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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1. 하수처리장 구 씨 (2)

“이봐, 자네. 목에 그게 뭔가? 당장 병원에 연락해야겠어!”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 구윤학에게 말했다.


구윤학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서둘러 손으로 목을 가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장현석이 다급하게 외치던 목소리와는 달리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구윤학은 목소리의 주인이 장현석이란 사실에 안도하며 자신이 느끼던 허전함의 원인을 찾았다.


“항상 하고 다니던 머플러는 어디에 두고 목에 난 혹을 자랑하고 돌아다니나, 이 친구야.”


장현석은 얼굴에서부터 묻어나는 자신만의 능글맞음으로 구윤학을 대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겨울이어서 점퍼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여기 왔으니 망정이지.”


구윤학은 옷 주머니를 뒤적이며 허둥지둥 자신의 머플러를 찾는 와중에도 장현석의 말엔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혹부리 영감, 혹 가릴 머플러는 찾았어?”


바지에서 티셔츠, 점퍼 주머니까지 여러 번 손을 넣어 헤집어봤지만, 머플러를 찾지 못했다. 어디에 놔둔 건지 생각해보다, 구윤학은 오늘 아예 머플러를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꿈자리부터 뒤숭숭하더니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가진 희망의 씨앗을 남들에게 빼앗길 뻔했다.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이 자신의 사정을 아는 장현석이기에 망정이지. 정말 다른 노동자에게 발각되었으면 바로 병원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챙기지 않은 모양이야...”


“쯧쯧, 여분으로 몇 개 챙겨서 사무실에 놓기라도 했어야지. 혹부리 영감인 걸 그렇게 감추고 싶었으면 말이야.”


혀를 차며 말하는 장현석에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구윤학은 황망히 거울 속 자신의 멍울만 보는 중이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희망의 씨앗을, 이렇게 쉽게, 이렇게 억울하게 빼앗길 순 없다. 아직 싹이 트지 못한 가엾은 것. 애처롭게 자신의 목을 바라보고 있는 구윤학에게 다시 한번 혀를 차며 장현석은 팔토시를 건넸다.


“이거라도 목에 잘 감아보게. 잘 두르면 꽤 쓸 만할 거야.”


황망하던 구윤학의 눈빛에 다시금 빛이 들었다. 다급히 장현석이 건넨 팔토시 한 짝으로 꼼꼼히 목을 감쌌다. 나머지 한 짝으로는 조금 느슨히 감아 머플러인 양 보이게끔 각을 잡았다. 목에 잡힌 멍울을 완벽히 가리고서야 장현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정말 고맙네, 친구.”


“그 정도로 뭘. 어차피 볕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일하는데 팔토시 하나 안 했다고 타 죽기야 하겠어?”


장현석은 여전히 능글맞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장현석의 말처럼 그들이 일하는 분뇨처리시설은 지하여서 살이 탈 일이 없다. 장현석은 그저 별 효과 없는 작업복 대신 자신의 몸에 분뇨가 스며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팔토시를 껴왔다.


“그저 분뇨 냄새가 좀 더 날 뿐이겠지? 크, 그 지독한 분뇨 냄새를 피하려고 내가 가져온 건데 하필 자네한테 이렇게 뺏기다니. 내가 자네의 은인인 건 알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고마우니 술을 대접해야지. 자네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도 사고 말이야.”


장현석이 공치사를 이어가는 와중에 말을 끊은 구윤학은 장현석의 뒷말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예상하였다. 장현석은 지독한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 중독이라 말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지만, 장현석은 항상 자신은 중독까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장현석이 구윤학의 혹을 이해해 주는 거처럼 구윤학도 장현석을 술 사랑을 이해해준다.


장현석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가슴께 주머니에서 약통 하나를 꺼냈다. 약통에서 알약, 두 알을 꺼내 물도 없이 집어삼켰다.


“자네 약이 늘었구먼. 술도 늘고 약도 늘고 제정신일 때가 없겠어.”


구윤학과 장현석의 상황은 이제 반대가 된 듯하다. 구윤학이 장현석이 약 먹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예전에는 한 알로 충분했지.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에는 두 알은 먹어야 일할 때, 힘도 나고 기분도 좋더라고.”


