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올인원
얼마 전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렇게 핫하다고 한다. 살다 보니 박물관이 핫플이 되는 시대가 왔다.
두 아이와 함께 오는 것이라서 차를 끌고 왔는데, 입구에서부터 소문이 사실임을 절실히 체감했다. 박물관 입구 한참 전부터 교통체증은 시작되었는데 그 세 대중 한 대 꼴로 택시였고, 승객 중 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간만의 박물관 나들이에 유난히 가슴이 두근거렸던 이유는, 노량진 수험생 시절 울적할 때마다 오던 곳이 바로 이 국립중앙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 2층의 매화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지친 마음이 싹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무료입장정책은 당시 가난한 공시생이었던 나의 지갑 사정마저 어루만져주었다.
그중 나의 눈길을 유난히 가장 잡아 끈 곳은 고려청자코너였다. 함께 박물관을 갔던 (지금은 연락이 끊긴) 수험생 동지와 함께 "우리도 나중에 결혼하면 부엌 한 칸을 이렇게 화려하고 예쁜 그릇으로 채워 보리라" 농담 섞인 희망을 던져보곤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부엌은 그때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었다.
우리 집 찬장의 그릇은 아주 소박하고, 무늬도 절제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금전적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것들이다. 박물관의 경우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서 그런 거고, 우리 집의 경우에는 흔하디 흔한 공장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 원래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까.
코렐의 4인조 식기 세트, 10년째 매일 사용중. 아마 당근에 천 원에 내놓아도 안 팔릴 것 같다.
결혼을 앞둔 나는,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한 부엌을 꿈꾸었다. 그 둘이 양립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아직 어려서 몰랐다. 나름 코렐(소박)을 백화점(화려)에서 구매했다. 마침 단종되는 디자인이라서 그런지 할인이 섭섭지 않게 들어간 상태였다.
'원래 살림은 살면서 늘리는 거라니까.'
하지만 그전에 미니멀라이프를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코렐 4인조는 그대로 10년간 우리 집의 그릇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저렴하게 산 덕분에 그릇을 쓸 때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준비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고운 수세미를 고를 필요도 없다. 피곤하면 식기세척기에 넣는다든가, 잠깐 음식을 두어야 할 때 랩지대신 접시를 얹어놓을 때도 큰 걱정이 없다.
국이나 찌개는 한 번 먹을 만큼만 끓이는 우리 집에서 재료 손질을 위해 도마를 꺼내는 건 가끔 귀찮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럴 땐 접시 위에 과도로(평소에 과도로 대부분 식재료를 손질한다) 감자 호박 양파를 썬다. 아침에 먹을 사과도 그냥 접시 위에서 잘라낸다.
심지어 아이 둘 이유식을 떼자마자 식판은 생략하고 코렐 접시에다 유아식을 담아주었다. 식판은 굴곡이 많아서 설거지가 힘들었는데 그냥 접시 하나에 담아서 주니 설거지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릇 10개, 접시 12개*
*큰 접시 5개가 포함된 수. 큰 사이즈 접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부모님이 집에 방문하시면 전부 쓸 때가 있어서 그냥 두고 있다.
밥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과일을 먹을 때도. 준비된 접시는 오로지 하나.
신혼 때는 둘이서 그릇 4장을 써서 괜찮았는데 지금은 4인가족이다 보니 식사를 한 번 해도, 간식을 한 번 먹어도 전부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