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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연춘추 Dec 19. 2021

1.8 류야저우와 다이쉬: 중국 내부의 지정학 논쟁

모든 역내 패권국을 지향하는 나라는 본격적인 외부 팽창에 앞서 그에 상응하는 지정학적 논쟁이 있기 마련이다. 동아시아 패자 자리를 노리는 중국 또한 후원신정 당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역할과 팽창 방향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에 대한 찬반에 따라 보수파와 개혁파로 나뉘어 있었다. 보수파는 대체로 신-실크로드 정책을 외치며, 만주와 신장 지역 개발을 통해 파키스탄과 미얀마, 캄보디아, 북한 등 국가를 우방으로 삼고 역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반대로 개혁파는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소련과 그 후신은 러시아를 견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대륙 진출론자들과 해양 진출론자들의 논쟁은 후진타오 시대에도 지속됐는데, 전자의 대표는 류야저우劉亞洲, 후자의 대표는 다이쉬戴旭라 할 수 있다.


냉전 시대부터 중국은 신-실크로드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아시아 역내 패자 자리를 노렸으나, 소련이라는 심장지대를 통합한 제국의 존재는 이 같은 베이징의 구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내륙 지대에 더 이상 중국을 가로막는 강력한 제국이 존재하지 않자, 중국과 일본, 미국의 기업인들은 아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원유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장쩌민 시기,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은 대체로 말라카 딜레마로 대표되는 자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원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치중했을 뿐, 중앙아시아 내륙지대를 개발하거나 이 일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한 물류 인프라 건설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베이징 내부의 기류는 대륙 진출론자 류야저우의 《서부론》 발표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004년, 류야저우는 대륙 진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서부론》을 발표한다. 이 글에서 류야저우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신장 지역을 발판으로 삼아 중앙아시아 진출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신장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접경해 있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을 경유해 인도양 진출까지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베이징의 중국 정부가 이 일대의 자원 개발과 교통 인프라 건설을 추진할 시, 말라카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이와 같은 전략적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류야저우는 신장과 중앙아시아 5개국을 연결하는 원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여럿 건설함으로써 내륙지대 자원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류야저우는 경제적인 영향력만으로 중앙아시아의 역내 안정을 이룰 수 없음을 지적하며, 중국의 문화 역량 강화와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증진만이 중국이 이 일대에서 항구적 이권 추구를 가능케 할 것이라 주장했다.


