나와 아내에게 큰 희망이었다고.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를 어찌 내보내겠어.”
구윤학은 간절히 죽음을 원하고 목에 잡힌 멍울이 암이자, 희망의 씨앗이라 말하면서도 가족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자살하지 못하는 이유도 자신의 빚이 아들에게 돌아가게 할 수 없어서다. 기적이자 희망이었던 아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떠넘길 수 없어서, 구윤학은 자신을 지하실에 가두고 불행을 감싸 안고 사는 중이다.
“너무 인생이 고되지 않나. 영양제라도 다시 먹어보게.”
장현석은 진심으로 친구 구윤학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전했다.
“그거 먹어서 기분만 행복해지면 뭐 하나. 나는 여전히 지하실에서 잠들고 일어날 텐데 말이야.”
구윤학의 말에 장현석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무리 구윤학의 아들과 가족들을 욕해봤자 구윤학은 가족을 평생 놓지 못할 사람이란 걸 알기에 그저 찰랑이는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내가 다시 약을 먹기 시작하면, 자네가 손해 아니겠어?”
무거운 분위기를 깨기 위해 구윤학은 장현석에게 농담을 건넸다.
“에이, 이 친구야. 내가 영양제 살 돈이 아까워서 다 죽어가는 놈한테 그냥 죽으라고 떠밀어 버리겠어?”
구윤학이 지하실로 처박히던 날 이후 노동자에게 ‘영양제’라고 보급되는 약을 끊으며, 구윤학은 자신의 약을 장현석에게 주기 시작했다. 하루 한 알 무료로 지급되는 영양제를 더 사기 위해서는 또, 다시 빚을 져야 하지만, 구윤학 덕분에 장현석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장현석의 말은 진심이었다. 구윤학이 더 오래 자신의 친구로, 동료로 남길 바랐다.
“이봐, 혹부리 영감. 오래 살게나. 자네의 바람과는 다르지만, 나는 자네가 오랫동안 나와 이렇게 지내길 바라네.”
능글맞은 성격이어도 무뚝뚝한 성격의 장현석은 진중하고 애정 섞인 말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큭큭, 자네 지금 사랑 고백하나?”
진지한 분위기를 깬 건 구윤학이었다. 구윤학 역시 가족들에겐 한없이 다정하지만 속을 내보이는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구윤학의 놀림에 안 그래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열을 내며 장현석은 술을 들이켜고 잔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놨다.
“이 친구가 말이야.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어? 아주 오늘 혹을 떼 버려야겠어.”
두 사람은 분뇨처리시설에서의 악취는 잊은 채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의 술병은 점점 늘어갔다.
구윤학과 장현석은 분뇨처리시설에서 처음 만났다. 둘 다 같은 날에 새로 분뇨처리시설에 배정받아 일을 시작했다. 그때의 구윤학은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주변 동료들과도 곧잘 지냈다.
되레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건 장현석이었다. 신입치고도 곧잘 적응하고 자신의 할당량을 채우는 구윤학과 달리 장현석은 매사에 서툴고 실수도 잦아서 상급자에게, 같이 일하는 노동자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장현석은 그런 구윤학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 사건이 터졌다. 장현석이 발을 헛디뎌 분뇨 구덩이 속으로 빠져버렸다. 분뇨처리장은 1.3m 정도의 깊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장현석은 몸 구석구석으로 쳐들어오는 분뇨에 정신을 못 차리며 허우적거리다 넘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장현석을 돕기 위해 나서길 망설였다. 장현석을 돕다간 자신도 분뇨를 온몸에 뒤집어쓸 게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윤학은 달랐다.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처리장으로 걸어오던 구윤학은 분뇨 구덩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는 장현석을 보고 바로 분뇨 속으로 뛰어들었다. 장현석은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구윤학에게 구해졌다. 둘 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뇨를 뒤집어썼고 코를 훌쩍일 때마다 역겨움이 밀려왔고 입에서는 상상해본 적 없는 맛과 냄새가 치밀었다.
장현석과 구윤학이 샤워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잠시 쉬는 동안 장현석은 구윤학이 자신을 도운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봐요. 구 씨랬나?”
“네, 현석 씨. 구윤학이라고 해요.”
인자하게 웃어 보이는 50대의 구윤학에겐 구김 하나 없어 보였다.
“왜 날 구했소? 다들 쳐다만 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더니만. 겁먹은 쥐새끼들 마냥.”
“크게 다친 곳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현석 씨. 크게 다쳤으면 가족들이 꽤나 마음 상했겠어요. 그래서 구했어요.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