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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Feb 01. 2023

12. 유학생활이 바꿔놓은 것들

2013년 5월, 발렁스


2012년 여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프랑스에서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례적으로 프랑스 라디오나 MTV 방송, 술집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가 흘러나왔고, 한국인이라고 나를 소개할 때마다 지겹게도 북한 얘기나 해대던 그들의 입에서 강남스타일을 먼저 꺼내게 되었다. 바야흐로 K팝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격세지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처럼, 프랑스살이 1년 차가 되어가는 나에게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1년 차가 되면서 처음으로 체류증을 연장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경우 프랑스 땅을 밟은 지 3개월 이내에 Ofii라는 체류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후 학생 체류증은 매번 1년 주기로 갱신해줘야 하는데, 그 당시 관공서에서 외국인에 대한 대우는 지금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연장 신청을 위한 필요 서류를 모두 긁어모아 경시청에 새벽같이 도착해도 몇 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하기 일쑤였고, 공무원들은 우리를 죄인 취급하듯이 불량한 태도로 대하며 서류를 검사하곤 했다. 행여나 서류 한 장이라도 빼먹었을 때는 온갖 타박을 들으며 그날 하루는 날리고 다시 예약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현재는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은행, 관공서, 우체국 등을 돌아다니며 프랑스의 악명 높은 행정 처리 시스템을 정말 온몸으로 체험했다. 구식 관행에 익숙해지다 못해 뿌리까지 박혀버린 프랑스의 행정은, 그 어떠한 논리도 없이 불필요한 관행대로만 일을 처리했고, 고객을 배려해 주는 일처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융통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 돌아오는 답변은,


'C'est la France (이게 프랑스식이야)'

이란 말 뿐이었다.


피곤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그들의 눈빛에는 어떠한 개선을 위한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만큼은 낭만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가 그저 낙후된 후진국처럼 느껴졌다. 아마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있고 빨리빨리 일처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특히 더 고역이었을 것이다. 뭐가 됐든, 결국 타지에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타지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반에는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차를 잊은 채 하루종일 채팅도 하고, 자주 통화도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지만 점점 그런 시간들이 뜸해졌다. 처음에는 그게 많이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외로운 시간들이 견디기 힘들어 계속 나와 대화해 줄 누군가를 찾아 말을 거는 나 스스로에게 회의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게 익숙해졌다. 외로워도 누굴 찾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고, 혼자 삭히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말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됐다. 가끔은 이것에 익숙해져 간다는 게 서글펐다. 그러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다잡았다. 한국에서 매일 친구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나날들이 싫어서 떠나온 것 아니었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 것이라면 내가 다 감당해야 할 과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루고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마 2월 중간평가에서 과락을 맞은 후 더 심해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쉬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깨어있는 시간 내내 늘 작업을 하거나 작업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 학교에서도 늘 분주히 뛰어다니기만 했다. 오죽했으면 한 친구는 내 걸음걸이만 봐도 쫓겨사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문제가 닥쳤을 때 그걸 수습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기에 나는 늘 불안함과 초조함에 시달려 살았다. 어렵게 온 자리이고, 어렵게 지내고 있었기에, 어느 하나도 쉽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유를 모르고 사는 동안 봄이 오고 5월, 드디어 Bilan (학년말 최종 평가)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간평가에서 지적받았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었던 작업을 포기할 순 없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형식들에 보자르 스타일의 철학을 입히는 식으로 작업들을 만들어갔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면서 철학적인 메시지와, 여러 현대 예술 작가들의 스타일을 입히는 식이었다.

Bilan을 준비하며 나는 이를 갈았다. 그 어떤 꼬투리도 잡히지 않을 각오로 처절하게 뛰어다니며 내 아뜰리에를 작업들로 채워갔다. 


이윽고, 평가날이 다가왔다. 학생들 모두가 복도에 쭈그려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이 호명되면 아뜰리에로 들어가 교수들 앞에서 내 작업들을 프레젠테이션 하고, 잠시 복도로 나와 대기한 후, 다시 이름이 불리면 교수들에게 결과 발표를 듣는 방식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 때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아뜰리에로 들어갔다. 중앙의 테이블에는 5명의 교수가 앉아있었고, 내가 들어서자마자 작업 발표를 시작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부터 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5명을 상대해야 한다. 심호흡을 들이쉬며, 나는 준비한 발표를 시작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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