류야저우의 《서부론》은 당시 베이징 지도부의 자원 안보 위기를 반영함과 동시에 대륙 국가로서 중국이 가지고 있던 본능적 팽창 욕구를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와 신장, 티베트-류야저우는 이를 독립회랑獨立走廊이라 불렀다-에서 반월지대로 진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내륙 국가와 해상 국가의 교역을 차단할 수도 있는 지리적 위치에 놓여있기에, 만일 중국이 자국 중심의 내륙 교역망을 완성할 경우, 매킨더가 우려한 바와 같이 유라시아 내륙지대와 인근 해양 물자를 중국 또는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군사 협력체가 독점하는 상황까지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내륙지대와 “세계섬” 인근 해역에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베이징 지도부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과 같이 자국 영향력 하의 국가들과 해상세력 간의 교역을 기계적으로 중단시킬 경우, 교역 수단으로써 기존 기축통화(달러)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까지 발전하게 될 경우, 세계 패권은 또 다른 “세계섬”의 강자-중국 또는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군사 협력체-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중국 내 엘리트들이 류야저우의 《서부론》의 대륙진출론에 지지를 보냈던 것은 아니다. 중국 내 대표적인 매파 장성 다이쉬는 《C형 포위: 내우외환 가운데 중국의 돌파 전략(2010)》에서 중국이 현대화된 해군·공군을 건설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뚫고, 서태평양·인도양 진출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다이쉬는 워싱턴이 중국을 소련처럼 분열시키기 위해 몽골과 인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호주, 남중국해 방면에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 같은 워싱턴의 전략적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중국은 C형 포위망에 갇혀 소련처럼 해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경고했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분열시켜 자국의 세계 패권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제국의 잔재들을 청산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중국이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수록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위구르, 티베트 문제를 정치적 카드로 사용해 베이징을 해양 세계로부터 고립시킬 것이며, 2020-2030년에 이르러 중국을 분열시키려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이쉬가 보기에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각축은 ①여전히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를 해체하려는 워싱턴과 ②자국의 영토 보존과 생존을 걸고 싸우는 모스크바의 지정학 게임이며, 만일 미국이 이 같은 중앙아시아 각축에서 승자가 될 시, 중국도 신장·티베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당시 베이징이 믿을 수 있던 우방국은 파키스탄과 북한, 미얀마 3개국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이들조차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베이징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만일 워싱턴이 이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거나, 기존의 적대 노선을 번복해 관계 개선에 힘쓸 경우, 언제든지 친중 노선을 번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같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다이쉬는 강력한 현대 해군 건설을 주문함과 동시에 남중국해 요새화 및 원유 시추와 같은 자원 개발, 종합 군사기지 건설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 다이쉬는 중국의 서쪽,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 파키스탄, 인도와 전략적인 제휴를 맺음과 동시에 중앙아시아 5개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동남부 진출에 전념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록 다이쉬는 중국이 세계 패권보다는 동아시아 역내 패권을 추구하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쉬가 중국 내 호전적인 장성들의 생각을 일부 대변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 대외 정책을 둘러싼 오랜 정쟁으로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의 철학을 계승한 외교관들은 대체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와 평화로운 관계 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마오의 전략 균형론을 자신들의 신념이자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군부 장성들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반발해야 하며, 필요하면 무력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전자는 “비둘기파”, 후자는 “매파”로 불리는데, 이들 사이의 논쟁이 중국 사회의 거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2015년, 중국 전 주 프랑스 대사이자 외교학원 원장 우졘민吳建民은 《오늘날 세계를 정확히 알아야 [準確認識今天的世界]》라는 연설에서 극좌파 언론인 후시진[胡錫進]을 가리켜 “세계적 대세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후시진은 “우젠민이야말로 전형적인 비둘기파”라며 역으로 우젠민을 비난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중국 관료사회와 학계에서는 대 서방 외교 정책 노선을 놓고 한차례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우젠민을 비롯한 비둘기파는 덩샤오핑의 대미 유화책(신뢰 증진增加信任, 이견 최소화減少麻煩, 국가 간 협력 강화發展合作, 적대정책 포기不搞對抗)을 계승하고, 타이완과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 등 국가 주권과 긴밀히 연계된 문제라 할지라도 무력시위나 전쟁이 아닌 고위층 대화, 외교협상 등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그간 베이징의 오랜 대미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계속해서 타이완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위협하는 군사적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매파의 이의 제기에 대해 이들은 해당 사안은 아직도 협상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 세계와의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비둘기파의 대미 관계는 오랫동안 대서방 외교를 담당한 중국 외교관들의 주된 대외정책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로위엔 [羅援], 장자오중[張召忠], 챠오량[喬良], 다이쉬 같은 매파 장성들은 마오의 전략 균형론을 계승하고, 미국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매파 장성들은 베이징 지도부 내 보수파와 군 수뇌부의 신임을 받다 보니, 중국군 군제 개혁과 현대화 작업에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때로는 군 수뇌부의 의중을 중국인들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아울러 후시진 같은 극좌 성향 언론인들은 매파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자임하고, 호전적인 매파 장성들의 정치적 요구를 인터넷 기사와 동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 형식을 통해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군대 개혁에 필요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해 나아갔다. 무엇보다 5세대 지도부 집권 이래, 시진핑 주석 측근 세력과 보수파가 상하이방과 공천단을 제압하고 중앙 정계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보수파의 지원을 받는 매파의 영향력은 마침내 군부를 넘어 베이징 관료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 갔다.


2018년,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전쟁 이래, 비둘기파는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대신 매파 장성들과 이들과 가까운 학자·언론인들이 미디어를 타고 자신들의 프로파간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둘기파였던 외교관들조차 워싱턴의 강경한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외교적 주도권을 매파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며, 매파 장성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들의 군비 확충 전략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중에서도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중국군의 해군 건설이다. 타이완 무력시위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해군 전함을 만드는 중인데, 작년 기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국 해군의 총배수량은 206.6만 톤으로 이는 미 해군 총배수량의 6할에 달하는 규모다(새로이 건설한 전함 가운데 상당수가 대형 상륙정이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대규모 해군 건설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군사적 이벤트를 예고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은 타이완 통일을 위해 무력 충돌도 불사할 것이며, 이는 중국과 미국, 또는 중국과 워싱턴의 동맹 세력(일본, 타이완) 간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이완의 평화로운 정권 교체, 그리고 이 새로운 여당이 중국과의 경직된 관계를 완화해 나가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기존 입장으로 선회하는 것이지만(일단 베이징 지도부의 팽창 노선이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 같은 해법을 타이완 정치인들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물론 워싱턴은 중국군 미래 해군 전력마저 압도하는 500척 대함대를 만들어 중국군의 침공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지만, 과연 미 행정부가 이만한 해군 전력을 건조할 수 있는 자금력이 되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일 두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선택지는 타이완의 자치를 보장받는 대신, 중국이 타이완의 외교·국방을 책임지는 것인데, 이는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의 반발만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타이완 문제는 평화적인 해법보다는 미·중 양국의 서태평양 패권 경쟁과 연동되어, 양측의 공중 또는 해상 무력시위가 계속되다가 어느 한쪽이 승기를 잡았을 때 일방에 귀속되는 식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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