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리 Sep 25. 2022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0. 재판장 최상훈

“꺄아아악!”


술병이 깨진 후 당연스레 익숙한 비명이 들렸다. 당연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여긴 소년은 장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당연하다는 듯 몸을 숨겼다고 한들 소년의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몰려오는 공포감이 작고 어린 소년을 뒤덮었다. 어린 소년이 익숙해지기엔 너무 살벌한 상황이다.


“이 여편네가 아주 지 남편 알기를 개똥으로 알고 있어!”


이어지는 남자의 거친 고함에 어린 소년의 떨림은 더 증폭되고 있었다.


“5급 직업이라고 네가 나보다 잘났어? 6급이나 5급이나! 어! 내가 참다 참다 콱 그냥!”


“자, 잘못했어요. 내가, 내가 미안해요!... 제발 그만...”


여자가 힘 한 번 못 써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남자에게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다. 그 모양이 흡사 파리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장롱 속에 숨은 어린 소년은 그저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고개를 다리 사이에 파묻고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야! 최고영! 최상훈! 이 새끼들은 다 어디 갔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던 남자가 갑자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린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장롱 속에서 나가지 않았다. 지금 나갔다간 뭔 일을 당할지 모른다. 소년은 그저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아빠... 저, 저 여기 있어요.”


다른 곳에 숨어있던 다른 소년은 술 취해 난폭해진 남자의 부름에 응했다.


“최상훈, 이 새끼는 어디 있어?”


“방이요! 방 장롱 속에 숨어있어요!”


최고영은 행여 자신이 이 지독한 폭행의 피해자가 될까 싶어 난폭한 남자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대답했다. 난폭한 남자는 비틀거리며 어린 소년, 최상훈이 숨어있는 장롱으로 걸어갔다. 최상훈이 장롱 안에서 얼마나 겁에 질려 덜덜 떠는 건지, 장롱 전체가 진동하는 듯 보였다.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최상훈의 공포는 극한으로 치밀었다. 장롱문 밖으로는 소변이 줄줄 새 나왔다. 남자는 장롱문을 거칠게 열었다.


“이 새끼가 지 애비가, 어? 지 애비가 부르는 데도 여기 쳐 숨어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어? 사내 새끼가?”


남자의 거친 언행이 끝나자 무자비한 발길질이 장롱 속의 최상훈에게로 향했다.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잔혹한 폭행이 이어지며 둔탁한 소리와 아이의 비명만 방을 가득 채우던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문을 열 수 없었다. 무슨 일을 낼지 모르는 남자와 한집에 사는 이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용기를 낸 건 오직 최상훈뿐이었다. 남은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최상훈의 목소리를 끝으로 문 자물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최상훈은 전치 5주의 상처를 입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경찰들과 국가 기관의 사람들, 심리치료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최상훈을 찾아오고 때론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어느 날, 최상훈은 경찰에게 아버지가 받게 될 처벌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 기관 사람들에게 자신이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물었다.


최상훈이 퇴원하는 날, 최상훈은 집으로 향하지 않고 국가가 운영하는 돌봄 센터에 입소하였다. 그때가 최상훈의 나이 8살이었다. 최상훈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본인이 맞을까 봐 무서워 자신의 위치를 홀라당 고자질한 형이 싫었다. 수차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음에도 술만 마시면, 폭군이 되는 남자는 아빠라 부르기조차 역겨웠다.


최상훈을 살리고 지킨 건 국가였다. 아마 국가가 아니었다면 최상훈은 그날 맞아 죽었을지, 혹은 지속된 학대와 방치로 언제 죽었을지 모른다. 국가는 최선을 다해 최상훈을 지켜주었다. 최상훈이 돌봄 센터에서 건장한 성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키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었다. 학교에서 몇몇 질 나쁜 애들은 최상훈이 돌봄 센터에 산다며 놀리고 비아냥거렸지만, 최상훈은 개의치 않았다. 돌봄 센터의 선생님들은 모두 상냥하고 다정했다. 자신의 엄마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보듬어주었고 자신의 형보다 더 끈끈한 정을 나눈 친구들이 함께 살았다.


