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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올인원

no cash but smart

by 파슈하

얼마 전, 애플페이로 교통카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댓글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거 너무 편하다"는 파, 그리고 "이게 이제 되느냐"는 파.

오랜 안드로이드의 유저로써 내 입장은 후자에 조금 더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수많은 여행유투버들이 해외에서 애플워치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면은 꽤나 오래전부터 봐왔더랬다. 한국에서도 되는지, 안드로이드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어쩐지 유튜버들은 보통 아이폰을 썼다) 최신 전자기기라곤 태블릿과 핸드폰이 전부인 나로서는 ㅡ그 흔한 무선이어폰도 없으니, 스마트워치라고 있을 리가.


별도의 카드 없이 띡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결제가 된다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나는 유서 깊은 삼성핸드폰의 사용자로서, 삼성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애용자였다. 이마트에서 삼성페이가 안되었던 시절부터 유저였으니 말이다.




2019년 여름, 런던 한가운데서 '노 캐시 벗 크레딧카드 애플페이 삼성페이 오케이'란 문장을 들었을 때에는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솔직히 말해서 외국인의 입에서 '삼성페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삼성페이라니, 이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에 간다고 하는 것은 현금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유럽여행이나 일본여행은 현금여행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되곤 했다. 그런데 삼성페이라니. 차라리 삼국지에 기갑전차가 나온다고 하지.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지원에 힘입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당시 내 나이 만 20세, 첫 해외여행치고는 순탄했다. 유심도, 로밍도, 구글맵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행책을 사서 도시별로 분철하여 사이드가방에 넣어 다니고, 집에 '나 무사히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보고드릴 때는 선불카드 되는 공중전화박스를 찾아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다 여행 일정의 절반정도 지났을 때인가,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으니, 소매치기 말이다. 나는 가방에 넣어둔 카메라를, 친구는 지갑을 통째로 분실했다.

솔직히, 물건을 잃어버린 것 그 자체보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더 큰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배낭을 제대로 못 메고 다녔으니 말이다.


이후로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은 점점 작아졌다. 내가 이 작은 가방 하나에만 정신을 쏟아도 문제없을 수 있게 말이다. 지갑 사이즈 역시 가방에 맞춰 점점 작아졌다가 결국 어느 순간부터, 조그마한 가방 하나도 들지 않게 되면서 지갑이라는 물건 역시 내 삶의 반경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무가방라이프(無가방life)는 해외여행 중에서도 이어졌다. 만약 카드를 잘 받지 않는 나라에 여행을 가게 되면 현금은 손바닥만한 파우치와 핸드폰 케이스 사이에 나눠서 끼워 담고, 핸드폰은 바지의 오른쪽 주머니에 파우치는 왼쪽 주머니에 도난방지줄로 연결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행색이 소매치기범들의 기대치에는 한참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차림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작은 가방도 들지 않았다.


얼마 전 병원에서는 모바일 신분증을 내고 페이로 결제까지 하고 왔다. 도서관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길래 월렛 어플에서 등본을 발급받아 제출했다. 카드 단말기가 없는 시장에서는 은행어플로 계좌이체를 하고 순대볶음을 사 왔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팬데믹의 상황에서 기업들은 각자의 살길을 모색하더니 수수료 없는 여행 전용 카드 같은 신박한 카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만 해도 대박이라며 남편과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작년에 해외에서 (드디어) 삼성페이, 카카오페이로 기념품을 사 보이는 쾌거를 이룩해 냈다. 와, 이게 된다고?


이제 정말,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다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야 만 것이려나. 다만 e심 지원을 하지 않는 내 폰에서는 아직 해외 페이 결제는 불가하였다. 흠. IT의 기적도 기종 따라 달라지는구만.


덕분에 이제 소매치기는 사양사업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 지갑 장인들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변변찮은 직업 없이 이렇게 글이나 쓰는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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