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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올인원

올리브영의 재발견

by 파슈하

어릴 적 내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다. 정물화나 풍경화 같이 고즈넉하고 클래식한 것 말고. 마법소녀같이 예쁜 캐릭터를 그리는 것 말이다. 긴 생머리, 하늘 높이 치솟은 속눈썹, 그리고 살짝 발그레 물든 뺨까지.

재료는 색연필, 마카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가끔은 초등학생 때나 쓰던 수채화 물감과 크레파스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난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내 얼굴에 그림도 잘 그릴 줄 알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엔가. 그 질풍노도의 망아지 같은 시절을 일컫는 <중2>라는 신조어마저도 생겼지만, 엄격한 어머니와 자애로운 아버지 사이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춘기 특유의 똘끼를 마음껏 발산해 내지 못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하늘로 찔러야 정상이라는 시절이건만 내 얼굴을 뒤덮은 건 다름 아닌 여드름.

스트레스받았지만, 공부 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면 혼날 것만 같았다. 그저 엄마는 호시탐탐 내 여드름을 짜려고 들었고, 아빠는 과연 내 딸이 맞다며 흐뭇해하신 게 전부였다(꼭 나쁜 것만 닮는다).



여드름 난다고 피부과 가던 시절이 아니었거니와, 지식인이나 유튜브ㅡ인플루언서, 뷰티 유튜버도 없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은 '아줌마 네트워크' 뿐이었다. 엄마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여드름 피부에 좋다는 스킨, 에센스, 로션 등등을 구해왔다. 엄마는 여드름이 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드름용 화장품을 엄마도, 나도 그때 처음 만나보았다. 이제까지 로션 하나 바르지 않던 나는 네 가지의 기초화장품을 바르느라 저녁마다 한참을 거울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요즘이야 [여드름=시카] 이런 공식이라도 있다지만 그 예전엔 그런 개념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냥 누가 좋다고 해서 사 온 거고, 바르라니까 발랐다. 여드름이 해소되는지는 잘 모르겠고, 피부가 소독되는 느낌은 상당했는데 아마 주사 맞기 전 문지르는 알콜솜을 얼굴에 펴 바르면 딱 비슷할 것 같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눈썹이 어떻고 아이라인이 어떻고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



다행히 대학생이 되면서 극적으로 여드름은 줄어들었다. 아직 돌도 씹어 소화시킬만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었으니 아주 드문 몇 개의 흉터 외에는 나름 깔끔하게 잘 아물었다.

여기서 한 걸음 나가서 화장하는 법도 배워보고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에겐 이것을 전수해 줄 언니. 아는 언니. 친한 사촌언니가 없었다. 같이 화장품 왕창 사고 얼굴에 발라대며 사고 칠 동생도 없었다.

그 나이의 나는 그저 이마에 커다란 검붉은 자국이 없어진 것 자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로드샵에서 파운데이션이니 뭐니 사보았지만 그냥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것이 제일이었다. 다시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로션이나 바르면 다행이었다.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현실로 다가오던 20대 중반. 세상은 대 로드샵 시대를 맞는다.

백화점에서나 살 수 있는 고급 화장품의 <저렴이>를 캐내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3천 원짜리가 3만 원짜리의 것과 진배없다는 소식은 나같이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있는 젊은 취준생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여러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세일기간을 광고했는데, 무슨 돌림노래 듣는 줄 알았다. 미ㅇ 세일이 끝나면 더ㅇㅇㅇ샵, 에ㅇ드나 이ㅇㅇ프리, 토ㅇㅇ리도 빼먹을 수 없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브랜드는 홀ㅇ카ㅇ리카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렸던 마법소녀의 마술봉과 이미지가 제일 빼닮았기 때문이다!


3~5천 원 정도면 색색의 섀도와 립스틱, 마스카라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이맘때즈음에 '파워 뷰티 블로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빼어나게 예쁜 얼굴에 3천 원짜리 제품 두어 개를 섞어 발랐을 뿐인데, 선녀가 따로 없었다. 내 어릴 적 종이에 그렸던 마법소녀가 그대로 현신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천 원에 미녀를 만들어준다는데, 안 사고 배길 수가 있나!


그렇지만 그녀들과 나 사이에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으니. 내 손의 색칠감각은 도통 2차원을 넘어오질 못했다. ㅡ사실 돌이켜 고백하자면, 그렇게까지 그림을 잘 그린 것도 아니었다.



