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발렁스
폭풍이 몰아친 것 마냥 정신없던 발표가 끝나고,
교수들은 나를 잠시 바깥 복도에 나가있게 했다. 그들이 내 작업에 대해 상의하는 동안, 복도에 서서 결과를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은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 같았다. 이미 중간평가에서 과락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그 긴장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교수 한 명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도 모르게 공손해진 자세로 걸어가 교수들 앞에 섰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시작된 평가는 1학기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는 말과 함께, 걱정했던 거와는 달리 호평으로 시작했다. 과거에 지적받았던 문제점들이 확실히 고쳐졌고, 그동안 교수들과도 꾸준히 대화하며 작업을 진행해 나간 과정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달라진 평가를 듣게 되니, 그동안 힘들게 고민하던 시간들이 겨우 빛을 발한 듯 해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결론은 최종합격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고, 나는 교수들에게 마음속에 있는 인사를 전하고 싶지만 불어로 표현이 안된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영어로도 괜찮으니 어떤 뉘앙스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의미를 전달해 보려 노력해 봤지만 정확한 의역이 어려워서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표현이라고 얼버무렸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인사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그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시험장을 나오자 온몸에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걸 느꼈다. 이제 학기가 모두 끝났고, 긴 여름방학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여름방학에 한국에 가기로 계획했다. 프랑스에 온 후 많은 일들을 겪고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가는 한국이라 나는 굉장히 들떠있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너무 많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교수들과의 최종 면담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미 학년 총학점을 모두 이수했기 때문에, 면담은 그저 가벼운 형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면담이 내 유학생활을 다시 한번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거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학점은 모두 이수했지만 우리 교수진은 학생과 이 학교의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별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면담실에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학점을 이수했으면 된 거지 성향이 안 맞는다는 건 또 무슨 소리?
"많은 발전을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학생은 우리 학교보다는 일러스트나 디자인 학교를 찾아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원한다면 이러한 학교들을 추천해 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학년으로 진학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 지금 학교에서 쫓겨나는 거야?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나는 분명 1학년 과정의 학점을 모두 이수했고, 당연히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게 맞는 거였다. 학교랑 성향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가라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처사였다. 아니, 애초에 내 작업을 보고 날 뽑은 건 당신네들 아닌가.
여름방학을 앞둔 학교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나에게 벌어진 이 황당한 상황이 믿기지 않아 학교를 떠날 수가 없었고, Bilan에서 유급을 당한 다른 학생들도 어두운 표정으로 하나둘씩 모여 서로의 심정을 얘기했다. 다들 하나같이 울상이었으나 나는 차라리 유급이 부러웠다. 적어도 이 학교에서 1학년을 다시 시작할 순 있을 테니까. 교수들에게 추방(?) 통보를 받은 때는 6월이었고, 이미 다른 프랑스 학교 원서접수는 다 끝나고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오갈 데 없이 붕떠버린 것이었다. 하물며 학교를 그만둔다 해도 저들은 프랑스인이었다. 돌아갈 부모님 집도 있을 거고, 비자도 필요 없이 몇 달간은 학교를 쉬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다음 학교를 찾지 않으면 체류증을 연장할 수도 없는 혈혈단신의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단 하루 만에 내 상황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겨우 모든 시험이 끝나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나 했는데, 나는 쉴 틈도 없이 다시 조급한 마음으로 여름부터 2차 원서접수를 받는 몇 안 되는 학교들을 찾아 밤새 헤맸다. 동시에 비행기 표도 변경해야 했다. 3개월이 넘는 프랑스의 긴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마음 편히 보낼 예정이었지만, 8월부터 있을 2차 원서접수를 위해 귀국날을 앞당겨야 했다. 가장 저렴한 저가 티켓으로 구매한 내 비행기표는 당연히 환불/변경 불가였고,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더 비싼 비행기 표를 다시 구매해야 했다.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내 여름 계획은 그렇게 모두 망가져버렸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집을 정리하며, 나는 1년간 많은 고민과 창작의 시간을 보내던 발렁스를 떠났다. 참 씁쓸한 퇴장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렇게 기다리던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며 프랑스로 떠나고, 보란 듯이 학교에 합격하여 돌아온 나를 반기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나는 도저히 내 상황을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