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죽음에 역사적이고 초월적인 위로를 건내다
미국의 장례식에서 중요한 순서 중 하나는 추모사이다. 고인에 대한 기억과 죽음의 의미를 문상객들을 대표해 담아내는 일종의 스피치다. 미국의 정서상 추모사는 항상 심각하지만은 않다. “Die young as late as possible (젊게 오래살자)”의 삶을 살았다며 건내는 아들 부시의 아버지 부시에 대한 농담 섞인 추모사는 유명하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유명인의 추모사는 2015년 당시 대통령 오바마가 총격사건으로 숨진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 한 것이다. 상원의원 개인에 대한 진실된 추모에 이어, 이 안타까운 사회적 죽음에 대통령으로서 위로를 건낸다.
인종차별의 과거가 있는 미국 남부에서 9명이 교회에서 백인우월주의자에게 당한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노예제의 아픔을 언급하며 오바마는 자유를 얻은 모두가 역사에 빚진 자들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무의식적 인종차별에 맞설 책임을 강조한다. 백인이름 제니가 흑인이름인 자말보다 더 쉽게 면접에 합격하는 현상을 그 예로 언급한다.
오바마는 더 나아가 이 죽음을 신의 은총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격상시킨다. 그저 또 하나의 비극으로 단순히 치부될 수 있는 죽음에 역사적 의미에 이은 초월적 의미를 부여하며 위로를 건내는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언급하며 추도사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참 인상깊다.
죽음의 의미는 남겨진 자들에게 중요하다. 타인의 죽음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지금 주어진 삶의 의미가 떠오른다. 오바마의 말대로 "What a good man"이라 좋은사람이었다고 기려진다면, 그것만큼 바랄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