17살,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최상훈은 국가의 강력한 보호 아래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돌봄 센터에서 살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돌봄 센터를 나가야 했을 때는 그곳의 친절하고 상냥했던 사람들과 눈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최상훈은 혼자가 아니었다. 최상훈이 돌봄 센터에 입소하고 2년이 지난 후 온몸이 멍투성이인 채로 들어온 동갑내기 꼬맹이가 숙녀가 되어 손을 잡고 함께 돌봄 센터를 나왔다.


“지연아, 우리 잘 해낼 수 있겠지?”


돌봄 센터에서 한 손에는 자신들의 짐을, 한 손에는 맞잡은 서로의 손을 흔들며 걷고 있는 최상훈이 김지연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우리는 이제 어른이야. 그리고 이 나라는 언제든지 우리를 지켜줄 거야.”


김지연은 맞잡은 최상훈의 손에 힘을 주어 꽉 잡아주었다.


최상훈과 김지연은 국가가 자신들을 살렸다고 굳게 믿는다. 자신들을 지켜준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또한, 이렇게 완벽한 국가에서 삐뚤어진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상훈은 자신들의 부모 같은 사람들을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재판장을 꿈꿨다. 그리고 김지연은 국가가 더욱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시스템 관리자가 되길 꿈꿨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 부모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국가는 강력하게 그 둘을 보호해주었다. 부모에게 양육비를 강제 징수하게 했고, 접근 금지 명령도 내렸다.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해주었다는 걸.


그래서 최상훈과 김지연이 돌봄 센터를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의 호적을 분리하는 일이었다. 가족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법적으로 끊어버리는 일. 자신의 형제를 없애고 부모를 지우는 일을 가장 먼저 했다. 그 둘은 자신들의 부모는 ‘돌봄 센터’였고 센터로 자신들을 데려다준 ‘국가’라고 생각했기에 한 일이었다.


성인이 된 그들은 다시 국가의 도움을 받아 둘이 살만한 집을 사고 그 집을 아늑하게 채울 가구들을 샀다. 때로는 국가의 도움으로 유흥을 즐기기도 하고 옷을 사기도 하고 둘만의 소소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성인으로서 젊음을 즐기면서 그 둘의 국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고, 어떻게든 자신들을 지켜주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상훈과 김지연의 믿음은 날로 굳건해졌고 그 둘의 국가에 관한 생각은 하나로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며, 그 둘은 몇 년의 동거를 끝내고 결혼했다. 그리고 그들은 미리 자신들의 미래를 준비했다.


남들이 술과 여행, 혹은 연애로 허비할 시간에 자신들의 미래를 계획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지능 시험과 직업 시험을 철저히 준비했다. 그 와중에 3명의 아이도 낳았다. 이렇게 완벽한 국가에 태어날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 명 정도 더 낳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 포기했다.


40살이 되는 해에 최상훈과 김지연은 지능 시험을 보았고 모두 1급을 받았다. 직업 시험에서 최상훈은 재판장을, 김지연은 시스템 관리자를 지원했고 그 결과는 그들이 세운 계획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최상훈과 김지연은 그렇게 교육 기간 3년을 포함해 20년 동안 국가에 헌신해 일하면, 안락한 노후까지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최상훈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국가에 보다 헌신하고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어 41살에 일을 시작했다. 아내 김지연은 셋째 아이가 성인이 된 후 44살에 일을 시작했다.


최상훈은 교육 기간에 꽤 기대받는 엘리트였다. 젊은 데다가 이미 국가의 모든 법률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최상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기들은 10살 정도 나이가 많았지만, 모두가 존댓말을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직장이었다. 최상훈은 이렇게 완벽한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준 국가에 대한 감사함을 하루도 지울 수 없었다.


46살이 된 최상훈은 정식 재판장으로 인정받았다. 사실 재판장이라고 해봤자 직접적인 판결을 내리는 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피고인의 죄목과 위법 사항들을 입력하고 선처나 감형 사항, 기타 사항을 입력하는 재량권을 가진 것뿐이다. 그러나, 재판장이 어떻게 입력하는지에 따라 시스템이 내리는 판결은 차이가 났다.


