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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Feb 10. 2023

14. 고통의 시간들

2013년 7월, 서울


1년 6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 입국장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반가운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뭔가 금의환향 비슷한 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안될 거라고 했던 반대를 무릅쓰고 유학길에 올라 나름 멋지게 합격 소식을 들려줬으니 말이다.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였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무엇보다 큰 성취였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면담으로 틀어져버린 내 상황은 엉망이었고,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 자랑스러운 귀향의 모습은 한때의 꿈일 뿐이었다. '1년 만에 학교에서 쫓겨난.' 최악의 결과를 맛보고 한국에 들어온 나는 거의 패배자나 다름없었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동안 몰라보게 변해있었는데, 나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 그때와 한치도 달라진 게 없는 자리에 서있었다.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이 부끄러운 사실을 나는 모두에게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있는 동안 내 정신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2개월 정도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부 내 프랑스 유학에 대해 묻곤 했다. 축하한다는 말, 학교생활은 어떤지, 프랑스에서 사는 게 부럽다는 등등.. 1년 반 만에 돌아온 나를 위해 다들 모여 축하파티를 열어줬던 친척 모임까지. 자랑스럽게 나를 치켜세워주는 그들 앞에서 나는 내 불안함에 대해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고, 오히려 당당히 무용담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기가 싫어졌고 밖을 나가기 조차 두려웠다.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은 큰 문제를 숨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패배자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프랑스에 돌아가 해결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호흡곤란까지 올 지경이었다.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해 볼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시차적응에 실패해 누구보다도 길게 지새워야 하는 밤이 오면, 무거운 자괴감과 두려움을 혼자 버티며 아침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날이 밝아오고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면, 난 그제서야 걱정을 내려놓고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솔직히 털어놓았으면 그래도 조금은 나았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끝까지 비밀을 고수하며, 1년 반동안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의 시간을 정말 최악으로 보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그리고 가고 싶었던 곳들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타지에서 지쳤던 마음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리고 8월, 비로소 큰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할 프랑스에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교에 원서를 접수하고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다시 새 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다 돈이었고, 이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서류들 인쇄비, 우편배송비, 기차, 숙소...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들어가는 비용은 더 올라갔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되지만, 대부분의 걱정거리들은 열에 여덟은 돈이 있으면 쉽게 해결되는 것들이다. 당시 나는 리옹에서 어학 하면서, 또는 발렁스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한 달에 외식은 한번 해볼까 말까 할 정도로 아껴살았다. 그나마 한번 해보는 외식이 맥도널드 수준이었고, 코카콜라를 마트에서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고정 지출을 제외한 한 달 순 생활비가 약 40유로 (약 5만 원)까지 나와본 적이 있을 정도로 극한까지 아껴살았던 나에게,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지출들은 너무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암울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이 두려워 매일 밤을 걱정으로 지새웠던 것 같다. 체류증 만기 날짜도 몇 달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2차 원서접수를 받는 학교들을 찾아 서류를 작성하고 시험 일정을 짰다. 그러면서도 아트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확인한 탓에, 내 성향에 조금 더 어울리는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학교들을 위주로 찾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벨기에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맞닿아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를 섞어 쓰며, 대부분의 학교들이 프랑스와는 달리 9월에 입학시험을 보는 특이한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벨기에는 만화로 유명하며 (스머프, 땡땡등이 벨기에 출신이다) 라 깡브르 (La Cambre)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학교도 있었다.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프랑스에 온 것도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온 거였고, 보자르 학교에서 나름 1년의 경험을 쌓았으니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한 번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추린 프랑스 보자르 3개, 브뤼셀 학교 1개에 원서를 접수하고 우선 첫 시험 일정이 있는 브뤼셀행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9월, 나는 아는 것이라고는 와플밖에 없는 낯선 나라 벨기에에 도착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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