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changes
견고할 것 같은 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트위터를 시작으로, 소위 빅 테크 회사인 메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수많은 직원들이 해고되었다. (Layoffs.fyi에 따르면 2023년 2월 17일 현재, 2022년부터 미국 내 978개의 테크 기업에서 19만 명 정도가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정리해고를 하지 않은 기업들도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에서 경비를 줄이고 (직원들의 불필요한 출장을 줄이고 신규 채용을 중단하는 등), 당장 수익성이 있는 프로젝트들로 직원들을 다시 배치하는 구조 조정을 한다.
우리 회사는 영향이 없는 듯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진 리더십에선 정리 해고는 없을 거라고 여러 번 강조했었는데, 최근 이런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최근 있었던 타운 홀에서는 정리해고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했다. 그리곤 대대적으로 조직 개편이 시작되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다른 팀으로의 행복을 빌었던 예전 팀원(가칭 샘)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대규모 조직 개편이 있기 직전에, 본인이 속한 팀 전체가 다른 팀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겪었고, 또다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기자. 내 의견도 물어볼 겸 연락을 한 것이다.
샘에게 이야기는 안 했지만, 만나기 직전 나 역시도 다른 팀으로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론, 아쉬운 내색 안 하며 최대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바일 팀에서 시작한 샘은 3년 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요청으로 신기술들을 제품에 적용하는 스마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옮긴 지 4개월도 채 안 돼서 회사 전략적으로는 중요하지만 디자이너 개인에게는 다소 재미없을 것 같은 관리자 경험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제껏 해온 것과 성격이 많이 달라서 전문성이 이어지는 느낌이 아니어서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했다.
나 역시 모바일 팀을 맡은 지 1년 만에, 최근 변화가 많은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1:0으로 이기고 있는 9회 말 2사 만루 상황에 등판한 구원투수까지의 긴박함은 아니지만,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동요할 수 있는 상황에 조인하는 것이라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또한, 회사 차원에서 최우선 순위 사업이 아니다 보니 열심히 으쌰 으쌰해서 성과를 만들어 낸들, 평가를 잘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이어져... 감정적인 소모가 심했었다.
나는 그만한 실력이 아닌 거 같고, 누군가 내 실력을 아는 것 같고, 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런 내가 너무 싫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폭식을 하게 되고, 할 일을 미루고 인터넷을 하고, 시간에 쫓겨서 초치기로 일을 해서 퀄리티가 안 나오고 그래서 또 난 미치겠고,
- 구글 디자이너 김은주 님의 세바시 강연 중
본인 역시도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이면서, 샘한테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태연히 말을 건넸다. 요지는 아직 4년 차인데 벌써부터 하나의 분야를 정해서 전문성을 키우기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분야들이 많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SaaS (Software as a Service) 업계에서 (특히 B2B) 계속 일을 할 거면 관리자(admin)는 일반 사용자(end-user)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될 Archetype 중 하나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깊게 배울 수 있지 않겠냐며 주어진 역할의 밝은 면을 부각해 줬다. 그러면서 새로 만날 매니저의 장점과 회사에서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인수인계를 준비하며 새로이 같이 일할 팀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 둘, 초대받은 슬랙의 채널들이 늘어났다. (아, 아직 정식으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부르고 난리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 갈 팀의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가는 팀이 맡은 제품은 우리 회사 제품 중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고, 사용자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이제는 사용을 권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업무 영역이 모바일과 웹을 같이 맡는 역할을 하게 돼서 커리어 상으로도 기존의 모바일 팀에서 배웠던 지식을 버리지 않고 연속성 있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고, 함께 일할 팀원도 3배 늘었다. 또한, 당장 개발자들이 할 일들이 어느 정도 산적해 있어 PM과 협력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검증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드디어 함께 일하는 동료가 뉴욕 오피스에 있다! (그리고, 더 많은 팀원이 생겼으니 자연히 여기에 쓸 글감도 많아질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다만 그 변화에 적응하고 지내다가 문득 뒤 돌아보면, 그 때의 과정들이 하나씩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당신 지금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책하지 말아라 자신에게 조금 친절해도 괜찮다. 내 몸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내 마음은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나도 좀 쓸만한 사람이다. 나 좀 그만 괴롭히자. 내 인생 살아줄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데, 나 믿고 가자
- 구글 디자이너 김은주 님의 세바시 강연 중