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수처리장 구 씨 (1)
80세 정도로 보이는 노인은 지역 하수처리장의 분뇨처리시설에서 일하는 최하급 노동자다. 노인의 이름은 구윤학이지만, 대부분 ‘하수처리장 구 씨’라고 부른다.
그의 입술 옆에는 대충 튀어나온 점이 있고 나이에 비해 검버섯 하나 없는 유독 창백한 얼굴에는 감정을 띄운 적이 없다. 해가 뜨기 전, 지하 수도에 출근해 해가 다 져도 일하는 그에겐 검버섯은 사치인 듯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그는 이 지독한 삶이 조금이나마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
구윤학에게서 풍기는 분뇨 냄새에 되레 짓궂은 이들은 그를 하수구라 부르며 낄낄거린다. 하지만, 자신을 ‘하수구’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화내지 않는다. 구윤학 역시 이젠 자신이 하수구에 흐르는 오물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엔 분명 구윤학도 지독한 분뇨 냄새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길 바랐다. 손에 묻은 분뇨가 더러워 손이 불어 터질 때까지, 손을 닦고 온몸에 습진이 생길 때까지 몸을 닦았다. 그러나, 아무리 향기 좋은 세정제도, 비누도 지독한 분뇨 냄새를 이기지 못했다. 구윤학을 따라온 분뇨 냄새는 그와 가족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히 역겨웠다.
구윤학이 40살이었을 적, 직업 시험과 적성 시험을 통해 직업이 정해졌다. 최하위 등급의 직업이어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안락한 집이 있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국가가 그를 사랑해준 만큼 자신도 국가를 사랑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국가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게 더 정확하다. 국가는 그에게 돈도 주었고 일도 주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들이 불행의 씨앗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허나, 구윤학에겐 불행을 끝내줄 희망의 씨앗이 생겼다. 몇 달 전부터 시작된 각혈이 잦아들 생각을 않더니 목에 멍울이 잡혔다. 멍울은 꽤 빠른 속도로 커지는 중이었다. 젊은 그였다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국가의 지원으로 치료를 받았겠지만, 노동자에겐 새로운 빚을 지면서 치료받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구윤학은 역겨운 냄새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희망은 죽음뿐이라 믿기에 병원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다.
구윤학은 자신의 목에 자리 잡은 멍울이 암일 거란 확신을 하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암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살은 꿈도 못 꾸는 구윤학에게 멍울이 암이라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으니 암은 그에게 희망이자 구원이다.
‘삐비빅-, 삐비빅-.’
오늘도 구윤학의 기상을 돕는 건 구윤학처럼 낡아 더러워진 알람시계다. 그는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충분한 앞마당이 있는 이층 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건조한 공기에 마른기침을 내뱉던 구윤학이 잠에서 깬 곳은 지하 차고다. 날이 퍽 추워졌는지 그의 눈썹과 콧수염에는 서리까지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구윤학의 기상을 반기지 않는다. 아마 가족들은 그가 일어났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구윤학은 몇 해 전 함께 사는 부인, 아들 내외와 손주들에게 앞으로 자신은 지하 차고에서 지내겠다고 말했다. 구윤학이 이 말을 하기 전에 아들 내외가 독립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아버지, 저랑 제 가족은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지금껏 이 지역에서만 살다 보니 애들이 지루해하는 거 같아요.”
구윤학은 아들을 쳐다볼 수조차 없이 시선을 마룻바닥으로 처박았다.
“다양한 환경이 애들 교육에도 좋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구윤학의 아들, 구주성은 교육이란 이유를 댔지만, 구윤학은 알고 있었다. 애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이사하려는 것이란 걸. 아들이 말한 이유는 핑계일 뿐이자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구윤학은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구주성은 꽤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아내가 30살이 될 무렵 6살 된 딸 하나밖에 없던 구윤학 부부는 큰 근심을 안고 살았다.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지 않으면, 구윤학과 아내는 아이를 낳기 위해 인공수정을 준비하거나 국가에 큰돈을 배상해야 했다. 그게 젊은 구윤학이 사랑했고 늙은 구윤학이 증오하는 이 나라의 법이다.
구윤학은 인공수정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발정 난 돼지처럼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좁은 닭장 안 암탉처럼 아내를 대할 의사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 기적처럼 찾아와 가족에게 평온을 안겨준 것이 아들 구주성이다.
아들 내외가 독립을 말하기 며칠 전, 원래였다면 구윤학은 집에 없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던 그는 싱그러운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었다. 며칠, 아니 몇 달 만에 맞이하는 햇살이 낯설면서도 참으로 반가웠다.
저녁 식사 때는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 생각을 했고 가족과 함께 하는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 흥얼거리며 잔가지를 다듬던 구윤학의 콧노래 소리를 멈춘 건 담장 밖에서 들리는 어린애들의 말소리 때문이었다.
“야, 저기 구린내 지나간다. 똥!”
“똥, 너 부르는데 왜 모르는 척해?”
“나... 나 똥 아니야! 그렇게 부르지 마! 나 어제도 목욕하고 오늘도 목욕했다고!”
모르는 아이들 목소리 사이로 큰 손주 아이의 울먹이는 외침 소리가 들렸다. 구윤학은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손주를 놀리는 애들을 혼내줘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엔 초점을 잃었고 그의 손에 들려있던 가위가 ‘툭’하고 무심히 떨어졌다.
마치 그가 잘라낸 잔가지 마냥 그렇게 힘없이 구윤학도 마당에 주저앉았다.
“쟤한테 가까이 가지 마. 똥냄새 나.”