최상훈이 재판장으로서 처음 맡은 사건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최상훈은 재판 날짜가 잡혔다는 연락과 함께 수십 개의 자료를 넘겨받았다. 최상훈은 넘어온 수백 장의 자료를 대충 읽어 넘기며, 피고인이 퍽으로 한심하고 개탄스러운 사람이란 판단을 내렸다.


조금의 노력만 한다면 뭐든 뒷받침해 주는 이런 국가에서 잘 살기 위한 일말의 노력조차 안 하고 흥청망청 놀다가 하급 노동자가 되어버린 자. 그리고 이젠 자신의 가족들을 괴롭히는 데에 취미가 들어버린 자신의 아버지 같은 피고인을 처벌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형이나 선처해줄 부분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재판 날에 최상훈은 피해 아동에 대한 치료와 보호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분리 조치를 시켰다. 그리고 일반 가정 폭력이 아닌 특수 가정 폭력으로 강하게 피고인을 처벌했다. 하지만 얼마 뒤, 최상훈은 피해 아동의 탄원서를 받았다. 가족과 함께,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최상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학대하고 폭행한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그걸 방관한 엄마와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최상훈은 살얼음판 같은 집을 떠나 보호 시설로 들어갔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 피해 아동은 자진해서 살얼음판에 남길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최상훈은 피해 아이의 청원을 무시하고 아이를 보호 시설로 보낼 것을 명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마음을 아이가 이해할 날이 올 거라는 생각만을 가진 채, 아이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건강한 성년이 되길 바랐다. 이 나라는 고통받는 연약한 아이들을 악독한 부모로부터 빼앗아 더욱 나은 곳에서, 보다 나은 사람으로 키워주는 완벽한 나라니까 말이다. 성년이 되어서도 국가는 최상훈에게 그랬듯 꾸준히 젊은이들을 도와줄 것이고 사랑해줄 것이다. 최상훈은 꼭 피해 아이가 자신처럼 국가의 사랑과 보살핌을 잔뜩 받으며 행복할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 사건 이후, 3년의 교육 기간 동안 자신을 전담해 가르쳐준 선배 판사가 최상훈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선배는 커피 두 잔을 가져와 한 잔을 건넸고 소파에 앉았다. 최상훈도 때마침 바쁘지 않을 시간이라 선배가 건넨 커피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선배가 입을 열었다.


“네가 정말 똑똑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거 알아. 근데 나는 말이야. 네가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배.”


“이 일 하다 보면 닳고 닳은 사람 수천, 아니 수만 명을 보게 될 거야. 근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지.”


“아니,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좀만 노력하면 뭐든 될 수 있는 나라에서 뭔 불만들이 많아서 가족을 패고 사람을 패고 그래요?”


“그런 말이 아니라, 나는 네가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너한테 오는 피고인들의 삶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서 한 말이야. 넌 가끔 너무 로봇 같아.”


최상훈의 선배는 질타나 책임을 물으러 온 게 아니었기에 그저 여유로운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자신이 기계 같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은 최상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 선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 지금도 제 판결에 그 어떤 흠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너한테 온 피해 아이의 탄원서는?”


“그건... 아이 엄마가 시켰다거나 피고인이 미리 협박했다든가 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게 가족들 모두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거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좀 더 피고인들의 삶을 세밀하게 인간적으로 들여다보라고.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


최상훈은 여전히 선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라니. 자신이 살아온 삶에선 몇십 년 동안 흥청망청 놀지만 않고, 적당히 놀고 즐기면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급 노동자가 된 사람들이 멍청한 거였는데. 도대체 뭘 들여다봐야 하는지 최상훈은 그때까지만 해도 알 수 없었다.


“노력해 볼게요. 선배...”


하지만, 최상훈은 때론 너무 사람이 무른 거 같아 보여도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이기에 그의 말을 참고해 피고인과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고려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01화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