뷰티 블로거의 시대가 가고 뷰티 유튜버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맘때는 로드샵의 세일 경쟁이 아주 가관이었다. 중립기어 따위는 버리고 풀악셀만 밟고 있다는 느낌이 일개 소비자인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으니 말 다 했다. 세일을 자주 한다는 것은 내 화장대가 풍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화장대로는 부족해서 책상 서랍에 화장품들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당연히 다음 달에도 세일할 것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또 "대 세일"이란다. 이번을 놓치면 다음번 대 세일은 언제인지 모른다고 했다.


시기에 맞춰 뷰티 유튜버가 새로 나온 섀도 팔레트를 극찬한다. 색이 8가지나 들어있지만 나머지 7색은 모르겠고, 여기 있는 이 밝은 섀도가 아주 뛰어나서 이것 때문에라도 또 이 팔레트를 사야 한단다. 팔랑팔랑. 아직 나는 화장을 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쓰겠지 뭐....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잘하게"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엉망으로 색칠된 얼굴을 하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어제와 오늘의 얼굴이 다른 것 마저도 영 부끄러웠다. '오늘 얼굴에 뭐 발랐어?'라는 친구의 단순한 물음은 '너 오늘 얼굴 이상해 보여.'로 꼬여서 들렸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여드름 투성이의 중2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 그래도 지금은 적어도 여드름은 없잖아.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나의 만족감은 굉장히 쉽게 만점으로 차올랐다.

웬만해서는 실패하기 힘든 립글로스 정도가 내 화장의 전부가 되었다. 물론 언제 쓸지 모르니까, 섀도는 계속 보관해 두는 걸로.



로드샵의 피 터지는 경쟁이 '공멸'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무렵엔 1세대 뷰티 유튜버들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돈도 상당히 벌었는지 이제는 자꾸 백화점에서나 팔 법한 제품들을 '인생템'이라고 추천했다. 그러더니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오래된 걸 쓰지 말자'는 운동도 일어났다.

흠. 맞는 말이긴 한데......


아이섀도나 블러셔를 많이 써서 은색 바닥이 보이는 현상을 '힛팬'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섀도들 중에는 힛팬은 고사하고, 움푹 파인 것조차 없었다.

많은 돈을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을 썼는데 나의 메이크업실력은 고만고만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하다. 실패가 무서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리가.




그래서 지금은 그 많은 화장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진짜 나와 마주쳤고, 결국 '너무 화장하기 싫어하는 나'를 인정했다.

눈썹과 아이라인은 반영구로 간다. 마스카라대신 속눈썹펌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파운데이션 반영구도 하고 싶은데 아직 기술이 거기까지 발전을 못 했다.


쓰지 않은 그 오래된 화장품들은 전부 다 비워냈다. 비교적 깔끔하고 오래되지 않은 것들은 전부 친구들의 파우치로 갔고,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샀던 것들은 중고거래로 무사히 새 주인을 만났다.

아주 평범하고 튈 것 없는 약한 펄감이 있는 브라운색 섀도 하나만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생산일 3주년을 맞이해서 화장대에서 나가 버렸다.



이제 나에게는 톤업선크림과 컬러립밤 하나만 남아있다. 처음에는 립스틱만큼은 서너 개 정도 갖고 있었는데, 어쩐지 맨날 같은 것만 바르는 거 같아서 다 소진한 뒤로는 딱 하나만 두고 쓴다.



나는 입술이 꽤 자주 트는 사람인데, 립글로스를 따로 두어봤자 잘 쓰지 않아서 그냥 촉촉한 컬러립밤 하나만 두고 이걸 립글로스처럼 쓰기 시작하니 나쁘지 않았다.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써 본 결과, 바비브라운 엑스트라 립틴트가 나에게 가장 잘 맞았다.

메이크업을 하고 싶은 때가 온다면, 컬러립밤을 손끝에 묻힌 뒤, 눈두덩이와 양쪽 볼에 균형 있게 바르면 대충 메이크업 한 느낌은 난다. 남편은 '뭐가 바뀐 거야?' 눈치도 못 채지만 내 기분이 생기 있어졌으니 되었다.


덕분에 내게 있어서 올리브영은, 그저 간식과 영양제 파는 가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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