장현석의 대답에 구윤학은 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둘은 시간을 확인하고 분뇨처리시설 내부로 향했다.


“이봐 혹부리 영감, 자네 진짜 다시는 영양제 안 먹을 거야? 이렇게 좋은 걸 안 먹는다는 게 말이 돼?”


장현석이 좋다고 칭찬한 약은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약이다. 영양제라고들 말하지만 구윤학에겐 그저 의미 없는 환각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구윤학이 이 약을 먹은 적 없는 건 아니다. 과거엔 그도 약을 먹으며 분뇨처리시설에서의 고된 일을 기꺼이 이겨냈다. 약을 먹으면 분뇨의 지독한 냄새도 이겨낼 수 있었고 집에 가는 발걸음 또한 가벼웠다.


하지만, 구윤학의 삶이 지하 창고로 처박히던 날부터 구윤학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다. 일의 의미도, 이유도 잃어버린 그에게 필요한 건 삶과 노동이 행복한 것처럼 꾸며주는 환각이 아니라 진실된 가족의 사랑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구윤학에겐 자신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약마저 필요 없게 되었다.


“영양제는 얼어 죽을. 개소리 말라해.”


순간 큰소리를 낸 구윤학에게 장현석은 놀라서 목소리를 낮추라며 그를 가라앉혔다.


“그냥 환각제일 뿐이잖아, 이 사람아.”


목소리를 낮춘 구윤학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환각제는 무슨. 영양제야. 그러니 이렇게 힘도 나고 기분도 좋아지지.”


영양제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장현석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구윤학은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구윤학이 가족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장현석은 약과 술을 놓지 못하는 것일 뿐, 두 사람은 여전히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다. 굳이 서로를 이해시킬 필요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냄새가 분뇨처리시설 내부로 들어오자 악취로 변해 역겨움을 더 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도시 곳곳의 가정에서 변기로 내려보낸 분뇨들을 처리하는 곳이다. 분뇨들 사이에 껴있는 쓰레기를 제거하고 분뇨에 남아있는 습기를 제거한 후 냄새를 제거해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는 비료로 쓰이는데 구윤학과 장현석이 맡은 일은 분뇨들 사이의 쓰레기를 제거해서 분뇨의 물기를 빼는 필터가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분뇨들 사이의 쓰레기를 제거하는 건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는 것만 치로 쉬운 일이 아니다. 5m가량 되는 너비의 처리장에 모인 분뇨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별별 것들을 골라내야 한다. 쓰레기들이 필터를 막기 전에 서둘러 골라내야 하고 처리장 중간중간에 있는 구멍이 큰 필터에 걸린 쓰레기들도 치워줘야 한다. 때로 너무 크게 뭉쳐있는 분뇨 덩어리가 필터를 막으면 손으로 으깨기도 해야 한다.


분뇨처리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분뇨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다. 처리장 안에서 발이라도 헛디디는 날에는 몸속으로 갑작스레 침범하는 것들을 무방비하게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노동자들이 영양제라 불리는 환각제를 먹으며 일을 한다지만, 피부에 닿는 분뇨에도 충분히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입과 코로 들이닥치는 분뇨는 더욱이 역겨울 것이다.


구윤학은 어제와 다름없이 분뇨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닌다. 장현석은 처리장 옆 통로에서 뜰채를 가지고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건져 올리는 데에 열중하는 중이다. 처리장의 다른 노동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구윤학처럼 스스럼없이 분뇨 사이를 걸어 다니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다들 표정을 구기며 간신히 분뇨들 사이로 들어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몸에 분뇨들이 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양제를 복용하는 이들도 분뇨들 속으로 들어가는 걸 꺼리며 역겨워한다. 하지만, 영양제를 복용하지 않는 구윤학은 오히려 덤덤한 표정으로 그 속을 뒤진다.


아마 노동자들 사이에서 구윤학을 ‘하수구’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허나, 구윤학은 더는 이 분뇨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만, 분뇨들은 후에 비료가 되어 씨앗의 성장을 돕고 농부의 풍요로움을 만든다.