“야 똥 하기 싫으면 오줌 할래?”
애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거리며 말했다.
“둘 다 아니야!”
손주 아이의 외침 뒤로 여전히 아이들이 놀리는 소리가 따라붙었고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대문이 열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파른 숨을 헉헉거리며 내쉬는 손주와 구윤학의 눈이 마주쳐버린 순간이었다.
이날의 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구윤학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사 시간도 잊어버리고 화장실에만 온종일 처박혀 온몸을 구석구석 씻고 또, 다시 씻었다. 자신을 따라 집으로 찾아온 불청객이자 침입자인 분뇨 냄새로 손주가 놀림을 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구윤학의 울음소리는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지워졌을지 몰라도 그날 구윤학이 느낀 감정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독립하겠다는 말을 자신에게 할 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구윤학은 절망적이었다. 삶의 이유가 가족인 구윤학에게 가족이 떠난다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빚을 지고 죽는다면 딸과 아들이 대신 갚아야 한다. 아들의 독립 선언은 구윤학의 삶을 뒤흔들었지만, 그는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애들 교육이 참 중요하지. 헌데 주성아...”
간신이 고개를 들어 아들의 얼굴을 올려봤다. 이제는 되레 아들이 구주성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어색함이 묻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삶의 이유는 잃었지만, 가족은 잃고 싶지 않은 구윤학이었다.
“내가 이제 나이가 드니까 혼자 생활하고 싶구나.”
구주성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대답에 놀랐다. 그때에서야 구윤학과 구주성의 시선이 맞닿았다.
“내가 나가서 따로 집을 얻기는 힘들고 지하 방에서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보고 싶구나. 난 여태껏 내 방을 가져보지 못했어.”
구윤학은 지하 ‘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집에는 그저 필요 없는 것들을 처박아 놓기에 안성맞춤인 지하 창고와 쓸 일 없는 지하 차고밖에 없었다.
“아빠... 아무리 그래도 지하실은...”
구주성의 대답은 미묘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이 더 컸을지, 큰집을 향기롭게 차지할 수 있다는 기쁨이었을지.
“내가 내 방에서 지내면 50년 가까이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네 엄마가 너무 섭섭하고 쓸쓸해하지 않겠니? 그러니 이사는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지 않을래?”
구윤학은 말을 끝내며 다시금 맞닿았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그의 삶도 함께 지하 차고로 떨어졌다.
구윤학이 지하 차고에서 지내면서 구윤학의 가족들은 그와 같은 집에는 살지만, 함께 살지는 않게 되었다.
‘삐비빅-, 삐비빅-.’
낡아서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는 알람시계가 다시금 울렸다. 간밤에 지난날들에 대한 꿈을 꾼 구윤학은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이내 곧 익숙하다는 듯 눈썹과 콧수염에 낀 서리를 씻어 내리기 위해 지하 창고를 개조한 화장실로 향했다.
구윤학은 이제는 전처럼 온몸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샤워를 하지 않는다. 지하 창고를 개조한 화장실은 시원찮은 물줄기만을 내뿜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구윤학 또한 개의치 않는다. 가족을 지켰으니 그로 만족할 뿐이다.
그는 대충 씻고 나와 그의 암울한 표정에 걸맞은 옷들을 입었다. 하나같이 빛바래고 눅눅한 옷들이다. 가장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지하 창고를 나와 그는 자신의 웅장한 집을 바라보았다.
그가 정성스레 가꾸던 싱그러운 정원 자리엔 가족들을 위한 조그마한 수영장이 생겼다. 피부를 따사롭게 어르고 감싸는 햇빛 아래에서 가족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 구윤학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상상 속엔 구윤학도 가족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자신에게 방울방울 튀어오는 차가운 물과 함께 행복에 젖어있다.
하지만, 이내 곧 현실도 돌아온 구윤학은 자신의 정원이 사라진 것이 이내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돌아서 대문을 나섰다. 길거리 곳곳엔 여전히 파티의 여흥이 남아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는 생각지 않고 여전히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그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났지만, 그 사이에 구주성도 껴있다는 걸 구윤학은 보질 못했다.
구윤학은 늦지 않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통근 버스에 올라 비어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일터로 가는 길에서도 창문 밖으로는 취해서 비틀거리는 젊은이들, 자동차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는 젊은이까지 보였다. 구윤학은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젊음에 질투를 느낀 것인지, 현재의 자신이 비참한 것인지. 표정을 잔뜩 구기고는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쳐버렸다. 길거리 위 젊은이들과 버스에 오른 늙은이들의 대비되는 표정. 그 상반됨에 그는 구역질할 뻔했다.
다행히 구윤학이 정말 토해버리기 전에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속을 좀 달래기 위해 깊게 숨을 들여 마셔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곳엔 더한 악취가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훔쳐 간 악취 속으로 구윤학은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분뇨처리시설’이라 큰 팻말이 적힌 곳 옆에 놓인 사무실에 들어가 출근 체크를 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으나 마나 한 별 필요 없는 작업복이지만 말이다. 직원 건의사항에 매달 방독면을 제공해달라고 제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분뇨 냄새보다 더 지독한 건 위에 존재하는 놈들이 아닌가 싶었다.
구윤학은 작업복을 입고 난 후 스치듯 거울을 보았는데,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거울 앞에 멈췄다. 아침 식사를 걸러서 오는 그런 허전함이 아니다. 뭔가 있어야 할 게 없는, 무언가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허전함.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지만 구윤학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허전함에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봐, 자네. 목에 그게 뭔가? 당장 병원에 연락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