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올인원이 되나요?
큰아이의 여름방학이 한창이다. 연이은 폭염에 짧은 등굣길도 힘들어하던 아이는 반색을 하며 여름방학의 시작을 자축하였다. 그러나 사교육 없이(태권도는 하나 다닌다) 방학을 맞이하여야 하는 엄마인 나로서는 이 방학이란 녀석이 아주 썩 반갑지만은 않다.
물론 아직 초등 저학년이기 때문에 휴식이 방학 생활의 중점이 될 것이다. 그 외에 오전시간에는 아주 조금씩 수학 문제 풀기나 글쓰기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일기 쓰기 같은 방학숙제는 물론 스스로 만든 방학숙제도 잊지 말고 수행해야 한다. 종류별로 골고루 책 읽는 것도 빼먹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여기까지는 엄마인 나의 <여름방학 계획> 일뿐, 아이는 매일 늦잠 자고 일어나서 간식을 까먹으며 하루 종일 티비만 볼 기세였다. 이해한다. 나라도 그러고 싶겠다.
그래서 아침마다 외출을 하기로 했다. 카페든, 도서관이든 책상이 있는 곳 어디든 가자. 집에 있으면 저 웬수 같은 티비가 계속 아이를 불러대기 때문이다. 티비 전파와 와이파이가 닿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가서,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수학도 하고, 글씨 쓰기 연습도 하고. 속담이나 맞춤법 연습도 좀 하면 좋지 않을까? 영어단어 읽기 연습도 방학이니까 좀 해 보자. 쉽게 싫증 내는 아이를 위해 수학문제도 연산에만 치우치지 않고 시계 보기나 도형도 조금 섞어본다. 1학기 복습도 좋지만 2학기 예습도 빼먹을 순 없지.
순식간에 필요한 문제집이 대여섯 권으로 늘어나버렸다.
여기에 내가 읽을 책 한 두권, 아이가 읽을 책 한 권. 가방은 순식간에 아령의 무게를 까마득히 넘어섰다. 생각만 해도 어깨가 아찔하게 저려왔다. 다행히 수학문제집은 낱장으로 뜯어서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하루에 풀 딱 두장만 뜯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음으로는 문구점으로 달려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고래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노트를 한 권 샀다. 가로 15칸, 세로 10칸짜리 글씨 쓰기 연습할 수 있는 깍두기 노트다.
노트의 맨 앞장에는 달력을 그렸다. 곧 학교에서 달력보기 연습을 할 테지만, 예습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7, 8월의 달력 날짜를 써 보며 달력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가족여행일정도 표시하고, 언제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도 간략하게 적어보았다. 제일 중요한 개학날짜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다음 장에는 할 일 리스트를 만들었다. 전용 플래너를 쓰는 것도 좋겠지만, 매일 해야 할 과제가 일정하거니와 매일매일 할 일을 쓰라고 하면 아이가 짜증 내며 중도포기할 것만 같았다.
세로칸에는 할 일을, 가로칸에는 날짜를 쓰고 완수한 일에 대해서 동그라미만 표시하기로 했다. 이렇게 한 페이지짜리 간단 플래너가 만들어졌다.
다음 페이지에는 속담 쓰기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이미 한 번 읽어보았던 속담 책에서 자주 쓰일 법한 것들 몇 개를 발췌했다. 하루에 두 개씩. 옆에 이 속담에 어떤 뜻인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 위해 메모도 적어두었다.
속담 밑에는 그날 읽었던 책 제목을 쓸 수 있는 칸을 마련하였다. 아직 긴 글 쓰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독후활동은 말로만 하기로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독후활동은 ✔️표지 보고 내용 상상해 보기 ✔️너라면 어떻게 할래? 가정해 보기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패러디해 보기 등이 있다.
그 옆 페이지에서는 1학기 때 학교에서 했던 받아쓰기 시험 봤던 문장들 중, 유독 헷갈려하고 잘 틀렸던 단어나 문법 사항들을 적어두었다. 이 단어들을 깍두기 칸에 맞게 네모 반듯하게 써 보는 것이 이번 방학 국어활동의 목표다.
아이의 평소 글씨가 매우 날림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면서 어떻게 쓰면 예쁘게 글씨를 쓸 수 있을지 이야기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체크해 본다.
"아휴 이거 맨날 틀렸던 건데! 드디어 제대로 쓸 수 있어."
<눈이 휘둥그레져서>를 쓰고 난 아이의 감상평이다.
이 노트의 중간에는 인덱스 탭이 두 개 더 붙어있다. 그중 두 번째 탭 부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쓰는 일기가 있다.
"일기 쓰기 숙제를 하기 위해 수족관 카페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글쓰기 실력은 아직이지만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실력 하나만큼은 일취월장했다.
유독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던 날에는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노트를 중간으로 턱 넘기고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번 방학 동안에는 아이와 함께 동네 지도를 그려보는 활동도 해 보기로 했다. 집 주변 마트, 무인아이스크림점, 도서관, 레고방, 분식점을 다녀보며 우리 동네에 이런 건물들이 있구나를 몸으로 체득했다(솔직히 폭염 때문에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도서관에서 지도 관련 도서를 빌려 지도 그리는 팁도 얻고, 알게 된 점을 아까 그 노트의 뒷부분 세 번째 탭 부분에 적어두었다. 마침 수원에 지도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그곳도 방문하고 느낀 점을 적어두는 활동도 하였다. 스스로 마을 지도를 노트에 그려보는 것으로 셀프 방학숙제도 이 노트에 마무리했다.
노트는 하나지만 그 속에는 달력, 스터디 플래너, 속담, 독서록, 맞춤법 연습, 바른 글씨 쓰기 연습, 일기, 지도 그리기 활동지가 들어있다. 처음엔 그저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이 싫어서 산 노트인데, 아이의 여름방학이 이 한 권으로 농축되었다.
그야말로, 아이 만의 '여름방학 올인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