그러나, 똑같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구윤학은 아무것도,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되레 자신보다 분뇨가 더 나은 처지라 생각한다. 흙으로 돌아가 풍년을 부를 분뇨, 지하 차고로 들어가 악취를 옮길 구윤학. 과연 무엇이 더 의미 있는 존재일까. 구윤학은 이제 알지 못한다.


인어처럼 분뇨 속을 자유로이 헤치며 일을 하던 구윤학을 멈추게 한 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분뇨처리장 노동자들은 다들 식당이 아닌 샤워장으로 향한다. 다들 고약한 냄새와 밥이 함께 넘어갈 리가 없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한들 샤워를 한 후에 밥을 먹을 수 있다.


“구 씨, 점심시간이야!”


여간해선 구윤학에게 말을 걸지 않는 다른 노동자가 구윤학을 불렀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 먼저들 가세요.”


구윤학은 처연하게 대답했지만, 혹여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샤워하다가 목에 잡힌 멍울이 탄로 날까 핑계를 댄 것이다. 구윤학은 항상 샤워장에서 노동자들이 빠져나갈 때, 샤워하러 들어갔다. 이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이 다 늙은 처지에 내외하는 거냐고 비아냥대며 구윤학과 멀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구윤학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목에 잡힌 멍울이자 암 덩어리를 지키는 것이다.


샤워를 마친 노동자들은 식당이 아니라 분뇨처리시설 사무실로 향한다. 분뇨처리장 노동자들이 매달 건의사항에 방독면을 제공해달라던 소원 수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하수처리장의 다른 부서 노동자들이 낸 건의사항은 얼마 안 가 소원 수리되었다. 그렇기에 분뇨처리시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식당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밥을 먹는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들 분개하며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내 곧 다른 부서 노동자들의 조롱 섞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다.


뒤늦게 샤워를 마치고 사무실로 온 구윤학은 자신의 식판을 바라보며 허공에 젓가락질만 할 뿐 딱히 무언가를 입에 넣거나 씹지 않았다.


“이봐, 구 씨. 왜 이렇게 먹는 게 시원찮은가?”


장현석은 비위가 좋은 건지 약 기운 때문인지 자신의 식판을 비운 지 오래였다.


“뭐... 그냥 입맛이 없네.”


당연히 구윤학의 입맛이 없을 수밖에. 오물 속에서 4시간을 절여져 있던 사람이다. 구윤학은 자신의 식판을 장현석에게 밀었다.


“고기볶음은 손도 안 댔네. 더 먹을 텐가?”


구윤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현석은 구윤학 식판의 고기볶음을 덥석 집어 들어 자신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이 고기로 퉁 칠 생각은 말게나. 오늘 밤에 바로 먹으러 가자고.”


장현석은 다시금 구윤학이 말했던 술대접을 상기시켰다.


“섭섭한 소리 말게. 설마 내가 한 약속이 있는데 이거로 끝내겠나. 오늘 밤 좋지.”


집에 들어간다 한들 그 누구도 자신이 들어온 지조차 모를 집으로 바로 향하는 우울한 일과에서 벗어난 구윤학은 피식 웃어 보였다.




점심시간은 샤워하며 젖은 머리가 자연스레 다 마를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노동자들은 다시금 지옥 같은 분뇨 늪을 헤엄치러 향했다. 그 와중에 장현석은 뜰채로 비싸 보이는 반지를 건졌다며 좋아했다.


“크, 혹부리 영감, 이것 좀 보게.”


자신의 작업복으로 반지를 쓱쓱 닦으며 구윤학에게 보여주었다.


“잘 봐봐. 변이 좀 묻긴 했지만, 안에 24k라고 써진 거 보여?”


구윤학은 별 관심 없었지만, 장현석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 똥 밭에서 굴렀어도 금은 금이네.”


“물이랑 치약으로 잘 닦은 다음에 소독제 좀 뿌리면 냄새도 싹 가실 거야.”


“하지만, 그건 자네가 가지면 안 될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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